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30
전광현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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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그 이름 하나만으로 이 책을 집어드는 이유는 충분하다.
새 책이 나왔다고 해서 구하고 읽는다. 나는 왜 그의 작품을 계속 읽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쓸데없는 물음이다. 읽는 재미가 있으니까, 그뿐이다. 어떻게 재미있는가, 다시 물어본다. 읽는 일 외에는 다른 걸 하고 싶지 않을 정도라고 답한다. 하지만 계속 읽는 대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노래를 듣는다. 아까워서다, 다 읽어 버리는 게. 소설의 끝에 도달하는 게 아쉬워서다. 그래서 이번에는 책을 읽으면서 짚어 보려고 했다. 무엇이 재미있는 건가, 나는 글의 무엇에 빠져들어 있으려고 하는가, 그게 왜 나를 끌어당기는가, …와 같은 질문을 이어 붙이면서.
이 작가의 글을 읽는 동안 ‘나’에 대해 생각하는 나를 자주 느낀다. 인물의 이야기를 따라 가는 중인데, 그 길 옆으로 내 사정이 슬며시 따라 붙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또 무척 가깝게. 그래서 끝없이 중얼거리게 된다. 너는?, 나는?, 식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작가의 머리 속
절대로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궁금하기는 하다. 나에게 이런 바람을 갖도록 유혹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이 작가처럼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아니라 그저 사람 자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어떤 생각을 어떻게 풀어헤치고 갈무리하면 이런 글을 쓰게 되나,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상상하면 현실을 벗어나 환상으로 나아가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나, 글을 쓰는 동안에는 자신의 삶이 글 속 세상과 어떻게 분리되고 이어지나, 무엇보다 만나는 사람과 헤어지는 사람을 어떤 시선으로 대하고 접나.
답은 없고, 끝내 못 받을 것이고, 그럼에도 물음은 계속 살아 나를 맴돌 것이다. 맴도는 동안 이 작가의 소설을 계속 읽게 되는 것이겠지. 호기심과 갈망으로. 다함없는 생에서 이런 류의 과제는 스스로 더 만들어 나갈 일이다.
저마다 지어 보는 자기만의 세상
“다들 무언가를, 누군가를 원해요. 원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568쪽)”
원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구축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상상 속 세상이라도. 더러 평면에 자기만의 세상을 몇 페이지씩 그려 보는 사람은 있을 것이나 벽까지 세우는 단계에는 나아가지 못한 채, 나아가지 않는 채로 그저 이승의 삶을 걸어가고 있을 뿐. 그러니 남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구경하는 일은 또 얼마나 흥미로운지. 그 세상이 완전해 보이든 불완전해 보이든, 순간순간 커 나가는 세상이든 한쪽 벽부터 무너지고 있는 세상이든. 내가 세운 게 아니니 부담은 없고, 남이 세운 세상이니 변화무쌍할수록 흥미롭고.
소설 속 도시는 내게 매력적인 곳은 아니다.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대도 응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화자에게는 기필코 가야만 하는 곳이 된다. 화자 자신이 만든 세상이니까, 더구나 한 살 어린 여자친구와 함께 만든 세상이니까, 그 여자친구가 평생 기다려 만나고 싶을 만큼 절대적인 대상이 되었으니까. 이상향으로 만드는 세상은 그 모습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있어야 하는가 하는 요건도 아주 중요해지겠다.
화자는 자신의 그림자와 더불어 불확실한 벽으로 세워진 도시의 안팎을 넘나든다. 자신의 의지에 의한 이동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게 바로 의지다. 마음이 향하는 방향, 그 방향을 향하는 마음의 시선, 온통 그쪽을 향해 살고 있으면서 아니라고 하다니, 나는 이런 변명 같은 서술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 마음에 썩 들었다. 삶에 확실한 게 어디 있다고. 확실하지 않은 삶에 번번이 실망하고 절망하는 나를 화자의 머뭇거리는 태도로 작가가 달래 주는 듯해서. 바로 이것 때문에 읽는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거기 있던 게 결코 사람이 봐서는 안 되는 세계의 광경이었다는 걸세.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구나 자기 안에 품고 있는 세계이기도 하지. 내 안에도 있고, 자네 안에도 있어. 그럼에도 역시, 사람이 봐서는 안 되는 광경이라네. 그렇기에 우리는 태반이 눈을 감은 채로 인생을 보내는 셈이고.(102쪽)”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남의 것이니 괜찮지 않겠는가 여기면서. 내 허물이고 내 약점이고 내 실패이고 내 수치인 세상을 남의 것인양 나무라고 비웃고 책망하고 비난하는, 딱하디딱한 내 인생. 이제 그만하라고, 그만해도 된다고, 그만하는 게 좋겠다고, 어쨌든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니.
작가는 상상하는 사람이다. 하루키는 위스키를 좋아하고, 달리기를 좋아하고, 노래를 좋아한다. 창의성의 원천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자극과 활력을 주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책을 멋지게 내어놓은 하루키에게 건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