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31
김동찬
비잔티움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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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제국은 로마인가? 과거, 이제는 대과거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할 만큼 오래 전의 시각은 비잔티움 제국을 로마라고 보지 않았다. 누구의 말마따나 더 이상 도시 로마, 로마인, 로마어를 버린 제국은 로마가 아니라 '비잔티움' 제국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편, 최근의 시각은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표현 자체에 대해 의문을 표하며, 이 제국을 로마 제국, 통합 로마 제국과의 구분을 위해서는 동로마 제국으로 부르고 있다. 이들은 3세기의 위기를 거친 로마는 이미 기존 원수정 체제의 로마와 달라졌으며,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의 동로마 제국은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콘스탄티누스의 개혁을 거친 로마 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주장하며 비잔티움 제국의 로마 계승성, 아니 로마 그 자체임을 주장한다.
인터넷 상에서는 전자의 주장이 이미 낡았다는 표현도 모자라 논의할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나는 전자의 주장에도 어느 정도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비잔티움 제국은 로마 제국, 분할 이후의 동로마 제국 그 자체인 것은 맞으나 그 체제와 운영을 기존 통합 로마 제국의 연장선 상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제국의 단편만을 보는 것에 불과하다. 비잔티움 제국은 제국의 선진 문물을 배워 강해진 외부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끊임없는 변화를 거쳤으며, 기존의 성공을 보장했던 전통만을 고집하지 않았기 때문에 천 년을 더 이어갈 수 있었다. 즉, 비잔티움 제국은 로마 제국의 연장이지만 동시에 비잔티움 제국 그 자체로 이해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이 책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책의 서두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사두정치와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을 다루며, 비잔티움 제국의 시작이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연장선 상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이후 비잔티움 제국의 로마 계승성, 로마성, 혹은 로마 그 자체임을 강조하는 것에 매몰되지 않고 제국이 양면 전선의 압박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했던 여러 조치들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즉, 비잔티움 제국을 비잔티움 제국 그 자체로 바라보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치사에 국한되지 않고 제국의 경제, 사회, 문화같은 다양한 분야를 간결하지만 빠짐없이 서술하는 것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만 이 책을 초심자, 로마사에 대한 제반 지식이 없는 입문자에게 추천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사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제국의 새로운 국교로 등극한 기독교 교리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제국의 정치는 종교와 결코 분리될 수 없었으며, 종교에 대한 강렬한 논쟁이 제국의 변화를 이끌어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 만으로 그러한 교리, 가령 초기에는 아리우스파와 삼위일체파, 중기의 단성론과 합성론의 대립, 후기 성상 파괴 논쟁 등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또한 기존에 사용되던 용어와는 다른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이해를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비시고트, 오스트로고트라고 쓰는 이유 자체는 이해할 수 있으나, 서고트, 동고트라는 용어를 먼저 사용한 후 각주로 이것이 올바른 호칭이 아님을 지적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