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26
강순미
조금 알고 적당히 모르는 오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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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기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할때가 된 요즈음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독서통신을 통하여"조금알고 적당히 모르는 오십이 되었다"를 읽고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고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정리해 보았다
톨스토이는 세월은 젊음을 빼앗아 갔지만 수만가지 이유의 불행도 함께 태워버렸고 행복의 이유도 단순화시켰다 나는 어떤가 젊은 시절엔 늘 갖지 못해 불행했는데 지금은 남아 있는 미래가 짧아져서 체념한 것인지 큰 것을 바라지 않게 되었고 이것이 나이가 주는 행복 쿠폰인가 싶다 상대평가는 늘 우리를 불행하게 했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그랬다. 남을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는데만 오십 년을 보낸 후유증으로 여전히 남의 소식에 귀 기울이는 데 익숙하고 그 결과로 쉽게 절망하겠지만, 이제부터는 내 손아귀에 있는 보물부터 살펴야겠다.
만족과 행복은 지극히 개인적인 잣대인 것을, 상대 평가가 아닌 것을 잘 알면서도 누군가와 비교하게 된다. 비교의 늪을 빠져나오려면
철저하게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팀 페리스는 소중한 것들이야말로 '몰아서 한꺼번에'나 '이것만 끝나면'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병렬 처리'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게 되는 수동적 입장의 눈,귀와는 달리 '입'은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하게 능동적인 기관이다. 듣고 본 것을 체에 거르지 않고 그대로 입 밖에 내었다가는 자신도 궁지에 몰리고 상대방까지 지옥에 빠지는 참담한 결과를 낳는다. 세 치 혀는 여섯 자 사람의 몸도 베어버리는 무서운 무기임에 틀림없다. 말을 많이 한 날은 자기 전에 꼭 후회가 밀려온다. 내가 한 말은 나에게도 남는다. 그냥 남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콕콕 박힌다. 그러니 남이 한 말이면 어떻겠는가 집 안이든 집 밖이든 항상 말조심 결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리고 말이 입을 차고 나가기 전, 한 번 더 물어야겠다. 정말 필요한 말인지, 상황에 맞는 말인지, 명확한 표현인지,펭수처럼 외모를 넘어서는 위안을 담고 있는 말인지 말이다.
이게 살아도 살아도 나이가 먹어도 먹어도 어렵다. 필요하지 않은 말임을 알면서도 튀어나오는 말들을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편견에도 꺾이지 않은 강인함과 타인의 처지를 살필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이 보증서가 된 거라고, 그런 사람은 결국 행복할 자격을 가진다고,
동백이를 통해서 천천히 말했다. 세상에는 여전히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원칙이 살아 있음을 스릴과 멜로, 휴머니즘이 온통 버무려진
명품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의 마음에 속삭였다. 어쩌면 드라마 작가가 예수님,부처님보다 한 수 위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마음에 쏙쏙박히게 가르쳐주니 말이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는 『모르고 사는 즐거움』에서 걱정의 40퍼센트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이고 30퍼센트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며 22퍼센트는 너무 사소한 것이고 4퍼센트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남은 4퍼센트만이 오로지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니 걱정하고 염려한다고 문제의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철학자 니체도 망각이 없다면 행복도, 명랑함도, 희망도, 자부심도 현재도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기억하는 것은 좋지만 망각은 더 좋은 것이다. 불행의 징조가 소나기처럼 찾아올 때 차라리 인디아나 존스 박사님처럼 한쪽 입꼬리를 쓱 올리고 웃어버리거나 아메리칸 스타일로 어깨 한번 으쓱하는 건 어떨까? 그러다 보면 버리거나 잊거나, 그래서 가벼워질 테니 망각은 신이 주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불행에서 걱정에서 쉬이 꺼내주니까 시간이 약이고,그 시간은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도움이 된다.
중고는 남이 쓰다 버린 물건이 아니라 내게는 없고 그에게는 있는 물건일 뿐이다. 건강하게 거래하고 풍족하게 쓰고 깨끗하게 넘겨주자. 버리면 쓰레기지만 필요한 사람에게 가면 득템이다. 기도는 뭔가를 공짜로 얻기 위한 나쁜 심보가 아니라 어쩌면 자기 자신에 대한 주문과 결심일 테니 그것 정도는 시작해도 될 것 같기도 했다.힘들 때 생각했다. 이번 주말에 성당에 가야겠다고..막상 성당 앞을 지날 때는 그 안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마음이 힘들 때, 아플 때 종교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죽음으로 점점 더 가까이 가고 있는 중년의 시기 종교에 대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