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5
임보람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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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오랜 독서 여정의 끝자락에서 작가 자신이 다시 꺼내든 오래된 자화상처럼 느껴지는 작품이다. 1980년에 발표한 초기 단편을 기반으로 삼았지만, 이번 장편에서는 세월의 깊이와 사유의 농도가 분명하게 다르게 읽힌다. 현실과 환상, 기억과 망각, 존재와 부재 사이를 떠도는 하루키 특유의 이야기 구조는 이번에도 유효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의 밀도는 훨씬 더 고요하고 침잠해 있다. 그는 이제 삶의 깊은 층위에서, 인간이 지닌 본질적인 외로움과 그리움, 상실과 회복에 대해 천천히, 그러나 결코 피하지 않고 응시한다.
소설의 중심에는 ‘불확실한 벽’이라는 강력한 은유가 자리하고 있다. 이 벽은 도시를 감싸고 있는 경계이자, 기억과 현실, 생과 사, 사랑과 상실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적·존재론적 틈새이다. 하루키는 이 벽을 통과하거나 넘어서려는 주인공의 여정을 통해, 우리가 끝내 다가갈 수 없는 진실—혹은 다가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멀어져야만 하는 어떤 대상—에 대한 집요한 사색을 펼쳐낸다. 벽은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안개처럼 흐릿하고, 꿈처럼 손에 잡히지 않지만, 그 존재감만은 강렬하다. 이 벽 앞에서 인간은 근원적인 무력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것을 마주하는 자세에서 삶의 의미가 비롯된다.
주인공은 과거에 한 소녀를 사랑했고, 그 사랑은 그를 ‘불확실한 벽’ 너머의 도시로 이끌었다. 그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늙지 않고, 감정은 제어되며,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된 채 살아간다. 그러나 정체된 평화 속에서도 어딘가 모르게 스며드는 이질감은, 살아 있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완전성의 무서움을 암시한다. 주인공은 다시금 현실로 돌아와, 오래도록 그 도시와 소녀의 그림자를 품은 채 살아간다. 그리움과 외로움,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상실감 속에서 그는 작가가 되고, 삶의 갈피마다 불쑥 떠오르는 환영들을 붙잡으며 존재를 정립해나간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 소설이 후반부로 갈수록 자전적인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다는 것이다. ‘소설을 쓰는 나’라는 화자의 등장은, 하루키 자신이 지난 수십 년간 작가로서 품어온 사유와 감정을 고스란히 투영한다.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 도시와 도시 사이, 기억과 현실 사이의 틈을 걷는 그 특유의 리듬감은 여전하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유희라기보다는 일종의 회한이나 수용에 가까운 분위기로 전개된다. 마치 작가는 이제 도망치는 대신,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듯 보인다.
이 작품은 하루키의 기존 팬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감각을 선사하고,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난해하고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하루키의 문학이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플롯의 흥미가 아니라, ‘느낌의 진실성’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한 편의 소설이라기보다는 내밀한 고백, 혹은 정서적 여행처럼 다가온다. 작중 인물들이 어디론가 떠나고, 무언가를 놓치고, 그럼에도 다시 살아가는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인생을 조용히 되돌아보게 만든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남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시간은 무엇을 앗아가고 무엇을 남기는가?”, “우리는 결국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소설의 구석구석에 숨어 있고, 독자는 그것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게 된다. 그 점에서 이 소설은 ‘읽는 행위’를 넘어서 ‘경험하는 행위’로 확장된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후에도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벽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도시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삶이라는 여정의 진실일지도 모른다. 하루키는 이번에도 우리에게 말한다. 완벽한 이해는 없고, 명확한 길도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걷고 쓰고, 사랑하고 떠나야만 한다고. 바로 그런 문학이 우리 삶을 조금 더 견디게 해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