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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3 강재구
    보통의 언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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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책 소개 인간은 같은 언어를 서로 다르게 사용한다. 우리는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서로 소통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느끼는 가장 가까운 언어를 골라서 소통하고 있다. 그래서 같은 말을 하더라도 때로는 다른 감정이 전달되기도 하고, 곡해되기도 하여 서로간에 갈등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김이나 작가의 보통의 언어들은 우리가 매일 접하는 언어의 힘과 중요성을 담담히 풀어낸 책이다 2.목차 파트1. 관계의 언어 : 주파수가 맞으려면 박자를 맞춰가야 해 파트2. 감정의 언어 : 감정, 누르지 않고 자연스레 곁에 두기 파트3. 자존감의 언어 : 약해졌을 때는 잠깐 쉬었다 갈 것 3.책속의 문장 : 짧고 좋은 글귀 1) 선을 긋다 누군가에게 약간의 불편함을 느낄 때, 그것을 그렇다고 말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두고 '선을 긋는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표현에 자동적으로 따라 붙는 감정은 서운함이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모두 약간씩의 거리를 두는 편이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무언가를 제대로 보려면 최소 한 발자국 정도는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처럼 선을 긋는다는 말은 '모양을 그린다'는 말과 같다. 마치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고 지키기 위한 테두리와 같다. 2) 외롭다 : 오롯이 내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인간은 태어났을때 부터 혼자이기에, 외로움이란 말이 가진 서러운 감정을 차치하게 된다. 나에게 외로움은 반드시 채워져야 하는 결핍이 아니다. 오히려 오롯이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감정이다. 외로움은 무대 뒤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수많은 역할로 존재하던 내가 아무 장치 없이 혼자임을 느낄때 만나는 소중한 감정이다. 오랫동안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지만, 가끔씩 이런 시간도 우리에겐 필요하다. 4.줄거리 작가는 오랜시간 작사가로 활동하며 얻은 언어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일상속 언어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한다. 이 책은 단순히 언어의 아름다움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때로는 서툴고, 무심코 내뱉은 말조차도 어떤 순간에는 큰 위로와 용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이나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독자들이 자신만의 언어를 돌아보도록 이끈다. 일상 속에서 언어가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치는지 새롭게 깨닫게 되는,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주는 책이다. 5.느낀점 이 책을 읽으며 언어에 대한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평소에는 무심코 내뱉은 말들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질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책에서 다룬 "미안해"나 "고마워" 같은 단어들은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사용하지만, 사실은 관계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임을 깨달았다. 특히 작가가 작사가로서 겪은 경험들은 내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언어가 단순히 의사 소통 수단이 아니라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예술의 도구로 가능할 수 있음을 느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괜찮아"라는 말에 대한 이야기였다. 작가는 이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될 수 있는지 이야기 하며, 말의 무게와 진정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전했던 말들이 진심으로 전해졌을지 돌아보게 되었고, 앞으로는 더 신중하게, 그리고 더 따뜻하게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언어들은 특별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특별한 말보다는, 일상 속에서 늘 함께하는 언어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일깨워주는 책이다. 이책은 단순히 언어에 대해 배우는 것을 넘어,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더 나은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고민하게 만든다. 김이나 작가의 따뜻한 시선 덕분에 읽는 내내 위로를 받은 느낌이다.
  • 2024-12-13 정재혁
    1945년 해방 직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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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한국의 역사 특히, 정치사는 식민지 시기의 좌우로 나뉜 반일 독립운동, 타의에 의한 갑작스런 해방, 그리고 혼란스런 해방공간에서 봉합되지 않은 좌우 이념갈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현대 한국에는 건전한 우파와 건전한 좌파가 공존하면서 상호비판과 국가 사회의 발전을 이루는 바람직한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우파는 친일, 친미로 이어지는 반민족적 기회주의자들이 본류를 이루는 바람에 진정한 민족적 민주적 우파는 주류가 되지 못하고 있고, 좌파는 이에 대한 반대와 저항이 주요 담론이 되면서 미래지향적인 이슈 보다는 과거사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현대 한국 정치사 형성기의 시대상을 현장감 있게 담아서, 안타까웠던 그 시기를 구체적으로 들여다 본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서문 1장. 폭풍: 건국준비위원회, 조선총독부의 종전 대책과 이중권력의 창출 1. 프롤로그 2. 조선총독부의 종전 대책과 여운형 1) 여운형과 건국동맹의 활동(1943~1945) 2) 조선총독부의 종전 대책과 여운형 교섭(1945년 8월 10일~8월 14일) 3. 일제의 패망·한국의 해방·건국준비위원회의 출범 1) 여운형과 총독부의 합의: 치안유지와 건국 준비의 간극 2) 건국준비위원회의 출범: 일제 통치의 종말, 해방의 공간 4. 막간극: 건준의 분열과 조선인민공화국의 창설 1) 건준의 제1차·제2차 개편과 분열 2) 소련군의 북한 진주와 평남 건준의 상황 3) 조선인민공화국의 창설과 제3차 건준 개편 5. 조선인민공화국의 귀결 1) 낙관적 정세관과 과도한 서울 중심주의 2) 조선인민공화국의 최후 6. 에필로그: 총독부의 전후 공작 2장. 미군의 남한 진주와 알려지지 않은 막후의 영향력: 일본군·통역·윌리엄스의 역할 1. 미24군단의 남한 진주와 최초의 정보: 17방면군의 정보공작, 통역·문고리 권력의 등장 1) 인천으로 향하는 미24군단 2) 미24군단과 일본군의 무선교신: 음모의 복화술 3) 통역·문고리 권력의 등장: 오다 야스마와 이묘묵 2. 알려지지 않은 정책 결정자 윌리엄스의 역할 1) “아무도 아닌 자”들의 결정: 미군정의 실권자 윌리엄스 2) 국무부 정치고문 베닝호프와 랭던의 동조 3장. 미군정의 총독부·인공·임시정부 정책과 권력의 불하 1. 미군정의 첫 조치: 총독부 관리의 유임, 선교사·가족의 입국, 한국인 정보의 유입 1) 조선총독부 관리의 유임과 해임 2) 주한 선교사 및 가족들의 입국 추진 3) ‘기독교전국고문회의’, ‘연희전문 정부’ 4) 관대한 친일과 엄격한 반공,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 5) 한국인들이 제공한 정보 2. 미군정의 인공 부정·임정 활용 정책과 남한 정치의 재편 1) 최초의 정책 결정: 여운형·인민공화국의 부정 2) 두 번째 정책 결정: 임시정부의 활용과 이승만·김구의 입국 3. 권력의 불하, 벼락권력의 시대 1) 고문회의의 창설 2) 두 달 만에 이뤄진 한국인 관리 7만 5,000명의 임명 3) 한민당의 세상 4) 미국 유학생, 기독교, 선교사 학교 출신자 4장. 알려지지 않은 진정한 반탁운동과 그 귀결 1. 순진한 하지의 순진한 계획 1) 고위급 정책을 파기한 하지 2) ‘정책 결정자’ 하지: 정무위원회 혹은 독립촉성중앙협의회 추진 3) “엉망진창” 하지 2. 알려지지 않은 진정한 반탁운동: 독촉중협의 전말 1) ‘잊힌 인물’ 이승만의 귀국 2) 독촉중협: 임정 지지와 독자노선의 사이 3) 독촉중협의 지향: 국무회의·민의 대표기관, 한국 정부의 모체 4) 알려지지 않은 진정한 반탁운동: 미군정·이승만·한민당의 3중주 남은 말: 1946년 5월의 대분기
  • 2024-12-13 최유신
    넥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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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기술적 도약이 좋았을까? 하라리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인류는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을 거의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그는 '사피엔스'에서 불평했다. 그의 다음 책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2015)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2018)은 불안감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았다. 이제 하라리는 태초부터 역사를 개괄하는 또 다른 저작 '넥서스: 석기 시대부터 AI까지의 정보 네트워크 역사'를 썼다. 이는 그의 가장 암울한 저작이다. 책에서 하라리는 더 많은 정보가 자동으로 진실이나 지혜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대신 정보의 집적은 인공지능(AI)으로 이어졌고 하라리는 AI의 도래를 종말론적으로 묘사한다. "만약 우리가 이를 잘못 다룬다면 AI는 지구상의 인간의 지배뿐만 아니라 의식의 빛 자체를 소멸시켜 우주를 완전한 어둠의 영역으로 만들 수 있다." 그는 경고한다. AI의 선례를 찾는 사람들은 종종 활자인쇄술을 언급한다. 인쇄술은 유럽을 책으로 넘치게 만들었고 과학혁명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하라리는 이런 설명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인쇄가 과학을 위해 사용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고 지적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1543년 초판 500부조차 팔리지 않았다. 작가 아서 쾨슬러는 이를 두고 "역대급 워스트셀러"라고 농담했다. 시중에서 실제로 많이 팔린 책은 하인리히 크래머의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1486)였는데 악마와 교접하고 남성의 성기를 저주한다는 성적으로 탐욕스러운 여성들의 사탄적 음모에 대한 장광설로 가득한 책이었다. 역사학자 타마르 헤르치그는 크래머의 책을 "전근대 시기에 인쇄된 텍스트 중 아마도 가장 여성혐오적인 텍스트"라고 묘사한다. 그럼에도 그는 이것이 "근대 초기의 기준에서 베스트셀러였다"고 썼다. 하라리는 크래머의 책이 독자에게 미친 영향력을 큐어넌QAnon에 비유하는데 크래머의 책은 수만 명을 죽인 마녀사냥을 부추겼다. 하라리는 이러한 살인적인 광기가 인쇄술에 의해 "더 악화되었다"고 본다. [PADO 트럼프 특집: '미리보는 트럼프 2.0 시대'] 하라리는 더 풍부한 정보의 흐름이 감시와 폭정도 악화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는 소련이 다른 것보다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정보 네트워크 중 하나"였다고 쓴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편지에서 소련의 지도자 조셉 스탈린에 대해 불평할 때, 그는 조심스럽게 "콧수염 난 남자"라는 완곡어법을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그의 편지를 가로채 그 내용을 파악했고 솔제니친은 8년간 굴라그에 수용되었다. 하라리는 소련이 자국 상황에 대해 수집한 자료의 대부분이 신뢰할 수 없거나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렇게 산더미처럼 쌓인 종이뭉치는 완전한 통제가 가능하다는 환상을 키웠고 이는 소련 시민 수백만 명을 죽였다. 하라리는 정보가 항상 이러한 파괴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러한 지옥 같은 사건들조차도 단지 짧은 에피소드에 불과했다고 그는 주장한다. 크래머가 부추긴 것과 같은 선동적인 광기는 강렬하게 타올랐다가 사그라지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을 영원히 광란의 상태로 유지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뇌관은 계속 바뀐다. 한때 이웃을 공격하도록 부추겼던 글이 한 달 또는 일 년 후에는 우스꽝스럽게 보일 것이다. 하라리는 하향식 공포 통치로 유지되는 국가들도 지속성 문제가 있다고 설명한다. 어떻게든 모든 편지를 가로채고 모든 가정에 정보원을 심을 수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들어오는 모든 보고서를 지능적으로 분석해야 할 것이다. 어떤 정권도 이를 관리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20세기에 완전통제에 가장 가까워진 국가들도 정보 관리에서 발생하는 지속적인 문제로 인해 기본적인 통치가 어려웠다. 어쨌든 종이의 시대에는 그러했다. 지금은 데이터 수집이 훨씬 더 쉬워졌다. 미래의 솔제니친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 서투른 암호로 된 무분별한 편지를 정부 우편을 통해 보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디지털 독재 정권은 그저 그의 검색 기록만 확인하면 되리라. 몇몇 사람들은 정부가 자신의 뇌에 칩을 이식할까 봐 걱정한다. 하지만 하라리는 사람들이 "그보다도 그런 음모론을 접하게 되는 매개체인 스마트폰 그 자체에 대해 걱정해야 한다"고 쓴다. 휴대폰은 이미 우리의 눈동자 움직임을 추적하고, 말을 녹음하고, 우리의 사적인 대화를 이름 모를 타인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성관계를 할 때도 기꺼이 이 도청 장치를 침대 옆에 둔다. 하라리의 가장 큰 우려는 AI가 대화에 참여할 때 일어날 일이다. 현재 대규모 데이터 수집은—늘 그래왔듯이—데이터 분석의 어려움으로 상쇄된다. 우리는 예를 들어, 경찰이 얼굴 인식 소프트웨어의 조언을 받아 무고한 흑인을 체포했다는 보고에 익숙하다(많은 알고리즘이 그렇듯이 백인 사진으로 가득한 데이터베이스로 훈련된 알고리즘은 백인이 아닌 사람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위험을 보여주지만 AI가 제대로 작동하기에는 너무 결함이 많다고 암시함으로써 가짜 위안을 줄 수 있다. 이는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얼굴을 인식하고, 모든 기분을 알며, 그 정보를 무기화하는 존재에 대해 어떤 방어가 가능할 수 있을까? 초기 근대 유럽에서 마녀사냥에 뛰어들고 싶은 독자들은 크래머의 광기 어린 책을 찾아서 구입한 후 번역(책은 라틴어로 쓰여졌다)까지 해야 했다. 오늘날의 정치적 망상은 사람들을 "흥미로운" 콘텐츠로 유도하는 클릭 극대화 알고리즘에 의해 부추겨지는데 이런 콘텐츠는 그들의 정의로운 분노를 자극하는 경우가 많다. 하라리는 AI가 그 콘텐츠를 스스로 생성하고, 각 사용자에게 최대의 도파민을 주기 위해 개인화하고 지속적으로 조정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보라고 한다. 크래머의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는 알고리즘이 만들어낼 콘텐츠의 헤로인에 비하면 포도당 캔디에 불과할 것이다. AI가 통제권을 장악한다면, 우리 모두를 농노나 사이코패스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럴까? 하라리는 AI를 궁극적으로 불가해한 것으로 여긴다. 그것이 그의 우려다. 2016년 컴퓨터가 한국의 바둑 챔피언을 이겼을 때, 그것이 둔 한 수는 너무나 기이해서 실수처럼 보였다. 그 수는 효과가 있었지만 알고리즘의 프로그래머들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우리는 AI 모델을 만드는 방법은 알지만 그것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라리는 우리가 무엇을 할지 모른 채 무심코 "외계 지능"을 소환했다고 쓴다. 작년에 하라리는 "아무도—심지어 그것들의 창조자도—이해하거나, 예측하거나, 신뢰할 수 있게 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디지털 마인드"를 풀어놓음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와 인류에 대한 심오한 위험"을 경고하는 공개 서한에 서명했다. 서한은 필요하다면 법의 지원을 받아 최소 6개월 동안 고급 AI 시스템 훈련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놀랍게도 그런 AI 시스템들을 개발한 연구원들 중 일부와 일론 머스크도 그 서한에 서명했다. AI가 너무 강력해서 그것의 발명자들조차 두려워한다는 인상을 줬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냉소주의자들은 그 서한을 자기 잇속을 위한 것으로 보았다. 그것은 인공지능에 결함이 있어 용도가 한정된 제품이 아니라 시대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발전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과대 선전을 부추겼다. 그것은 IT업계 리더들의 오펜하이머 스타일의 도덕적 진지함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들의 연구가 실제로 중단될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아무 비용도 들지 않았다. 서한에 서명하고 4개월 후, 머스크는 공개적으로 AI 회사를 출범시켰다. 하라리는 실리콘밸리의 정치싸움 위에 자리잡고 있다. 그의 높은 관점이 그에게 더 멀리 볼 수 있게 해주리라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너무 좁게 초점을 맞추어 나무만 보고 숲을 놓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너무 멀리 떨어져 태양계만 보고 숲을 놓치는 것도 가능하다. 하라리는 미래의 기술이 어떻게 민주주의(또는 인류)를 파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좋은 안내자이지만 그러한 기술들을 만들어내는 오늘날의 경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보시대의 경제는 위험천만했다. 콘텐츠를 소비하기에는 더 저렴하게 만들었지만 생산하기에는 덜 수익성 있게 만들었다. 무료 콘텐츠와 타겟 광고 모델이 저널리즘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보라. 2005년 이후 미국에서는 발행되는 신문의 거의 3분의1이 사라졌고 신문 업계 일자리는 3분의2 이상이 사라졌다. 이제는 신문 업계 노동자의 거의 7퍼센트가 단일 조직인 뉴욕타임스에서 일한다. 21세기 미국—정보혁명의 절정이자 그 중심부—에서 우리는 보도가 본질적으로 사라진 '뉴스 사막'에 대해 말한다. AI는 이를 악화시킬 위협이 된다. 더 나은 챗봇이 있으면 플랫폼들은 외부 콘텐츠에 링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챗봇들이 그런 콘텐츠를 합성해 재생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용자를 외부 사이트로 보내는 구글 검색 대신, 챗봇은 그 사이트의 내용을 요약해 사용자를 구글의 담장 안에 머물게 할 것이다. 미래는 백만 개의 링크가 있는 네트워크가 아니라 '트루먼 쇼' 스타일의 버블이다. 개인화되어 생성된 콘텐츠, 실제처럼 들리지만 실제가 아닌 목소리로 읽히고, 거기에 PPL도 들어간다. 다른 문제들보다도 이는 실제로 '사상'을 생성하는 작가와 출판사들을 독자들로부터 차단할 것이다. 우리의 지성을 발전시키는 기구들은 시들어갈 것이고, 인터넷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톰 이스트만의 말마따나 "거대한 웹사이트 다섯 개가 있는데 각 웹사이트마다 다른 네 곳의 스크린샷으로 가득한" 폐쇄된 루프로 퇴화할 것이다. 하라리는 우리의 지성을 발전시키는 기구들의 침식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그는 이런 추세의 징후이기도 하다. 비록 살과 피를 가진 존재이지만 하라리는 실리콘밸리가 생각하는 챗봇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그는 도서관을 털고, 패턴을 감지하며, 역사를 몇 가지 핵심 포인트로 요약한다. (그는 현대성에 대해 "'인간은 권력을 얻는 대신 의미를 포기하는 데 동의한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쓴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독자들을 위해 그는 재미있는 사실들을 빠르게 전달한다. 이 모든 것은 하라리의 광범위한 독서에서 나온다. 하지만 챗봇처럼, 그는 자신의 출처와 어느 정도 적대적 관계를 가지고 있어 '내가 읽을 테니 당신은 읽지 않아도 된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는 다른 작가들로부터 이야깃거리—멋진 농담, 의미 있는 일화—를 캐내지만 다른 사람의 견해에 감명받는 경우는 거의 없어 보인다. 거의 모든 학자들은 '감사의 말'에서 그들에게 영감을 주거나 도전을 준 대화 상대를 밝힌다. '넥서스'에서 하라리는 그의 비즈니스 관계 이외의 어떤 지적 영향도 인정하지 않는다. 출판사들, 편집자들, 그리고 "사피엔십Sapienship의 인하우스 리서치 팀"—즉, 그의 직원들—에게만 감사를 표한다. 여기엔 그의 금욕주의도 연관이 있다. 하라리는 인간의 "허구"에 "얽매이거나" "눈이 멀지" 않기 위해 명상을 한다고 말한다. 그 말에 숨은 뜻은, 어떤 의미에서는 밖에 있는 모든 게 함정이라는 것이다. 지적으로, 하라리는 소믈리에보다는 절대로 술을 안 마시는 사람에 가깝다. 그가 진지한 책에 몰두해 있는 모습보다는 자신의 생각에 깊이 빠져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가 더 쉽다. 하라리가 현재와 두는 거리는 그가 AI를 바라보는 방식을 만든다. 그는 AI를 그저 일어난 일로 논한다. 그것의 도래는 특별히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넥서스'의 시작에서 하라리는 비유로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마법사의 제자'를 언급한다. 이는 선의를 가졌지만 오만한 초심자가 자신의 이해를 넘어선 마법을 부리는 내용이다. 사람들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진 강력한 것들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동의하면서도 하라리는 개인에게 책임을 돌린다며 괴테를 비난한다. 하라리의 관점에서 "권력은 항상 여러 인간 사이의 협력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사회의 산물이다. 분명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왜 마법사의 제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인공지능은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과학자들이 수십 년 동안 의도적으로 연구해 온 것이다. (MIT의 AI 프로젝트는 1959년에 시작돼 여전히 운영 중이다.) 이러한 노력들은 단순한 호기심에 의해 추진된 것도 아니다. 개별 AI 모델은 수십억 달러의 비용이 든다. 2023년, 북미와 유럽 벤처 캐피털의 약 5분의1이 AI에 투자되었다. 이러한 금액은 IT 기업들이 독점이나 마케팅을 통해 제품으로부터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규모에서, 가장 명백한 구매자는 다른 대기업이나 정부다. 기업과 국가에 더 많은 권력을 주는 것이 잘 될 거라고 우리는 얼마나 확신하는가? AI는 자체적인 목표를 가진 외계 지능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가정하면, 그것을 다룰 수 있을 만큼 부유한 사람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마법사의 제자'처럼 AI 개발자들이 창조물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보다 그럴싸한 시나리오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킨다. 바로 그들이 통제력을 잃지 않고 당초 계획대로 그것을 사용하거나 판매한다는 시나리오다. 보다 비유에 적합한 독일 우화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일 수 있다. 권력에 굶주린 인셀incel이 소유자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하는 반지를 만들고 신들이 그것을 두고 전쟁을 벌인다. 하라리의 눈은 실리콘밸리의 경제나 정치보다는 지평선에 더 집중되어 있다. 이는 깊은 통찰을 제공할 수 있지만 동시에 만족스럽지 못한 권고사항을 제시한다. '넥서스'에서 그는 네 가지 원칙을 제안한다. 첫 번째는 "선의"로,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컴퓨터 네트워크가 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때, 그 정보는 나를 조종하기보다는 돕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사악해지지 말자. 오케이. 누가 반대하겠는가? 하라리의 다른 세 가지 원칙은 정보 채널의 분산화, 우리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사람들의 책임성, 그리고 알고리즘 감시로부터의 휴식이다. 다시 말하지만 좋은 이야기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뻔한 소리인 데다가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특히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것들로 추상적으로 표현되면 더욱 그러하다. 하라리는 '넥서스'를 선언으로 끝맺는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우리 모두가 내리는 결정"이 AI가 "희망찬 새로운 장"이 될지 아니면 "치명적인 오류"가 될지를 결정하리라는 것이다. 아무렴 물론이다. 하지만 그의 지속적인 1인칭 복수 사용("우리 모두가 내리는 결정")은 은연 중에 AI가 특정 기업과 그 기업을 운영하는 개인들의 산물이 아니라 인류의 집단적 창조물이라고 시사한다. 이는 AI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들이 누군지를 모호하게 만든다. 바로 그 행위자들이 하라리가 말하는 바로 그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올바른 정보에 입각한 활발한 토론을 방해하고 우리의 지적 생활을 약화시키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말이다. AI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것을 개발하는 기업들과 직접 맞서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AI 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걸 우려하는 활동가들은 구체적으로 독점금지법, 더 엄격한 규제, 투명성, 데이터 자율성, 대안 플랫폼에 대해 말한다. AT&T가 그랬던 것처럼 대기업들을 해체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라리가 명백히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가치관은 실제로 그러한 조치들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그가 그리는 악몽 같은 가상 시나리오 중 일부가 통제불능의 기업들(그리고 국가들)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라리는 실리콘밸리의 지배적인 세계관에 쉽게 들어맞는다. 그가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절제한다는 사실은 자주 언급되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도 실리콘밸리의 정보 수집과 표현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 세계의 많은 사람들처럼, 그는 기술적 디스토피아주의와 정치적 수동성을 결합한다. 그는 IT 대기업이 AI를 더욱 발전시키면서 인류를 끝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을 막는 걸 긴급한 우선순위로 다루지는 않는다. 인류 전체의 이야기로 그리는 그의 서사시적 내러티브에는 그런 '우리 대 그들'의 충돌이 들어갈 공간이 별로 없다. 하라리는 종種의 규모에서 잘 쓴다. 책으로서 '넥서스'는 '사피엔스'의 최고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하지만 AI가 어떻게 재앙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충격적인 비전을 제공한다. 문제는 하라리의 광각 렌즈가 우리가 그것을 피하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느냐다. 때로는 산 정상에서 내려와야 가장 좋은 전망을 볼 수 있다.
  • 2024-12-13 최유신
    솔라(SO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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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인슈타인 이론의 극히 일부분을 수정해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 뒷말이 무성한 가운데 몇십 년간 그 후광을 톡톡히 누려왔지만 정작 연구와는 담쌓은 지 오래인 물리학자 마이클 비어드. 관대한 공적 삶과 달리 사생활은 영 꼬이기만 한다. 반복되는 결혼과 이혼, 사이사이의 외도, 술을 비롯한 온갖 나쁜 음식에 대한 못 말리는 집착으로 무너져가는 몸. 지금 그는 보란듯이 바람을 피우는 다섯번째 아내 퍼트리스를 향한 갈망으로 몸부림치고 있다. 남편의 끊임없는 외도에 대한 복수로 그녀가 고른 상대는 최근 그들의 집을 수리해준 건축업자. 퍼트리스에게 노골적으로 무시당하면서도 그녀를 갈구하는 비어드의 마음은 커져만 가고, 일에 몰두해 괴로움을 잊어보려 해도 명성에 기대 관성적으로 살아왔던 그에게는 새 연구를 할 의욕도 아이디어도 없다. 때마침 구원 같은 소식이 날아든다. 극지방에서 지구온난화의 실태를 관찰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달라는 초청을 받은 것. 일주일의 여정을 마치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돌아온 집에서 비어드가 맞닥뜨린 것은 아내의 새 애인, 그것도 그가 책임자로 있는 국립 재생에너지 센터의 연구원 톰 올더스다. 헐벗은 모습으로 비어드와 마주한 올더스도 당황해서 허둥지둥 변명하기 바쁘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의 앞날을 영영 바꿔놓을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한편 비어드는 공개 석상에서의 무신경한 발언으로 ‘신나치’ ‘호색한’이라는 딱지가 붙은 채 국립 재생에너지 센터에서 쫓겨나지만 그것도 잠시, 축구 승부조작 사건과 유명인의 가십을 비롯한 또다른 스캔들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의 실수를 깨끗이 지워주고 곳곳에서 또다시 노벨 물리학 수상자의 명성을 원한다. 이제 그는 인공광합성 연구를 통해 온난화라는 대재앙으로부터 지구를 구하겠다는 야망을 불태우고 있다. 모든 아이디어가 올더스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지만, 특허를 따고 자금을 유치하는 비어드의 노력이 없었다면 애초에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채 사라져버렸을 테고 올더스의 노트를 본 사람도 달리 없으니 들통날 염려는 없다. 과연 도둑질한 아이디어로 시작된 원대한 계획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을까? 이제 매인 데 없이 연애만 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지구온난화 문제에 응답하는 매큐언식 블랙유머, 현대사회의 모순과 인간 본성에 대한 시니컬한 조망 [솔라]에서 매큐언은 지금까지 진지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전환"(파이낸셜 타임스)이라 할 만큼 본격적인 유머를 구사한다. 비어드가 과체중의 몸으로 끙끙대며 수많은 방한 장비를 갖추는 모습, 영하 26도의 야외에서 요의를 해결하다 곤경에 빠진 후 부풀려가는 터무니없는 상상, 북극곰에게 습격당할 뻔한 위기를 싱겁게 벗어나 훗날의 무용담을 위해 방금 겪은 일을 비장하게 복기하는 순간 등, 작가의 경험이 바탕이 된 극지방 탐사 장면은 특히 폭소를 유발한다. 아내의 질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가상의 상대와 정사를 꾸며내는 장면, 기차 맞은편의 낯선 승객과 경쟁적으로 감자칩을 먹어치우는 소동 또한 슬랩스틱코미디에 가까운 액션으로 허를 찌른다. 현대사회의 모순과 인간 본성의 문제를 포착하는 특유의 통찰력,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작가적 기량 역시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현재 전 세계가 직면한 기후변화와 에너지 고갈이라는 위기를 축으로 매큐언은 허울뿐인 전시 행정에 매달리는 정부, 기만적인 에너지 업계와 학계, 잔혹하고 변덕스러운 매스미디어의 면면을 정교하게 묘사한다.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한심한 주인공과 그보다 나을 것 없는 주변 인물들은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이 모든 요소를 치밀하게 쌓아올리며 십 년에 걸친 비어드의 좌충우돌을 추적한 소설은 그의 인생이 걸린 발명품이 마침내 공개를 앞둔 결전의 날로 독자를 이끈다. 그의 모든 업적과 과오가 한자리에 모이는 뉴멕시코의 소도시 로즈버그, 작가 스스로 ‘여러 장의 접시를 돌리는 느낌으로 썼다’고 고백할 만큼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감도는 그곳에서 비어드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솔라]는 웃긴 동시에 진지하고, 밝은 동시에 어둡고, 전 지구적인 문제를 다루지만 어떠한 입장도 강요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순수한 쾌감을 안기는 대가의 영리한 작품이다.
  • 2024-12-13 장수현
    도둑맞은 집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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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시간이 붕 뜨거나, 잠깐의 여유가 생기면 습관처럼 핸드폰을 꺼내 들어 짧으면 10초, 길면 1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동영상 컨텐츠를 즐긴다. 이전에는 짧은 시간 동안 재미있게 즐기는 시간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이는 내 의도와는 다르게 굉장히 많은 시간을 소모하고 있었다. 그러한 30초짜리 영상을 하루 종일 보다 보면 1시간, 2시간을 사용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게 시간을 즐기고 나서 남은 것이라고는 없었다. 심지어, 이 짧은 컨텐츠에 빠져 긴 컨텐츠는 즐기지 못하고, 즐긴다고 하더라도 2배속으로 보지 않으면 지루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길게 집중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이 느껴진다. 또, 나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모두가 멍청해지고 있다는 것을, 집중력을 잃어버리는 것을, 남들도 똑같다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도둑맞은 집중력'을 통해 자각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처럼 엄청나게 빠른 정보의 홍수와 담을 쌓고 프로빈스타운으로 도망갔다. 이 세상에서 벗어난 기간 동안 생각하고, 얻어낸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경험들을 이야기한다. 빠른 시간 동안 그 많은 정보 흡수하는 것이 마냥 좋은 일은 아니었다. 우리의 뇌는 이를 받아들이는 한계가 있다. 빠른 속도의 흡수는 전부 흡수할 수 없고, 놓치는 것이 굉장히 많으며, 생각을 덜 하게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장기적인 집중력에 손상이 생기는 것이다. 지난 기간 동안 숏폼을 봐왔던 나로서 멍청해진 기분은 이것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이러한 컨텐츠는 내 또래뿐만 아니라 젊은 층, 20, 30대의 사람들이 많이 즐기고 있고, 나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를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이 들었다. 단기적인 집중력보다 장기적인 집중력이 중요한 것은 '몰입'에 있다. 미하이 칙센트의 '몰입'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보상 없이도 그 일 자체를 즐기는 그 순간이 행복함으로 남는 것이다. 여러 자기개발 서적에도 '몰입'에 대한 이야기가 언제나 존재했기 때문에 익숙했다. 이 '몰입'의 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하다고 느끼는 연구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즉, '몰입'은 행복을 결정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몰입을 위해서는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단기적인 집중력으로는 이를 진행할 수 없으며, 우리는 숏폼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 자명해 보인다. 빌 게이츠는 매년 두 번 정도 'Think week'를 갖는다고 말했다. 이는 일상, 즉, 디지털 세상에서 벗어나 자신만이 있는 자연 속 공간에서 지내는 주를 말한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고, 많은 아이디어들이 뿜어져 나온다고 빌 게이츠는 설명했다. 내 룸메이트는 샤워를 하고 돌아올 때마다 항상 달려온다.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리를 싸매도 나오지 않던 생각들과 아이디어들이 기이하게도 책상 앞에서 벗어나 샤워를 하기만 하면 물밀듯 밀려온다고 말했다. 그 아이디어를 까먹고 싶지 않아 매번 재빠르게 달려와 메모하던 것이다. 나 또한, 하루 종일 앉아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몸을 움직이는 취미 생활을 병행하였을 때, 생각이 풍부해지고, 아이디어가 번뜩 튀어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를 기록하기 위해 메모장을 항상 들고 다닌다. 이처럼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일상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중요한 것을 느꼈다. 책을 읽기 전까지 머릿속 잠재의식에서 남아있었지만, 책에서 나온 여러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내 머릿속에 있던 사례들이 뿜어져 나왔다. 이는 책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이 아니라 공감하게 된 내용이라 더 와닿고, 기억에 남는다. 세상이 변하는 가운데, 우리의 뇌의 한계를 인정하고 살아가야 한다. 세상에 나와 있는 많은 방해물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강화하여야 한다. 또한 이러한 근본적인 삶의 문제들을 논하다 보니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세상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목표와 생활 양식은 크게 변하지 않지만, 많은 디테일한 부분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방식이나 사람들과 교류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사소한 문제점이 삶의 주도권을 흔드는 것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고, 이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2024-12-13 장수현
    시대예보: 호명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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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이분의 말씀이 가까운 미래의 예언이라면, 적어도 지금의 나는 운이 꽤 좋은 사람일 것이다. 요약)AI를 비롯한 기술의 발전은 과거와 달리 모두가 무한한 정보를 취할 수 있게 세상을 변화시켰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현대인은 ‘분석 마비’ 즉, 너무 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하느라 아무 것도 못하는 상태를 겪는다. 최적의 해법이 모두에게 공개됐으니 ‘보태보태 병(뭐든 더 좋은 것이 있다면 보태야 한다는 강박증)’처럼 무엇을 하더라도 극단의 최선을 추구해 피로감만 남는다. 선발되지 못한 사람의 노력은 평가 절하된다. 이런 사회에서 저자가 제시한 해결책은 바로 ’불필요한 정보를 단절하고 나의 길을 선택하는 것. 수많은 해답지 중 어떤 것을 하지 않을지를 가려내고 자신의 본진을 골라 그것에 매진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선택과 집중’이다. 나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스스로에게 물어 그동안 꾸준히 한 것, 좋아서 한 일을 정의해야 한다. 축적된 것을 발견하고 없다면 앞으로 축적해 나가야 한다. 그럼으로써 ‘나’라는 개인은 고유해진다. 경쟁을 부추기는 선발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진다. 무한한 정보 중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만 적절하게 취할 수 있는 개인들만이 대등하고 수평적인 연대를 통해 성장하는 시대를 예보한다. _나는 자발적 외톨이가 되어 17년 만에 처음으로 나와 가장 긴 시간 대화를 나눴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게 무엇인지 들여다보고자 마음속 계단을 하나씩 내려갔고, 여행 끝에는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한 삶의 우선순위들이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_ <우리의 겨울이 호주의 여름을 만나면> 중 지난 해 육아휴직을 했을 때, 나는 그동안 꾸준히 한 것과 좋아서 한 일에 대해 나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했다. 그 결과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고 있으며 누구 엄마, 누구 딸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일로 내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로부터 수평적인 연대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끌리고, 그들과의 크고 작은 연대를 꿈꾼다. 매사에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게 없는 사람과의 연대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벤저민 하디는 퓨쳐셀프에서 ‘자신이 바라는 미래에 전념하면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과 조언을 주고받으며 협력 관계를 구축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한 협력 관계가 연대고 고유한 개인들은 연대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하며 성장한다. 연대의 범위는 플랫폼 위에서 확장될 수 있고 다정함과 진정성, 느슨함을 특징으로 한다. (언제 또 흔들릴지 모르지만) 요즘의 나는 부를 키우는 것보다 즐겁게 사는 일에 관심이 더 많다. 부는 수단이지만 즐거운 인생은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돈이 있어야 좋아하는 걸 하지..’ 라는 말은 함정이다. 수단을 목적으로 사는 사람과 목적에 집중한 인생을 사는 사람, 어느 것이 맞을까? P112. 하루의 시험을 잘 본 이 가 평생의 혜택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거듭난 이가 스스로 성장하며 그 날카로움이 주머니를 뚫고 올 때까지 모두가 기다려주고 지켜보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P255. 각각의 관계는 작은 재무제표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먼저 배려하고, 나누고, 베푸는 이들은 당장의 재무제표에서 손실을 본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본 결합 재무제표에서는 흑자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커져갑니다. P135.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서 완전한 본업이 아닌 취미나 부업의 영역이라고 해도 타인으로부터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만큼의 조예를 쌓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영역을 ’본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본진이란 뚜렷한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시간을 투자하여 경험을 쌓아가는 분야를 의미합니다. 시간과 열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자원이기 때문에 그 에너지를 어떻게 소모할 것인지, 그리고 그 결과물을 어떻게 축적할 것인지의 싸움입니다. 스스로를 증명코자 하는 이들은 각자의 스토리를 자신 만의 속도로 만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이 좋다. 읽으면서 내 주위의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 2024-12-13 김진곤
    아버지의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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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죽음으로,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시작됩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그것도 누가 보면 블랙 코미디라고 할 법한 방식으로요. 아버지는 노동절에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소박하고,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와 사촌 오빠의 앞길을 막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자의로 그런 일이 발생한 건 아니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빨치산이었습니다. 그는 20대에 사회주의 사상을 접했으며, 약 4년 동안 공식적인 사회주의자로 활동했고, 그 후에는 그 후 20년 정도 옥살이를 하다가 출소 후 고향인 구례에 가서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나는 아버지 없이 20여 년을 자라야 했으며, 아버지의 출신으로 인해 나의 사회생활이 일정 수준 피해를 보리라는 걸 알았습니다. 더군다나, 사회주의자인 아버지는 생활력마저 바닥이었습니다. 사회주의자라는 말이 무색하게 아버지는 노동하는 것을 싫어했으며, 그를 위해 돈은 많이 쓰지 않았지만 남을 위해서는 많은 것을 퍼주는 '호구'였습니다. "오죽흐먼 나헌티 전화를 했겼어, 이 밤중에!" 또 그놈의 오죽하면 타령이었다.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오 죽해서 아버지를 찾는 마음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받은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는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을 위해 빚보증을 서슴없이 서 주었고, 대신 농사일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던 아버지였지만 정작 그로 인해 나의 가족이 이득을 본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내 인생의 걸림돌이었던 아버지. 나는 아버지를 그저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니까, 내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그를 회고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약 3일 동안 진행되는 아버지의 장례식. 여기서 나의 역할은 상주였습니다. 어쩔 수 없는 가족의 의무로 인해,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머물게 됩니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 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찾아옵니다. 어린아이(=아버지의 담배 친구)에서부터, 전 아내의 동생까지 그 사람들의 부류 역시 다양합니다. 이들은 모두 아버 지의 살아생전, 그와 약간이나마 인연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아버지의 추천 덕에 암내 제거 수술을 하고 결혼한 영자 그리고 아버지 덕분에 종교의 자유를 인정받고 잘 살고 있는 오촌 조카 경희 이들은 모두 아버지에게 어떠한 방식으로든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버지 덕에 그들의 인생이 나아졌다고 말하는 사람 들을 보고 나는 묘한 기분을 느낍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여느 장례식에서 보기 힘든 인물들도 옵니다. 전직 빨치산들입니다. 스무 명 남짓한 사회주의 자들이 아버지의 장례식에 와 추도사를 읊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옳았든 틀렸든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 나는 불편한 모든 현실에서 몇 발짝 물러 나 노상 투덜댔을 뿐이다. 그런 내가 아버지를 비아냥거릴 자격이나 있었던 것인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미안했다. 단지 한때 같은 이념을 가졌었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를 추도하러 온 사람들을 보며, 나는 아버지가 평생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실감합니다. 이들은, 아버지를 자신의 동료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해 위장자수를 했고(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느낌이죠.)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 없었죠. 빨치산들은 단순히 과거 동료를 기리기 위해 먼 걸음을 했던 것입니다. 과거 우익 활동가였던 사람도 아버지의 장례식에 옵니다. 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가진 김상욱 씨는(아버지 이름은 고 상욱입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며,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장례식에 찾아왔습니다. 아버지가 한창 사회 운동을 하던 시절, 김상욱 씨는 스물셋의 순경이었습니다. 빨치산들이 김상욱 씨의 일터를 쳐들 어왔던 날, 김상욱 씨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다락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 그를 나의 아버지가 발견했던 것입니다. 이제 자신은 죽은 목숨이라고 여겼던 김상욱 씨의 예상과는 달리 아버지는 그의 목숨을 앗아가지 않습니다. 그 뒤로 김상욱 씨는 때때로 아버지에게 조금의 식량을 보냈습니다. 몇십 년이 지나고 감옥에서 아버지가 출소했을 때, 김상욱 씨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 계속 고민하던 나는 대학동문이자 아버지의 막역지우인 학수와 얘기를 나누게 됩니다. 학 수는 그가 아버지와 가까워지게 된 일화를 나에게 털어놓습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학수가 아무리 자신에게 말을 놓으라고 해도 그를 '윤학수 씨' 혹은 '윤 군'이라고 불렀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수는 노인정에서 다녀오는 나의 아버지를 봤는데 얼굴에 상처가 나 있었습니다. 학수는 이를 보자 마자 노인정에 달려가서 소리쳤습니다.
  • 2024-12-13 안성아
    벌거벗은 한국사 : 영웅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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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STORY 간판 프로그램 〈벌거벗은 한국사〉를 통해 늘 재밌게 보고 있었던 최태성 강사의 강의는 한국사를 쉽게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해주었다. 방송이 끝나도 다음 스토리가 궁금할 정도로 애착이 가는 프로그램이였다. 당연히 책으로 나왔기에 읽어볼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인이라라면 한국사를 알아야 한다는 지론이다. 특히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영웅으로 대접 받는 위인들은 알아야 그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왜 학창시절에 이런 재미를 몰랐을까? 그 때 알았더라면.. 이라는 후회도 들었다. 우리 역사가 바뀌고 역사가 박살나고 아파할 때 마다 그 역사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나라를 살린 영웅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 후손들이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반만년 한국사 영웅들의 뒷이야기를 아주 재밌게 파헤친 역사 교양서인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순신, 김만덕, 이봉창 등 많은 역사적 영웅들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었고, 그들과의 감정이입이 그대로 느껴졌다. 장군이자 명장이라는 수식어 뒤에 감쳐야만 했던 인간 이순신의 아품이 무엇인지, 기생이었던 김만덕이 어떻게 전 재산을 털어 제주를 구했는지 신일본인이 되고 싶었던 이봉창이 어쩌다 일왕 암살을 시도하게 되었는지 등 영웅들의 이야기가 주입식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모습처럼 입체적이고 다각적인 시각에서 다가왔다. 이 책에서 말하는 영웅들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결국 해내고 만다는 결론 본인의 희생이 있더라도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끝내 승리를 거둔다는 것이다. 한국사에 대한 뜨거운 심장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이 책을 읽고 느꼈다. 이 영웅들처럼 지금 우리 시대에 영웅이 나타나길 한편으로 꿈꿔본다. 그 영웅들을 보면서 과연 나는 우리 시대 우리 사회 속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가 역사 속 한 페이지에 공을 들여 살아가고 있는가? 이런 의문도 든다. 이 책은 1부에서 시대의 난제를 극복한 영웅편으로 해상왕 장보고가 어떻게 무역왕이 되었는지, 충무공 이순신은 왜 죽음을 생각했는지,승려 사명대사는 왜 칼을 뽑았는지, 기생 김만덕이 어떻게 왕을 만났는지 등 그 시대 영웅들의 뒷 이야기가 재밌게 펼쳐졌다. 또 2부는 대한민국을 지켜낸 독립영웅편으로 벌거벗은 항일 의병장 안중근은 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나, 벌거벗은 총사령관 사냥꾼 홍범도의 총은 왜 일본군을 향했나, 벌거벗은 청년 독립투사 조선인 이봉창은 어떻게 일왕에게 폭탄을 던졌나, 벌거벗은 민족사업가서울의 대표 명소 북촌은 어떻게 탄생했나 등 총 8장의 이야기로 그 흥미가 풍족하다. 무엇보다 그 영웅들의 알지 못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한국역사에 대한 흥미가 더 풍부해지는 느낌이다. 많은 학생들이 이 책을 통해 한국사를 많이 사랑하고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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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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