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측면에서 프리드리히 니체의 논의를 그대로 따라가는데, 허무주의 비판, 다윈 비판, 타인의 의지 강요를 비판, 무조건적인 긍정 비판, 범주에 대한 비판,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긍정, 좋은 것은 나쁜 것의 다른 면이라는 것을 인정, 도덕적ㆍ정신적 척도를 의심하고 망치로 부숨, 무엇보다도 각기 다른 개인의 '관점'에서 의미를 찾고 그 관점들의 상호 '관계'에서 '우리(사회)'라는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측면에서 니체의 철학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다만 저자는 니체와는 다르게 '우열이 없는 관점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책이 출간되고 여섯 달 뒤, 스탠퍼드 대학교와 인디애나 대학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름이 붙은 건물의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제목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독자의 관심을 유도하고자 의도적으로 뭉뚱그린 표현이라 할 수 있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진화분류학적으로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범주를 부수고 나와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무한한 가능성의 장소를 보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느낌이다. 우리가 자연 위에 그은 선들 너머에 또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가 세상을 더 오래 검토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으로 밝혀질 것이다. 당신이 얕잡아봤던 그 속에 구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희망에 대한 처방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희망은 내가 누릴 자격이 있어서라거나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나쁜 것의 이면에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이 '혼돈'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자.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자. "질서"라는 당연한 확신, 특히 도덕적ㆍ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모든 자ruler 뒤에는 지배자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하나의 대용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최악일 때는 족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저자가 이 단어들을 타이핑하고 있을 때 저자의 마을에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급습했다. 그들은 남부연맹군 지도자의 동상 하나를 지키려고 나치 표시를 단 방패를 들고 공원으로 돌진했다. 그들은 반대시위자 군중을 향해 차를 몰아 한 사람을 죽이고 수십 명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그들의 부츠와 그들의 구호와 그들의 신념으로 한 흑인 남자를 피가 나도록 구타했다. 그 일이 끝난 뒤 그들의 지도자라는 사람이 라디오에 출연해서 죽음에 대해서는 유감이지만 자신들의 생각은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투로 말했다. 어떤 인종은 다른 인종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고, 백인은 흑인보다 우월하다는 생각, 그것은 "그냥 과학의 문제"라고 그는 킬킬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자연 자체에는 그런 도덕적 우열의 사다리가 없다. 우리가 보는 사다리의 층은 우리 상상의 산물이며, 진리보다는 "편리함"을 위한 것이다. 나투라 논 파싯 살툼Natura non facit saltum,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고 다윈은 과학자의 입으로 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다리는 아직도 살아 있다. 그것은 위험한 허구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그 허구를 쪼개버릴 물고기 모양의 대형 망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