2022-09-22
문병삼
이순신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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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역사답게 가르친다고 자부하는 황현필 선생이 가장 존경하는다는 이순신 장군의 바다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충생과 어린시절, 관직과 전쟁준비, 임진왜란, 휴전, 정유재란, 그리고 마지막 노량해전에서의 죽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순신의 어린시절 부터 남다른 모습이었고 서애 류성룡 선생과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무과에 합격하고 강직한 무장으로서의 관직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현실이나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그런 강직한 모습으로 인해 당시 우리나라를 왜적으로 부터 지켜난 힘이 생겼으리라고 생각된다.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 전투에서의 공을 인정받아 만호(종사품)으로 승진하였고,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년전인 1591년 전라좌수영 수군절도사가 되었다. 이순신은 이때부터 조선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전쟁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난중일기는 1592년부터 쓰여지기 시작했는데 수군의 훈련과 물자 준비를 어떻게 했는지 상세히 나와있다. 1592년 음력 4월 13일 일본은 조선을 침략해 한반도를 유린하였다. 이순신 장군은 같은 해 5월 7일 옥포해전을 비롯해 함포해전, 적진포해전, 사천해전, 당포해전, 당항포해전, 율포해전, 한산도 대첩까지 수많은 전투에서 전승을 거두었다. 특히 한산도대첩의 경우 조선의 해군은 판옥선 56척, 거북선 2척으로 일본군 전함 73척과 맞붙은 전쟁인데, 일본의 경우 전함 47척 침몰, 12척 나포, 약 9천여명이 사망한 것에 비해 조선의 경우 3명전사 10여명 부상 밖에 나오지 않는 완벽한 승리였다. 그리고 1952년 9월 1일에 또 한 번의 큰 승리를 하게 되는데 바로 부산포해전이다. 부산포해전에서는 왜군의 전함 470척 중 128척을 침몰시켰고 병력 7만명 중 약 4천명을 전사시켰다. 우리측 피해는 7명 전사에 약 30명 피해밖에 되지 않은 대승이다. 1953년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그리고 원균의 모함으로 선조는 이순신을 파직하고 옥에 가두었고 원균은 칠천량 전투에서 조선수군으 판옥선의 대부분인 112척을 읽고 거북선 3척도 전파되었으며 사망자가 수천명에 달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순신은 다시 백의종군에 삼도수군절도사로 명량과 노량 대첩을 승리로 이끌어 조선을 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