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30
김동찬
필로소피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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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딱딱해서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매우 유용할 것이다. 살면서 마주치는, 사유가능한 여러 주제에 대해 이 책은 2쪽, 1장으로 철학자의 의견을 압축하여 제시하고 있다. 또한 철학자들이 자신의 개념을 명징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여러 어려운 개념과 그를 표현하는, 현학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그런 단어들을 쉽게 풀어주기 때문에, 우리는 마치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철학적 사유를 마주할 수 있다. 이는 대중 서적이 지녀야 할 미덕을 이 책이 보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 책은 '말랑말랑함'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다루는 주제를 광범위하게 확장하는 것에도 성공하였다. 주제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다루는 주제의 범위가 광범위해질수록 말랑말랑함을 딱딱함으로 변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은 '반지의 제왕' 속 절대반지의 모티프로 보이는 플라톤의 투명 인간 이야기부터, 나치 부역자로부터 한나 아렌트가 찾아낸 평범한 악의 이야기까지 긴 시간 범위와 종교, 예술, 윤리, 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면서도 그 말랑말랑함을 유지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한편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이 남은 것도 사실이다. 하나의 주제와 하나의 철학자, 1장으로 압축된 범위는 그 장점과 동시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흄, 마르크스 등의 위대한 철학자들은 2가지 이상의 주제를 확보하는데 성공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포함한 다른 철학자들의 논의가 하나의 주제로만 압축되어 표현되는 것은 이들의 철학적 업적을 고려하였을 때, 다소 가혹한 처사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주제의 영역이 다소 서구 쪽으로 집중되어 있는 것 역시 아쉬운 마음으로 남은 부분이었다. 철학의 원류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그에 대한 주석이라는 화이트헤드의 말마따나 서양이지만, 개인적으로 회사원의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잘 맞는 철학은 불교철학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시점에서, 붓다가 포함되지 않고 선불교의 선문답 정도가 주제 하나를 차지하고 끝나는 점은 누군가에게는 아쉬움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책 한 권으로 철학 전체를, 깊이 있게 통찰하는 것은 그 누구가 오더라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 전체를 얕게, 혹은 철학 일부를 깊게 통찰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차선일 텐데, 전자는 대중 서적의 영역일 것이며 후자는 철학 전공 서적의 영역일 것이다. 이 책은 전자의 영역에서 일정 수준 성취를 이뤄내는 것에 성공하였으며, 이 책을 통해 누군가 후자의 영역에 접근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이 책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한 것이며 이를 기쁘게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