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를 알아야 일본이 보인다
우리에게 일본은 문자 그대로 “가깝고도 먼 나라”다. 지리적으로도 이웃이고, 고대부터 이런저런 관계를 맺어왔기에 ‘가까운’ 나라이지만 근대 이후 쓰라린 경험을 하고 보니 ‘이웃’이란 감정이 쉽게 들지 않는 ‘먼’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이니 국가 차원이나 사회적으로 일본을 제대로 아는 것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한 나라를 이해하는 지름길은 그 나라 역사를 아는 것이라 할 텐데 우리 독자 대부분은 일본을 잘 모른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막부’ 등 단편적인 사실이나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사에 관한 관심이 고작이다. 이는 일본사를 흥미로우면서도 균형 잡히게 꿰어낸 통사(通史) 관련 서적이 많지 않다는 이유가 클 것이다.
일본 도시사를 연구해온 저자가 쓴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색다르고 값지다. 감상적이고 표피적인 여행 에세이 수준을 뛰어넘으면서도 통사의 무미건조함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역사는 유적을 따라 걷는 길”
이건 서구의 한 역사학자가 한 말인데 이 책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렵고 낯선 일본사를 도쿄, 오사카, 교토같이 친숙한 도시를 통해 살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일본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13곳의 도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왕조 교체가 없었던 일본에서는 실권이 없는 천황을 대신해 여러 무사 정권이 권력을 잡았다. 그리고 정권이 교체할 때마다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이동하며 새로운 도시가 등장했다. 오늘날 일본을 대표하는 도시들은 모두 이렇게 만들어졌다. 지은이는 고대, 중·근세, 근대의 큰 흐름 으로 갈래지어 개별 도시가 겪어온 역동적인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정석적인 접근인데 ‘천황’이란 명칭의 유래(62쪽), 중국‧조선과 달리 무사 정권이 지배했던 배경(100쪽) 등이 그런 류의 서술이다. 그런가 하면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 만화 《슬램덩크》가 각각 오사카와 가마쿠라의 설명에 끼어드는 등 읽는 재미도 각별하다.
고대~근대를 꿰는 13개 도시
제1부 고대 편에서는 천황과 공경 귀족 등의 지배층이 거주하던 역대 ‘도읍’을 살펴본다. 일본인들에게 마음의 고향이라 불리는 ‘아스카’, 일본 최초의 도성인 ‘후지와라경’, 사슴공원과 도다이사로 유명한 ‘나라’, 천년의 역사를 가진 ‘교토’로 이어지는 도읍의 천도를 통해 천황 중심의 정치제도와 도성제에 입각한 도읍의 정비 과정을 꼼꼼히 정리해보았다.
고대 도읍에 이어 제2부 중·근세 편에서는 ‘무가’ 도시를 들여다본다. 이웃한 한반도나 중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12세기 후반 가마쿠라 막부가 성립한 이래 메이지 유신 직전까지 700여 년 동안 무사 지배가 계속되었다. 무가 도시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가마쿠라, 오다 노부나가의 아즈치와 함께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건립한 에도, 오사카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동·서 지역의 대표 도시로 거듭나는 과정을 통해 무사 지배의 오랜 전통이 도시 공간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제3부 근대 편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된 도시를 찾아간다. 지금은 지방 중소 도시에 불과한 하기와 가고시마는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본거지이자 삿초동맹 이후 막부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도막운동의 중심지였다. 이에 반해 요코하마, 기타큐슈, 히로시마는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 산업화, 제국주의 팽창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패전에 이르는 과정에서 수많은 위기를 넘기며 흥망성쇠를 경험한 도시들이다. 개항 이후 여러 도시가 겪은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일본이라는 단일한 국가 내러티브로 수렴되지 않는 다양한 근대의 모습을 확인하고 근대화의 양면성을 보여줄 것이다.
일본 ‘여행’의 친절한 길라잡이
가까운 사이일수록 자신의 관점에서 상대를 바라보면 오해를 사거나 의를 상하기 쉽다. 그래서 가까울수록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상대방의 본심과 속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해외여행을 통해 직접 만난 일본의 도시는 한자와 가나로 쓴 간판, 에스컬레이터의 좌측통행 같은 것만 제외하면 서울, 부산 같은 우리나라의 대도시와 별 차이가 없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일본의 도시가 지나온 역동적인 역사를 이해하고 나서 거리를 나서면 도시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와 매력이 하나둘 새롭게 눈에 들어올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책 머리에 연표와 지도를 삽입해 일본사의 전체 흐름과 각 도시의 위치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한 배려도 눈길을 끈다.이 책은 일본 여행을 계획 중이거나 혹은 다녀온 이들이 단순한 관광객에 머물지 않고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이해하는 여행자가 되는 데 훌륭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