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불안한 인생, 그 자체를 360도 전면으로 그려냈다
송희구 저자의 장점으로 꼽히는 하이퍼리얼리즘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실망은 없다. 어느 회사에서나 있을 법한 사람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자로 대고 그린 듯 세밀하게 묘사된다.
# 그룹사 연수교육 첫 시간이 끝나고 우르르 담배를 피러 나간다. 에너지 회사 다니는 사람이 먼저 말한다. “아, 우리 회사 거 샀는데 개박살 났네요.” 증권사 다니는 사람이 대답한다.
“우리 그룹사 주식은 사면 안 돼요. 우리를 봐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일하는데 회사가 발전을 하겠어요? 사실 내가 아는 소스가 하나 있는데….” 영철의 눈이 둥그레지며 몸을 돌린다.
“아는 형님이 작전 세력이거든요. 내부 정보를 하나 받았는데…. 아, 형님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에이, 좀 알려줘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그럼 우리 조원들한테만 알려주는 거니까 절대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요. 저 큰일 나요.” “알았어요. 알았어.”
“루나바이오헬스케어. 줄여서 ‘루바’라고 불러요.” “루바… 근데 그게 왜요?”
이 같은 사실적인 설정은 상황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신작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상황이 아닌, 인물이다. 전작 ‘김 부장 시리즈’에 가장 열렬한 응원을 보내주었던 삼사십대는 이번 신작에서 영철이란 인물에게 대단히 몰입하게 될 것이다.
올해 나이 마흔, 영철은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삶을 산다. 대기업 사원증 목걸이에 벤츠 E클래스, 타이틀리스트 골프웨어, 전세일지언정 천당 아래 분당에 산다는 얕은 자부심도 있다. 여기까지 들으면 전작 ‘김 부장 시리즈’의 김 부장과 닮았다. 그런데 다르다. 영철에겐 김 부장과 달리 ‘자뻑’이 없다. 남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 피해의식,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싸여 있다. 겉으로는 잘사는 척, 여유로운 척하지만 속내는 하루하루 곪아가는 너와 나의 모습이다. 부자들이 부러우면서도 얄밉다. 롯데월드에서 89,000원짜리 프리미엄 매직패스로 빠르게 입장하는 사람들이 짜증난다. “줄 안 서려는 게으른 인간들, 나를 새치기하는 인간들.”이라고 욕한다. 인생역전, 한탕 벌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주식, 코인으로 돈을 벌지 못한 건 세상에 자신뿐인 것 같다. 잘살아왔는지, 앞으로 잘살 수 있을지, 삶 자체에 대한 의문이 가득하다. 이런 영철의 모습은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를 있는 그대로 투영해놓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