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8
문경민
장미의 이름은 장미(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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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작가가 구성한,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도시, 뉴욕 여행자에 대한 4부작.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승아는 즉흥적으로, 오랜 친구의 뉴욕 집으로 짧은 여행을 떠난다. SNS를 통해 보던 친구의 집은 생각했던 것 보다 남루하고, 오래된 만큼 깊을 것이라고 생각한 우정은 생각보다 가볍다. 서로의 고민에 빠져 상대를 바라보지 못하며, 그나마 나누는 대화도 겉돌고, 서로를 생각해서 한 행동들은 감동을 주지 못한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 이혼을 하고 홀로 뉴욕에서 어학 연수를 하는 40대의 주인공에게는,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보다도, 인종, 언어, 성별도 모두 다른 '마마두'가 더 편하다. 사람이 통한다는 것은 꼭 '말'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지도 모른다.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연극을 쓰기 위해 뉴욕 생활 중인 현주는 영어에 적극적이지 않은 자신에게 점차 흥미를 잃는 '로언'의 무관심을 늮고, <아가씨 유정도 하지> 오십대 소설가인 '나'는 뉴욕에서 열릴 문학 행사에 동행한 80대 어머니에게서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아연해진다.
여행은 이렇게 타인의 색다름을 발견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실망을 하기도 하는 시간을 선사한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짧고 긴, 여러 동행들과의 다양한 여행을 통해서 나의 색다름, 상대의 색다름, 나와 상대의 다름과 같음을 확인하는 시간을 만들어 갔던 것 같다.
소설을 읽는 동안, 소설 속 내용도 내용이지만, 뉴욕의 거리를 걸으며, 뉴욕의 다양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이런 저런 구상을 했을 은희경 작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책의 표지도, 바둑판 모양의 뉴욕 지도를 묘사해 놓은 것 같았다.)
장소가 한국이 아닌 미국의 도시여도, 인물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나 특유의 서늘한 문체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소설집이라서 그런지, 장편에서 느낄 수 있는 은희경 작가 특유의 흐름과 서사를 미쳐 만끽하기 전에 소설이 끝나버리는 것 같아서 좀 아쉬운 부분은 있었다. 힘드시겠지만, '새의 선물'이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같은 장편을 또 써주시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