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6
채수정
우리는각자의세계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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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인간의 뇌는 백지와 같다.
뇌의 성장은 다른 신체기관과 달리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지 않으며, 오로지 세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의 시스템은 처음부터 완전히 프로그램된 채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상호작용을 주고 받으며 스스로를 형성해 나간다. 자라는 동안 우리는 뇌의 회로를 끊임없이 바꿔가며 어려운 과제와 씨름하고, 기회를 이용하고, 사회구조를 이해한다. 우리가 겪는 삶의 경험에 따라 뇌가 매 순간 새로운 지도를 그려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뇌는 우리가 경험한 "공간과 시간의 그릇"이 되고, 인간은 죽는 날까지 결코 완성되지 않은 채로 살아간다.
뇌를 수조 마리의 생명체가 한데 얽혀서 살아가는 공동체로 생각해 보자. 교과서 속 사진에 나오지 않는 기묘한 사실은 뇌가 신비로운 계산기이며, 살아 있는 3차원의 천이라는 것이다. 이 천은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계속 변하고 반응하면서 스스로를 조정한다. 작년 이맘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뇌가 짜내는 거대한 태피스트리가 저절로 새로이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몇 분, 몇 달, 몇십 년에 걸쳐 뇌에 축적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변화가 모두 합쳐져서 사람이 된다. 아니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은 그 모든 변화의 합이다. 어제의 그 사람은 오늘과 아주 조금 달랐다. 그리고 내일은 또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의 유전자는 간단한 원칙 하나를 세웠다. 융통성 없는 하드웨어를 만들지 말고,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 "삶의 짜릿함은 우리가 지금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현재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 중인가에 있다."
뇌의 이야기를 다룬 저자의 전작 《더 브레인》이 뇌과학 입문서라면, 이 책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는 그 후속작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발전하고 변화하는 뇌’의 특징에 특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인간의 변화무쌍한 가능성의 세계를 계속해서 증명해내는 지점에 서 있다. 뇌의 반쪽을 잘라낸 아이가 어떻게 다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지, 어린 시절의 적절한 사회화와 상호작용이 왜 중요한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왜 청각이 발달했는지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뇌가 효율에 따라 최적화의 길을 찾아가는 방법을 다룬다. “모든 사람은 여럿으로 태어나 하나로 죽는다”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처럼, 삶의 여러 가능성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우주가 결정되고, 마지막 순간에 결국 나의 세계가 완성된다는 의미를 제목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