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8
윤우영
채식주의자(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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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아무런 반항도, 분노도 없었다. 하지만 그 한마디는 그 어떤 고함보다 크고 거셌다. 『채식주의자』를 덮고 난 후에도 나는 오래도록 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소설은 나에게 단순한 '문학 작품' 그 이상이었다. 살아 있는 인간, 숨 쉬는 여성의 내면을 들여다본 것 같았고, 현실의 폭력과 침묵, 억압과 탈출에 대해 깊은 고민을 안겨주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혼란스러웠고, 때로는 무력했고, 때로는 참혹하게 아팠다. 그러나 그 감정들 덕분에 나는 조금 더 '깊이' 인간을 바라보게 되었고, ‘다르게’ 사회를 생각하게 되었다.
채식주의, 그 이상의 선언
처음에는 의아했다. 왜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선택이 이렇게까지 큰 파장을 일으킬까?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나는 깨닫게 되었다. 이건 단순한 식습관의 문제가 아니었다. 영혜의 ‘채식’은 세상과의 단절이었고, 자신의 몸을 되찾기 위한 마지막 저항이었다. 한강 작가는 영혜라는 인물을 통해 말한다. 우리 사회는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폭력을 정당화하는지를. ‘평범한 아내’, ‘순종적인 딸’, ‘정상적인 여자’라는 기준 아래, 여성은 얼마나 오랫동안 침묵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영혜는 말하지 않지만, 그 침묵 안에 온몸을 던져 외친다. 나는 더 이상 그런 인간이기를 거부한다고. 그 외침이 너무 조용해서, 더 아팠다.
시선의 폭력, 그리고 타인의 무관심
소설은 세 명의 시점—남편, 형부, 언니 인혜—으로 진행된다. 놀랍게도 정작 영혜의 목소리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는 철저히 타인의 시선을 통해 존재한다. 남편은 영혜를 ‘무난하고 튀지 않는 아내’로 소개하고, 그녀의 변화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형부는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영혜를 성적 대상으로 이용하고, 인혜는 걱정하면서도 결국 영혜의 세계에 도달하지 못한다. 나는 이 구조가 너무 섬뜩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 사회도 그럴지 모른다.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고 판단하고, 결국은 거리 두기를 한다. 영혜는 계속해서 침잠해 가는데, 아무도 그녀의 손을 진심으로 잡지 않는다. 누구도 그녀가 왜 고기를 거부했는지, 왜 나무가 되려 했는지 '묻지' 않는다. 그저 '이해할 수 없다'며 그녀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나는 그 무관심이 가장 큰 폭력이라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처음 뼈저리게 느꼈다.
폭력 없는 세계를 향한 슬픈 탈주
소설 속 영혜는 점점 말을 줄이고, 몸을 말리고, 음식을 거부하고, 끝내는 자신이 식물이라고 말한다. “나는 나무입니다.” 이 말은 도망이 아니라 선언이다. 그녀는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식물이라는 상태를 선택한다. 인간으로서의 삶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울컥했다. 세상에 ‘나무가 되고 싶다’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살아가는 것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이, 그것도 여성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이렇게까지 아픈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고통이 너무 깊고 오래되어 결국 말 대신 침묵으로, 움직임 대신 탈인간화로 나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영혜는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 있다. 겉으로는 멀쩡하게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매일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누군가. 그래서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아팠다.
나는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았는가
이 소설을 덮고 나서 나는 나 자신에게 여러 번 질문했다. 나는 내 주변의 '영혜'들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었는가? 혹시 그녀들의 고통을 단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치부하고 무관심하게 넘기진 않았는가?
또, 나는 과연 얼마나 '비정상'을 받아들
『채식주의자』를 읽는 동안 나는 편하지 않았다. 불편했고, 혼란스러웠고, 무력했다. 하지만 그 감정들이 있었기에, 나는 이 책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문학은 때로 위로가 아니라 고통을 준다. 그러나 그 고통은 나를 일깨우고,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해준다. 영혜는 끝내 자유로워졌을까? 아니면 완전히 무너졌을까? 그것은 독자마다 다르게 해석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분명했다. 그녀의 조용한 ‘저항’은 너무나도 위대했고,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녀는 세상의 모든 억압받는 존재들을 대신해, 말하지 않고도 모든 것을 말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다시는 '평범하다'는 말의 폭력성을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누군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뒤에 숨겨진 외침을 외면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채식주의자』는 그렇게 나를 바꾸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절대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