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8
이다혜
그 개와 혁명
0
0
예소연의 「그 개와 혁명」은 제목만 보면 정치적 사건이나 이념의 충돌을 전면에 내세운 소설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한 가족의 장례식이라는 매우 사적이고 구체적인 공간을 통해 ‘혁명’의 의미를 다시 묻는 작품이다. 소설은 1980년대 학생운동을 경험한 아버지와 2020년대 페미니즘 감각을 지닌 딸을 마주 세운다. 이 구도만 놓고 보면 구세대와 신세대, 남성 중심 운동권과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의 대립처럼 읽히기 쉽다. 그러나 작품은 어느 한쪽을 단순히 옳고 그른 위치에 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한 사람의 생애 안에 공존하는 신념과 모순, 애정과 폭력성, 진보성과 가부장성을 동시에 바라보게 만든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아버지라는 인물이 완전히 미화되지도, 완전히 부정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 싸운 사람이지만, 정작 가족 안에서의 여성의 노동과 감정은 충분히 보지 못한 인물이다. 딸은 그런 아버지의 한계를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죽음 앞에서도 무조건적인 존경이나 애도에 머물지 않는다. 그렇다고 냉정하게 단절하지도 않는다. 딸은 아버지가 남긴 말과 태도, 시대의 흔적을 되짚으며 그가 끝내 넘어서지 못한 한계까지 함께 바라본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애도를 단순히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행위로 그리지 않는다. 애도는 남겨진 사람이 고인의 삶을 다시 해석하고, 자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리하는 과정으로 제시된다.
작품 속 ‘개’의 존재도 중요하게 느껴졌다. 장례식장은 보통 엄숙함과 침묵, 정해진 절차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개는 그 질서 안으로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과 소란을 끌고 들어온다. 이 존재는 죽음을 둘러싼 관습적 분위기를 흔들고, 사람들이 감정을 정돈된 방식으로만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개가 만들어내는 혼란은 불편하면서도 생동감이 있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개는 단순한 소재라기보다, 굳어 있는 애도의 형식과 오래된 혁명의 언어를 흔드는 장치처럼 보인다.
읽고 나면 ‘혁명’이라는 말이 꼭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나 거리의 구호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남는다. 어떤 혁명은 이전 세대가 믿었던 가치를 무조건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결함을 직시하고 수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또한 사랑했던 사람을 비판하면서도 완전히 버리지 않는 태도, 오래된 가족 질서와 애도의 방식을 다르게 바라보려는 시도 역시 하나의 작고 구체적인 혁명일 수 있다. 「그 개와 혁명」은 세대 간의 단절보다 복잡한 계승의 문제를 다룬다. 그래서 이 작품은 아버지 세대의 혁명이 끝난 자리에서 딸 세대가 어떤 질문을 이어받고, 무엇을 다시 써야 하는지를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묻는 소설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