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7
이종혁
총서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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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는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김부식 등 11인의 편사관에 의해서 완성된 삼국시대사이다.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며, 삼국시대의 각국의 흥망과 변천을 기술한 정사체의 역사서이다. 국사 편찬은 왕권 강화의 기념적 사업인 동시에 당시의 정치, 문화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삼국사기의 편찬도 이 책이 만들어진 12세기 전반의 정치상황 위에서 이해하여야 하고, 이 때는 이미 고려 건국 후 200여 년이 흘렀고 고려왕조가 안정을 구가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기 역사의 확인 작업으로 전 시대의 역사를 정리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당시 고려사회는 문벌가문 간의 극심한 갈등이 겹쳐 사회적 혼란과 정치적 비리가 쌓이고 있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분열과 갈등이 국가멸망의 원인임을 강조함으로써 현실을 비판하고 후세에 역사의 교훈을 주기 위하여 역사 편찬은 불가피하였다.
삼국사기는 총 50권으로 그 내용은 본기, 연표, 잡지, 열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기는 다시 신라본기, 고구려본기, 백제본기로 나뉘는데, 신라본기(권1~권12)는 신라의 태조 혁거세 거서간~경순왕 대의 내용을, 고구려본기(권13~권22)는 고구려 태조 동명성왕~보장왕 대의 내용을, 백제본기(권23~권28)는 백제 태조 온조왕~의자왕 대의 내용을 담고 있다. 권29~권31은 삼국의 연표 내용이고, 권32~권40은 잡지로 삼국(신라, 고구려, 백제)의 제사, 의복, 집, 지리, 관직 등의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권41~권50은 삼국의 영웅호걸의 이야기를 담은 열전으로 김유신, 을지문덕, 을파소, 최치원, 설총, 관창, 개소문, 궁예, 견훤 등의 내용이다.
삼국사기의 내용 중 신라 초기의 의복색채는 제23대 법흥왕 때 최초로 6부의 복색에 따라 신분을 표시했다. 이후 진덕왕 2년에 김춘추가 당나라에 가서 당의 의식을 따를 것을 요청했고 신라로 돌아와 시행하면서 우리의 풍속이 중국 풍속으로 바뀌게 되었다.
김유신은 경주 사람이다. 12대조 수로는 가야국을 세웠다. 공은 15세 때 화랑이 되었고, 당시 사람들은 그를 흡족히 따르면서 요화향도라고 불렀다. 당나라와 말갈을 상대로 전쟁하였으나 우리 군이 아직 진을 치지 못 한 틈을 타 공격해 우리 군사가 대패했다. 유신의 아들 원술이 비장으로서 나가 싸우려고 하자 그의 보좌관 담릉이 말렸다. 이에 원술은 "사내대장부는 구차하게 살지 않는 법인데, 무슨 낯으로 아버지를 뵙겠는가?" 라고 하면서 말을 채찍질해 달려가려고 했으나, 담릉이 말고삐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에 유신은 왕에게 "원술은 왕명을 욕되게 하고 가훈까지 저버렸으니 마땅히 참수해야 합니다"라고 고했다. 이에 대왕은 원술을 용서했으나 원술은 부끄러워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가 아버지 유신이 죽자 비로소 어머니를 만나려고 했다. 이에 어머니는 원술이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아들 노릇을 못 했으니 만나지 않겠다 하여 원술은 태백산으로 들어가 일생을 벼슬하지 않고 마쳤다.
경애왕 4년 11월에 견훤이 서울을 습격했는데 이 때 왕은 왕비와 후궁과 친척들을 데리고 포석정에서 연회를 열고 있었다. 이 때 적병들이 갑자기 쳐들어오자 당황하여 왕과 왕비 및 친척들은 사방에 흩어져 숨었는데 붙잡힌 자들은 엎드려 노복이 되겠다고 빌었지만 화를 면치 못 하였다. 또한 견훤은 공공의 재물이나 사재를 모두 약탈하고, 왕을 협박해 자살하게 하고, 왕의 동생뻘 되는 사람에게 국사를 맡겼는데, 이가 바로 경순왕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서인 삼국사기. 승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역사서의 양대 기둥이라고 할 수 있으나 삼국유사는 민간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수집해 창작한 것이며, 삼국사기는 편저자들이 독단적으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삼한고기, 계림잡전 등의 국내 문헌과 후한서, 자치통감 등의 중국문헌을 참고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학창시설 역사 교과서에서 책의 제목과 저자 등의 내용만 간략히 일별 했을 뿐 그 내용을 실재로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지라 감개가 무량하였다. 내용도 흥미로왔고 미처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깊게 접할 수 있는 참으로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