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31
최혜빈
물고기는존재하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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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기 삶의 '혼돈'과 마주한 저자가 유명한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통해 혼돈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법을 찾고자 하는 시도로부터 시작된다. 그녀가 그의 삶을 통해 얻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찾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는 아래의 문장에 잘 나타나있다.
"내게 찾아온 혼돈에 뒤흔들리고, 내 손으로 직접 내 인생을 난파시킨 뒤 그 잔해를 다시 이어 붙여보려 시도하고 있을 때, 문득 나는 이 분류학자가 궁금해졌다. 어쩌면 그는 무언가를, 끈질김에 관한 것이든, 목적에 관한 것이든, 계속 나아가는 방법에 관한 것이든 내가 알아야 할 뭔가를 찾아낸 것인지도 몰랐다. 자기가 하는 일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전혀 없을 때에도 자신을 던지며 계속 나아가는 것은 바보의 표지가 아니라 승리자의 표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만약 그녀가 마침내 타인의 삶을 통해 삶의 절망과 혼돈을 이겨내는 법을 찾는데 성공했다면,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내 삶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이 내 삶을 이전보다 낫게 만들어주기를, 삶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품고 있기를 기대하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은 혼돈 그 자체였지만, 그는 놀라울 만큼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어린시절 형의 죽음도, 아내의 죽음도, 심지어 그토록 사랑하던 딸의 죽음도 그를 절망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분류한 수천종의 어류 표본이 지진으로 인해 깨지고 뒤섞여 이름 없는 물고기 잔해가 되었을 때에도, 그는 낙담하기 보다는 아직 세상이 이름 붙이지 못한 물고기들을 더욱 공격적으로 찾아나서는데 몰두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이토록 강하게 만드는 것일까, 모두가 절망에 빠질만한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나아가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힘의 원천은 데이비드 스스로는 "낙천성의 방패"라고 부르는 일종의 "자기 기만"이었다. 데이비드는 말한다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라고, 그리고 자신은 일단 일어난 불운에 대해서는 절대 마음졸이지 않는다"고 말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어떠한 모욕이나 실패도 마법처럼 칭찬으로 바꾸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에 관한 논문을 쓴 역사가 루서 스피어는 그가 자신의 이미지를 해칠 수 있는 정보는 교묘하게 편집하거나 삭제하는 재주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족벌주의에 대해 대학에 도움을 주려고 한 일이라고 합리화했으며, 자신이 임명한 교수의 성비위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 비위를 폭로한 자를 성도착자로 몰아가 방어했고, 자신을 학장직에서 끌어내리려고 한 사람을 독살하고 그의 죽음을 덮으려고한 정황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를 절망속에서 계속해서 나아가게 한 원동력, 그의 삶을 폭발적인 목적의식으로 가득 채운 일이자, 그가 분류학을 통해 궁극적으로 발견하고 실현하고자 했던 '자연의 사다리'는 '우생학'이라는 파괴적 결과로 이어졌다. 데이비드는 죽을때까지 우생학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미국 우생학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우생학적 강제 불임화의 합법화를 도입했다.
여기서 나는 궁금해진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자기 기만이 그를 비범할정도로 성공적인 인생-두 번의 결혼, 스탠퍼드대 초대 학장직, 수 많은 상, 당대 학자들의 존경, 에덴동산같은 집, 자신의 이름을 딴 학교 건물 등-으로 이끌었다면,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가 삶에서 누린 것과 같은 것을 원한다면, 결국 자기기만이 우리 삶에 대한 처방이 될 수 있는걸까. 작가는 이에 대해 '범주'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답한다. 분류학적으로 '물고기'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많은 범주와 개념들이 실은 실재가 아닌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 모른다. 데이비드는 분명 어떤 면에서는 죽는 날까지 성공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는 '자연의 사다리'라는 하나의 범주에 지나치게 얽매인 나머지 그 이면에 있는 삶의 다른 아름다운 요소들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자연은 그리고 삶은 '다양성'으로 인해 보다 풍부하고 강인하고 아름다워진다는 사실 그리고 모든 존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중요성을 갖는다는 사실-작가는 이를 '민들레 원칙'이라고 말했다-과 같은 것들 말이다. 데이비드가 성공의 대가로 놓친 것들은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될수도 있다.
이 책은 결국 모든 사람의 삶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혼돈과 절망을 극복하는 만능 무기를 쥐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위험한 허황이라고 폭로한다. 작가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통해 얻고자 했던, 그리고 내가 이 책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 '모든 사람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주는 하나의 비기' 같은 것은 당연히 환상이다. 결국 성공한 삶이란 사람의 머릿수 만큼이나 다양한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니 말이다. 이 책은 다만 우리가 삶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범주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우리가 이전과 다를 것 없는 삶에서 새로운 의미를 그리고 새로운 희망과 가치를 발견할수도 있다는 얘기를 전한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그것이 내 삶의 혼돈에 맞서 싸울 새로운 무기를 나에게 쥐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