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7
고민지
채식주의자(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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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채식주의자』는 문학이 인간의 심연을 어떻게 포착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채식’이라는 일견 단순한 선택을 통해 여성의 몸, 욕망, 저항, 해방의 문제를 교차적으로 드러내며,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사회적 억압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 소설은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은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이라는 제목 아래 다른 화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 과정에서 한 여성(영혜)이 고통 속에서 자신의 삶과 신체를 통제하려는 의지를, 주변 인물들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독자에게 직조한다.
소설은 영혜의 남편 시점에서 시작된다. 첫 장 ‘채식주의자’에서는 “특별할 것 없는 여자”로 묘사되는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거부하며 채식을 선언한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의 원인은 ‘악몽’이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의 내면적 고통에 공감하기보다는, 그것이 자신의 사회적 체면과 일상에 미치는 영향에만 집착한다. 그는 아내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점점 병적으로 변화해가는 그녀를 ‘수치’로 여기며 그녀를 방치하고 끝내 외면한다. 이 장은 여성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대상화되고, 자신의 신체와 욕망마저도 타인의 기준에 따라 규정되는지를 보여준다.
두 번째 장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인 영상작가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그는 예술적 영감을 핑계로 영혜의 육체를 카메라에 담으며 그녀를 욕망의 대상으로 소비한다. 이 장에서는 영혜가 점차 식욕을 거부하는 수준을 넘어서, 자신의 몸 자체를 무의미하게 여기며 ‘식물’이 되기를 희망하는 상태에 이른다. 그녀는 점점 인간 사회의 규범과 소통을 단절하고,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본능까지 끊어내려는 경지로 나아간다. 형부는 그런 그녀의 파괴성과 순수함에 매혹되어 결국 윤리적 선을 넘고, 이는 영혜의 몰락을 더욱 가속화한다. 이 장은 영혜의 몸이 가족, 사회,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함부로 소비되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세 번째 장 ‘나무 불꽃’은 영혜의 언니인 인혜의 시점이다. 이 장에서 영혜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이며, 인혜는 가정을 잃고 혼란 속에 동생을 간호한다. 인혜는 영혜를 끝내 이해하지 못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선택한 ‘무’의 상태, 인간됨을 거부하는 삶을 통해 역설적으로 자신 역시 억압받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점점 영혜의 파괴적 저항에 일종의 존경과 연민을 느끼게 된다. ‘나무가 되고 싶다’는 영혜의 마지막 희망은 인간 사회의 고통, 폭력,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가장 순수한 바람처럼 느껴진다.
한강은 『채식주의자』를 통해 ‘정상성’의 폭력성을 해부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상적인 삶, 정상적인 여성성, 정상적인 인간관계는 사실 얼마나 많은 억압과 침묵 위에 세워진 것인가. 영혜는 채식이라는 작고 사적인 결정을 통해 이 구조에 균열을 내고, 그 균열이 퍼지면서 그녀는 사회에서 버려지듯 고립된다. 그 고립은 곧 정신적 해체로 이어지고, 그녀는 끝내 인간됨을 거부하며 식물이 되기를 갈망한다.
작품 속 ‘채식’은 단순한 식습관이 아니다. 그것은 폭력에 대한 거부이며, 사회적 언어로부터의 이탈이고, 자기 존재에 대한 극단적 성찰이다. 영혜의 꿈에 등장하는 피와 살, 동물의 울음소리는 그녀가 견뎌온 무형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상징하며, 그녀의 침묵은 말보다 더 강한 비명을 내지른다.
이 소설이 특히 인상 깊은 이유는, 한강이 직접적인 설명 없이도 독자 스스로가 인물의 감정과 상처를 상상하고 해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서늘하고도 아름다운 문장은, 인간 내면의 고요한 폭풍을 묘사하며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다. 한강의 문체는 감정을 억제한 채 내면을 응시하는 방식으로, 오히려 더 강렬하게 감정을 이끌어낸다.
『채식주의자』는 읽는 내내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할 용기를 주는 작품이다. 한 여성이 자신의 몸을 거부함으로써 세상에 던지는 질문은, 결국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제기한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내가 나의 삶을 선택하고 있는가”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여성주의 소설도, 정신병리 소설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지켜내려 하는지를 다룬, 가장 깊은 차원의 이야기이다. 『채식주의자』는 문학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새삼 느끼게 하는 작품이며, 그 여운은 책장을 덮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