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7
조기석
작별하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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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2021년 발표된 작품으로, 한국 현대사 속에서 잘 다뤄지지 않던 제주 4·3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은 특정 사건을 재현하거나 설명하려 하기보다, 그 사건 속에서 희생된 이들과 남겨진 자들의 고통과 기억을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소설은 주인공 ‘경하’, ‘인선’, 그리고 인선의 어머니 ‘정심’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경하는 소설가이자 화자로, 제주에서 친구 인선을 만나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인선은 미술을 전공한 친구로, 어머니 정심과 함께 살아가며 4·3의 상흔을 직접 체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를 연결하는 매개자 역할을 합니다. 정심은 소설의 핵심 인물로, 어린 시절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4·3 당시 학살되는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 살아남은 생존자입니다. 작품은 크게 ‘기억의 증언’과 ‘상처의 현재성’을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정심은 과거에 겪은 학살의 순간들을 단편적으로 회상하고, 경하는 이를 조용히 듣고 기록하며, 인선은 그 고통을 예술로 풀어내려 애씁니다. 한강은 폭력과 학살의 참혹함을 직접 묘사하기보다는, 남겨진 자들의 몸과 감각에 새겨진 흔적,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차분히 보여줍니다. 이야기는 시간의 직선적 흐름을 따르지 않고,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며 전개됩니다. 현재 제주 풍경 속 자연의 묘사와 과거 학살의 기억이 겹쳐지면서, 독자는 아름다운 자연과 끔찍한 역사 사이의 간극을 느끼게 됩니다. 결말에서 소설은 명확한 ‘마침표’ 대신, 죽은 자들과의 작별을 끝내 하지 못하는 삶의 무게를 보여주며 마무리됩니다.
한강은 이 소설을 통해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다루려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애도의 불가능성을 탐구합니다. 제목 ‘작별하지 않는다’는 바로 이 지점을 상징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4·3 사건은 오랫동안 금기시되고, 제대로 언급되지 못했던 역사입니다. 한강은 침묵 속에 묻힌 이 사건을 문학적으로 호출해, 독자에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임을 상기시킵니다. 단순히 기록이 아니라, 그 고통을 ‘감각’과 ‘몸’을 통해 다시 체험하게 함으로써 망각을 거부합니다. 소설은 대규모 사건의 ‘숫자’가 아니라, 한 개인(정심)의 기억에 집중합니다. 독자는 정심이 겪은 상실, 경하의 경청, 인선의 예술적 해석을 따라가며, 역사적 참극이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에도 살아 있는 아픔임을 느끼게 됩니다. 한강은 죽은 자들과의 작별은 결코 완결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는 자들의 기억과 애도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말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말은 고통과 함께 살아가며, 그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전승하는 행위 자체가 살아남은 자의 윤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과거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비극을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고통을 함께 느끼고, 조용히 곁에 서며, 끝내 작별하지 않음으로써 망각을 거부하는 태도입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 기억을 듣고 전하는 행위 자체에 집중한 작품입니다. 독자들은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끝내 작별할 수 없는 죽음들”을 느끼며, 잊히지 말아야 할 역사적 상처를 자기 삶 속에서도 되새길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소설은 “망각 대신 기억, 침묵 대신 경청”을 요구하는 문학적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