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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2 김이랑
    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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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저자인 한성희 작가는 40여년간 환자들을 진료해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며 한 딸아이의 엄마인데, 오랫동안 환자들에게는 해주었지만 정작 딸에게는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엮어서 책으로 펴냈다고 한다. 어릴 때 내가 생각하는 '마흔'은 한 가정을 이룬 아이 둘의 우리 엄마 같은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흔의 문턱 앞에 와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은 몸만 어른이지 내면은 어린 아이 같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10대 후반, 지독하게 말 안 듣던 나에게 부모님은 "그래서 언제 어른 될래?" 라는 말에 나와는 아직 먼 얘기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은데, 그랬던 내가 어느새 20대, 30대를 지나 마흔의 문턱 앞에 와 있는 38살의 성인이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이 나에게 어떤 메세지를 남겨줄 지 더더욱 궁금해져서 선택하게 되었다. 저자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 자신을 좋아해야 내면으로부터 우러나는 느낌과 생각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 있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원하는 일을 해낼 가능성이 높아지고, 타인과 세상을 탓하는 일이 줄어들며, 전반적으로 삶이 평화로워진다고 했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감사하게 느낀 점은, 부모님의 사랑이 그저 당연한 것이 아님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점이다.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헌신은 우리가 쉽게 간과하기 쉽지만, 이 책은 그 사랑이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상기 시켜주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되어 마흔의 코앞에 올 때까지 부모님의 보여주신 사랑이 얼마나 무한하고 감사한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나 자신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을 다시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배운 깨달음을 잊지 않고 나 자신에 대한 소중함과 부모님을 향한 사랑과 존경을 표현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 2024-12-12 강명선
    시간은흐르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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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자중력 이론 선구자이며,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는 이 책을 통해 '시간'에 대해 3부로 나누어 말하고 있다. 1부. 시간 파헤치기 일반적으로 시간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을 하나하나 부순다. 시간의 유일성, 방향성, 현재라는 관념, 시간의 독립성, 연속성을 부순다. 모든 장소에서 시간은 다르게 흐르며, 지나온 경로가 다르면 경과한 시간도 다르다. 해변과 산꼭대기의 중력 차이와 그에 따른 시간 지연을 설명하면서, 물체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쪽으로 향한다고 한다. 중력의 차이가 없고 시간이 동일하게 흐르는 우주 공간에서 물체는 ‘떨어지지’ 않는다. 물리학의 법칙들은 일반적으로 미래와 과거를 분리하지 않는다. 법칙에 따른 변화를 거꾸로 돌려도 법칙을 만족한다. 물리 법칙은 시간의 방향을 주지 않는다. 유일하게 과거와 미래를 분리하는 물리 법칙은 열역학 제2법칙으로 고립계의 엔트로피는 줄어들지 않는다는 법칙이다. 비가역적인 모든 현상에는 열출입이 관여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우리의 희미한 눈으로 봤을 때 동일한 거시계의 물리량을 주는 서로 다른 미시 상태들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간은 희미하게 볼 때 발생한다. 지금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우주의 거대한 스케일에서는 ‘지금’을 합의할 수 없다. 현재는 우리와 가까이에 있는 거품이다. 항렬이 인접한 가계도에서만 유효하듯이 현재도 인접한 사건들 안에서만 유효하다. 어떤 사건이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건들의 집합은 광원뿔로 표현되는데 그 외 시공간 상의 좌표는 그 사건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들의 관계 속에서 공간, 변화의 척도로서 시간을 이야기하였다. 반면 뉴턴은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의 이면에 독립된 공간과 시간을 상정했다. 아무것도 없어도 ‘진짜’ 공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진짜’ 시간이 따로 존재한다고 말이다. 천동설과 지동설의 대립 이후가 그랬던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와 뉴턴의 대립도 결국 ‘두 개념 전략 중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인가?’하는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좀 더 의미가 있었다. 물리법칙은 이제 절대적 시간을 상정하지 않고 ‘변화’ 속도의 상대적 관계만을 기술한다. 양자역학의 세 가지 발견은 물리적 변수의 입자성과 미결정성, 관계적 양상으로 요약된다. 불확정성 원리로부터 다룰 수 있는 물리량의 최소 단위가 발생하고 이에 따라 물리량들이 양자화된다. 시간도 연속성을 잃고 양자화된다. 서로 방향이 다른 광원뿔들이 이리저리 널브러진 것도 모자라 여러 장의 시공간 그림이 중첩되어 요동친다. 시공간이 중첩되면 한 입자가 공간에서 널리 퍼질 수 있듯이, 과거와 미래의 차이도 흔들릴 수 있다.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의 전과 후 모두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 2부. 시간이 없는 세상 시간은 유일함, 방향, 현재, 독립성, 연속성을 잃어 너덜너덜해졌지만 세상이 ‘사건들’의 네트워크라는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존재보다는 관계가 중요하다. 우리 뇌는 두 위치에서 발생하는 서로 다른 두 신호를 받지 못한다. 움직이는 무언가와 관련된 하나의 신호만 감지한다.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사물’은 시간 속에서 계속 존재하고, ‘사건’은 한정된 지속 기간을 갖는 것이다. 입술은 사물이고 입맞춤은 사건이다. 세상은 입술이 아닌 입맞춤들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세상을 단순한 사건들의 조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절대 시간이 없이도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변화하는 양들이 있다. 개중에는 매우 규칙적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있다. 태양의 일주운동, 진자의 왕복운동처럼 말이다. 내가 어디 있는지를 랜드마크와의 위치 관계로 설명하면 편하듯이, 상당히 규칙적으로 변화하는 변수와의 관계로 어떤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 과학은 변수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변화하는지 설명해 주면 된다. 이때 특별한 변수 하나를 ‘시간’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외부에서 본 세상’은 난센스다. 3부. 시간의 원천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살펴본다. 세상의 기본 문법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그냥 어떤 식으로든 ‘등장’하는 것이 상당히 많다. 고양이, 게임팀, 위와 아래, 구름의 표면, 우주의 회전 등이 그것이다. 시간도 뒤늦게 등장하는 것이 아닐까? 특정 계에 대한 흐릿한 시각인 거시적 상태가 하나의 시간을 결정한다면? 계가 열 교란 상태에 있을 때, 그 계는 동일한 에너지를 갖는 모든 배열을 거쳐 지나간다. (거시적) 평형상태이다. 한 거시 상태를 만드는 미시 상태의 수와 관련된 양인 엔트로피처럼 시간도 에너지에 따라 정해지는 특별할 것 없는 물리량일 수 있다. ‘선험적으로’ 시간의 역할을 하는 물리량이 없더라도. 거시적 상태에 의해 결정된 시간을 ‘열적 시간’이라고 부르고, 이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과 가장 비슷하다. 왜냐하면 열적 시간과 거시적 상태의 관계가 바로 우리가 아는 열역학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의 전반적인 차이는 세상의 엔트로피가 과거에 낮았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기인한다. 그러나 엔트로피는 어떤 희미함에 대해 보느냐에 따라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다. 속도처럼 상대적인 양이다. 기차에서 뛰고 있는 아이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고 해서 아이가 기차 창문으로 뛰어내려 ‘지상과의 관계 속에서’ 아이가 멈추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차와의 관계 속에서’ 아이가 멈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B와 관련 있는 A의 엔트로피는 A와 B 사이에 ‘물리적’ 상호 작용들이 구분하지 않는 A의 배열 수를 계산한다. 세상을 움직이는데 필요한 것은 에너지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낮은 엔트로피다. 낮은 엔트로피는 특수성에서 나온다. 특별함이 없어진, 열평형 상태가 되면 과거와 미래의 구분이 사라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낮은 엔트로피를 공급받는다. 열평형은 이루어지지만, 엔트로피가 비교적 높은 여러 개의 차가운 광자를 방출하고 엔트로피가 비교적 낮은 뜨거운 광자를 받는다. 분산된 구름보다 중력 수축에 의해 응축된 구름이 엔트로피가 더 높다. 응축된 구름이 실공간에서는 더 ‘정돈된’ 것처럼 보이지만, 입자들의 속도가 더 다양하게 분포하기 때문에 위상공간에서는 분산되는 것이다. 흔적은 과거에 원인을 둔다. 흔적이 남으려면 무엇인가 정지해서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데, 이것은 되돌릴 수 없는 과정을 통해서만, 즉 에너지를 열로 변환시키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열이 없는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탄력적으로 튕기고 그 어떤 것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우리의 자아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우리 각자를 세상에 대한 ‘하나의 관점’으로 동일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세상을 성찰하고 정교하게 설명하는 복잡한 프로세스다. 두 번째로 우리는 세상의 요소들을 실체들로 조직화한다. 경계를 근사적으로 긋고 범주화한다. 그렇게 신경 동역학계의 고정점으로서 ‘사물들’과 ‘개념들’을 만들어낸다. 나의 존재는 일차적인 경험이 아니다. 일차적인 경험으로서 세상을 보고, 어느 순간 우리 자신에게 어떤 부가적 특성을 지닌 인간임을 투영하여 ‘나 자신’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우리와 닮은 존재들(인간)이 우리 자신에 대해 가졌던 생각의 반영이다. 세 번째 요소는 기억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역사이고 이야기 주제이다. 물리학적 소견과 철학적인 다양한 관점을 섞어 시간에 대해서 분석한 이 책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더러 있었지만, 순간순간 공감가는 내용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시간이 연속적이지 않고 사고와 사건의 점들이 섞여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어떤 사건과 내용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현대 물리학의 근간인 '인과율'과도 배치가 되는 내용이긴 하지만, 시간이 흐르던지, 흐르지 않던지 그 시간이 생물학적으로 노화되는 것을 나타내는 척도라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결국 다양한 관점으로 보일 수 있는 시간속에서 결국 우리의 생각과 행동들이 남아있을 것이며, 그것들이 쌓여 현재 우리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 2024-12-12 신문봉
    하루한장 365 논어 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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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는 15,691자, 500장, 20편으로 구성된 동양 최고의 고전으로 2500년 시간을 품고 내려온 군자학이자 리더학이다. 이 책는 논어 500여구 중 주옥같은 365개의 명구를 뽑아 목표, 변화, 학습, 도전, 균형, 리더, 관계, 인생 등 12개의 테마로 나누어 정리했다. <하루 한장 365 논어 일력>을 통해 하루에 하나씩 이를 반복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찾고 깨달음의 즐거움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나를 움직이는 분명한 힘을 줄 것이라고 한다. 논어는 공자의 사후에 그의 제자들이 엮은 책이다. 공자의 언행을 위주로 하되, 공자의 핵심 제자들(공문 10철), 각국 정치인, 은자 등의 발언도 수록되어 있다. 공자의 이름은 구, 자는 중니이다. 춘추시대 말기 노나라 사람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신분도 높지 않았으나,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어 30세 무렵부터는 제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공자는 주나라 시대의 문화를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주례의 회복을 통해 당시의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극복의 노력은 교육과 정치 두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공자는 자신의 정치적 뜻을 펼치기 위해 노나라, 위나라, 진나라에서 벼슬을 한 적도 있고, 지금의 산동 · 하남 일대 여러 나라를 주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그는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반면 교육적인 측면에서 그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육경과 육예, 그리고 인(仁)을 중심 내용으로 하는 교육으로 공자는 당대에 이미 뛰어난 제자들을 많이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숭배하는 수많은 사상가들에 의해 후세에 성인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공자는 인간의 보편적인 도리와 인간으로서의 올바른 행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마음이 점차 확대되어 대중을 사랑하고 만물을 사랑하는 데까지 미루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까지 확장되면 이상적인 인(仁)의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인은 어렵거나 실행하기 힘든 것이 아니다. 누구나 인을 행하고자 하면 인에 도달할 수 있다고 공자는 생각한다. 인간을 긍적적인 존재로 보고, 인간의 의지가 인을 완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에 대한 강한 확신이 공자의 사상을 전개하는 힘이었을 것이다. 논어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읽을수록 느낌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 2024-12-12 신문봉
    논어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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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최술은 평생에 걸쳐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고증학을 바탕으로 고신록 제서를 저술해 청대 고증학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공자와 그 제자의 행적을 변증한 <수산고신록>과 <수사고신여록>, 맹자와 그 제자의 행적을 변증한 <맹자사실록>, 그리고 논어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고증한 <논어여설>이 그이 대표적인 저작이다. 논어여설에서 최술은 어린시절부터 평생에 걸쳐 <논어>를 탐독하고 전체의 내용을 분석·고증하는 치밀함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나는 대여섯 살 때 처음 <논어>를 배웠다. 그러나 그 때는 글을 암송했을 뿐이지 뜻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스무 살이 가까워서야 비로소 마음속으로 이치를 궁구해 “공산불요”나 “필힐” 두 장의 사건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매우 의심했지만 감히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마흔 살이 넘어 공자 사적의 선후를 고찰하다가, 드디어 그 연도가 맞지 않으니 이 장은 반드시 후세 사람이 거짓으로 지어낸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그것이 <논어>에 편입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예순을 넘어 <수사고신여록>을 저술하려고 처음으로 <논어>의 원류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래서 진한 시대에 전해졌던 <제논어>와 <노논어>에 추가로 삽입된 것이 있으며, 장우가 그것을 모아 합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나는 드디어 확고하게 나 자신을 믿고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상세한 내용을 기록해 여기에 덧붙여 둔다. 그렇지만 세상의 학자들은 오직 <논어> 장구나 읊조리고 과거 공부에만 매달릴 줄 알았지, <논어>의 의리를 탐구하고 처음과 끝을 고찰해 그 원류를 변증하려는 이가 없다. 그러니 그들이 내글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끝내 내 말이 옳다고 하지 않더라도 괴이할 게 없다. 이 글에서 평생을 <논어> 연구에 바친 노학자의 열정을 읽을 수 있다. 대여섯 살 어린아이 때부터 예순이 넘은 노년에 이르기까지 <논어>에 대한 저자의 집착은 잠시도 그친 적이 없었다. 이러한 <논어여설>에 나타난 변증의 특징은 1) 공허한 격물궁리의 배격과 평실의 추구 2) <논어집주>에 대한 비판과 수용 3) 강장가들의 통속적 해석 배척 4) 후반부 다섯 편 편장의 신뢰도 분석으로 나타나 있다.
  • 2024-12-12 한정식
    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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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전한 사회를 배경으로, 인간성의 본질과 자유의 가치를 탐구하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이 작품은 유전자 조작, 사회적 조건화, 쾌락 중심의 문화가 지배하는 세계를 통해 인간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통찰력 있게 다룬다. 처음 책을 읽으며 느꼈던 충격은 작품 속 세계가 단순한 상상 속 미래가 아니라, 현재 우리가 가고 있는 길과도 무척 닮아 있다는 데 있었다. 소설 속 사회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삶이 철저히 통제되는 세계다. 유전자 조작과 인공 자궁을 통해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계급과 역할이 결정되며, 조건화 교육을 통해 모든 이들이 자신의 계급에 만족하도록 설계된다. 이러한 체계는 안정과 효율을 극대화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자유와 개성을 철저히 박탈한다. 특히 “소마”라는 마약을 통해 불안과 스트레스를 제거하고, 쾌락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기술과 소비에 의존해 행복을 추구하는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작품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존은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자라난 인물로, 소설 속 사회와 대조적인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과 가치를 대표한다. 그는 고도로 발달된 문명 세계에 들어오지만, 그곳에서 느낀 것은 경이로움이 아니라 소외와 혐오였다. 쾌락과 안정만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사랑, 고통, 희생 같은 진정한 인간의 경험은 부정당하고, 그로 인해 존은 점차 고립된다. 그의 비극적인 결말은 자유와 감정 없는 사회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멋진 신세계는 단순히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를 경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진정한 행복과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쾌락만으로 가득 찬 삶이 과연 만족스러운 삶일까? 안정된 사회를 위해 자유를 포기할 수 있을까? 헉슬리는 이러한 질문을 통해 현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든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기술 발전과 소비주의가 빠르게 확산되는 지금, 이 작품은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모든 것이 효율적으로 설계된 사회는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인간성을 말살하는 디스토피아일 수도 있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잃어버리면 안 되는 가치는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멋진 신세계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과학과 인간성 사이에서 균형을 잃어버릴 위험성을 경고하는 깊이 있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로서 이 작품을 읽고 나면, 기술과 문명이 주는 편리함과 안정성에 대해 무조건적인 찬사를 보내는 대신, 그것이 인간 본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된다. 헉슬리는 이를 통해 우리에게 자유와 감정, 그리고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삶의 중요성을 강력히 설파하고 있다.
  • 2024-12-12 한정식
    21세기를위한21가지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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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우리가 직면한 현재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도전과제를 날카로운 통찰로 풀어낸 책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후변화, 정치적 불안정, 가짜뉴스 등 현대 사회의 주요 이슈들을 21가지 주제로 다루며 독자에게 깊은 사고와 성찰을 요구한다. 이 책은 단순히 미래를 비관적으로 그리거나 낙관론에 머무르지 않고,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극복할 방법을 탐구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한다. 책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주제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가 인간 사회에 미칠 영향이다. 하라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변화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정체성과 가치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문제다. 우리가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기술이 우리 삶을 통제하게 두지 않으려면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또한, 하라리는 진실이 왜곡되고 감정이 조작되는 디지털 환경에 대해서도 강력한 경고를 보낸다. 가짜뉴스와 알고리즘에 의해 좌우되는 정보 사회에서 개인의 비판적 사고 능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기술은 인간의 약점을 교묘히 이용해 우리의 선택을 조작하고, 결국 자유 의지마저 흔들리게 한다. 하라리는 이를 막기 위해 교육과 윤리적 규범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는 개인의 노력과 사회적 협력이 병행되어야 할 과제임을 강조한다. 환경 문제와 기후 변화에 대한 논의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라리는 기후 변화가 단순히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라고 설명한다. 그는 각국이 경쟁 대신 협력으로 나아가야 하며, 미래 세대를 위해 책임감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사회적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전통적 가치관과 세계관에 안주하는 태도를 경계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적응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라리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이 단순히 기술적이거나 경제적인 차원을 넘어, 인간의 정체성과 윤리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개인의 삶 속에서 진실에 기반한 판단을 내리고,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우리 시대의 복잡한 문제들을 명확히 드러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책이다. 하라리의 날카로운 분석은 독자에게 현재의 삶을 재검토하고,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이 책은 단순한 자기계발서나 미래 예측서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나침반과 같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 2024-12-12 서보인
    소유냐존재냐(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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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는 삶 속에서 우리의 소유적 태도를 비판하는 책이다. 소유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무언가를 내가 가지려고 하는 것이다. 정확히는 어떤 사람, 사물, 감정 등에 대해서 내가 취득하고 완전한 통제를 하려고 하는 행위가 바로 소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유의 성격은 위에 표기한 시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은 그 존재를 외면하고 그 특질을 무시한 채 그저 내 맘대로 다루려고 하는 것이다. 만일 사랑을 소유하려 한다면 나는 그/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파악하려고 할 것이며, 그/그녀의 과거를 파헤치고, 심지어 그/그녀가 나에게 이별을 통보한다면 물리적 감금까지도 동원하려 할 것이다. 소유적 사고관은 나 스스로에게도 불행을 준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나의 신체, 지성, 재산등 내가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으로부터 나를 평가할 것이며,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과 소유한 것을 기반으로 평가하고 비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긍정적인 부분을 본다면 그런 소유욕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유치원생일 때 배웠듯이 세상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 그 잘난 이건희 회장조차도 본인의 막내딸을 ‘소유’ 하지는 못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존재적 사고는 무엇인가? 바로 소유적 사고의 반대편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타자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 그의 본질을 존중하고 나의 뜻대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것, 내가 소중한 만큼 내 외부에 있는 것들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즉 통제하려 하지 않고 그저 이해하고 바라보는 것을 존재론적 사고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꽃을 그저 바라만보고 안녕이라고 인사정도만 할 뿐 꺾지 않으려는 사고가 존재론적 사고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고를 가지고 있을 경우 나의 소중함 ( 나의 본질적 특질과 특수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 소유적 사고관보다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으면서 타인에 대한 무한한 사랑도 기꺼이 베풀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이 존재론적 사고관을 가진다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점이다. 솔직히 모두가 그렇지 않은가? 원하면 가지고 싶고, 알고 싶고 내 통제에 두고 싶어진다. 맘에 드는 꽃을 꺾어서 꽃병에 꽂아두고(비록 곧 시들겠지만) 싶듯이 말이다. 동시에 이런 생각과 행동이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준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언제나 고민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은 역시나 끊임없는 자아성찰과 고민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는 것 같다.
  • 2024-12-12 서보인
    우리는여전히삶을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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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사랑은 '성장을 향한 관심'이며 삶은 '성장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삶에 대한 사랑은 '성장의 과정에 대한 열렬한 지지 내지는 관심'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삶을 사랑하며, 살아있다고 느끼고 있는가? ​ ▶ 우리는 삶을 사랑했는가 에리히 프롬의 대답은 '그렇다' 이다. 하지만 난무하는 폭력, 무관심, 소비지향적 태도, 인간의 수단화 등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삶을 사랑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거나 삶을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사랑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다. ​ ▶ 나는 삶을 '여전히' 사랑하는가 「분실물이 돌아왔다」라는 책을 읽고 예전에 잃어버렸지만 되돌아왔으면 싶은 물건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물건은 대학교 4학년 때 교양 교수님으로부터 받은 가을을 듬뿍 담은 나뭇잎이었다. 그 나뭇잎을 찾고 싶은 이유는 별거 없다. 가끔은 아무것도 안해도, 되려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보여도 이상하리만치 나를 좋아해주고 긍정적으로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내 할 일을 잘 해내야 / 내가 유용하고 쓸모 있어야 /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가진 사람이어야 / 번듯한 내 직장이 있어야 / 우리 집이 잘 살아야 등 노력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를, 존재 자체를 인정해주길 바라나보다. 그 어떤 시린 계절도 살아내게 하는 사람이 고픈가 보다. (되고싶은건가) 「분실물이 돌아왔다」라는 책을 읽고 쓴 독후감 中 결국 왜 그 나뭇잎을 찾고 싶은지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독후감의 끝을 위와 같이 맺었는데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서문에서 어렴풋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최근의 나는 아마 퍼포먼스에 더 집중하는 삶을 살지 않았나. 나 자신 혹은 나의 존재보다는 사회적으로 습득한 어떤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느끼려 해 많이 피로했던 것 같다. ​ 책을 읽기 전엔 당연히 삶을 사랑한다 자신할 수 있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나의 사랑은 꽤 많이 뒤틀려 있었다. 프롬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기심과 자기애를 구분하지 못하며 무력감을 감추기 위해 사랑을 흉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을 사랑하는 척 하느랴고 일이라는 진통제에 취해 나를 돌보지 않았으며, 고요하게 삶을 대할 수 없어 이리저리 약속을 만들고 무의미한 관계에 집착하는 분주함에 속아있었는지도 모른다. 평화를 사랑한다는 전제 앞에서 갈등을 회피하며, 고유의 나를 찾아가기보다 어쩌면 타인과 동등해지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지 않은가 한 번 더 생각해본다. 삶을 여전히 사랑하지만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 ​ ▶ 나는 '앞으로' 삶을 사랑할 것인가 프롬은 삶을 사랑하는 과정은 어쩌면 고통을 수반할 수도 있다 말한다. 인간은 안전을 뜻하는 이전 상태를 떠나기 무서워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왜곡된 기준으로 삶을 대하는 것이 더 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구불구불 굽이 칠지라도 최종적으로는 목적지(=삶을 사랑하는)로 가는 곧은 선이 될것이다. 프롬이 말하는 '삶을 사랑하는 태도'는 결국 나를 더 자유롭고 완전한 상태에 이르고 더 풍성하게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힘이 드는 일일지라도 나는 여전히, 앞으로도 삶을 사랑하겠다. 옳은 방식으로. [출처] [독후감]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by 에리히 프롬|작성자 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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