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31
김지민
여행의 시간 - 도시 건축가 김진애의 인생 여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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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합에 맞는 공간에 가는 게 여행이 아니라 궁합이 맞는 공간의 성격을 발견해가는 과정이 여행이다.
한때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는 이렇다. ‘어차피 다시 돌아와야 하는 과정인데, 불필요해 보인다. 그냥 방구석에서도 모든 곳을 여행할 수 있다.모두의 로랑인 쿠바나, 북유럽, 프랑스 파리, 크로아티아의 절경도 수많은 여행 프로그램의 영상이나 여행 책들로 다 해소되기 때문이다.그런데, 하나를 몰랐다. 간접경험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어치피 돌아올 건데, 여행은 가서 뭐하냐’고 한다면, ‘삶은 왜 사는가? 어치피 죽을 텐데’라고 하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그때는 삶에 달관한 체했지만, 체험하고 경험해 보니 느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40대에 첫 해외여행을 했다. 패키지 여행이었다. 포르투갈 스페인여행이었다. 그런데, 거의 관광지만 돌았지만, 조금 흥미로웠다.
매년 연말에 패키지 여행을 떠났다. 터키, 크로아티아, 북유럽의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를 거쳐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여행이었다.
파리나 런던도 갔는데, 언제 어느 여행에서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을 간 기억도 난다.
북유럽은 너무 추운 곳이라 6월에 다녀왔다. 짐짝이 되어 버스를 타라고 하면 타고, 식사를 하라고 하면 먹고, 숙소에 데려다 주면 잤다. 1주일을 ‘사육’당하는 맛도 괜찮았다.
그런데,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이 하고 싶어졌다.
내가 지금 가고 싶은 곳은 해마다 봄과 가을에 스페인과 포루투갈을 가는 게 꿈이 되었다. 이유는 하나다. 고등학교 때 봤던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배경지인 스페인 내전의 현장을 찾아가는 일이다.
여행길은 나를 비추고, 나의 관계, 내가 익숙해했던 모든 것을 비춰준다. 여행하다가 저도 모르게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나를 다시 찾고, 찾았다고 생각한 나를 다시 잃어버리기도 하고, 내가 몰랐던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되기도 한다. 짧지만 농밀한 비일상적 체험으로 가득한 여행의 시간은 그래서 일상의 시간으로 돌아왔을 때 곱씹게 만든다. 여행은 각 여행길 하나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인생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인생의 시간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 중, 여행만 한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