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유럽에서 시대를 관통한 미술인 바로크 세계를 알아보고 경험하게 되었다. 바로크 미술의 중심은 로마였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미술 경향에 대하여 기괴하다는 의미로 담긴 바로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16세기 유럽은 가톨릭 세계가 루터를 지지하는 쪽과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갈라졌다. 종교개혁에 맞서 트리엔트 공의회를 개최해 반종교개혁을 하게 된다. 카라바조는 미술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시선을 완전히 뒤집었다. 흥미진진한 로마의 뒷골목을 돋보기로 보듯이 그려내어 로마 상류층의 눈길을 끌었다.당시 미술계가 반종교개혁으로 움츠려있던 상황에서 새로운 활력으로 작용했다. 로마 화단의 양대 산맥인 안니발레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이상화된 표현을 중시하면서 시각적으로 더욱 강렬하게 풀어냈던 것이다. 베르니니와 보로미니를 비교해서 살펴보는 것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다. 시피오네 추기경에 의해 보르게세 미술관을 갖추게 되었고, 베르니니에 의해 채워졌다. 하데스의 손가락이 페르세포네의 허벅지를 파고드는 장면을 구현해냈다. 돌을 실제 살처럼 역동적이고 섬세하게 만들어냈다. 후원자였던 우르바노8세와 관계가 좋지 않았던 인노첸시오 10세가 교황의 자리에 오르면서 베르니니는 궁지에 몰리고 조수였던 보로미니가 떠올랐다. 효율적이면서 아름다움을 추구한 산 카를리노 성당을 건축하였다. 보로미니와 베르니니는 라이벌로 서로에게 창의적인 영감을 불러 일으켰다. 보로미니가 먼저 죽고 나서 베르니니의 작품은 징식성만 강조할 뿐 더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경쟁자가 있다는 것은 각자에게 어려운 상황일 수 있지만, 작품성이 있고 창의력이 죽지 않는 측면에서는 이 두사람을 보면 알 수 있다. 토리노는 바로크의 수도라 불릴만 했다. 사보이아 가문이 대대로 예수님의 수의를 보관해왔다. 구아리노 구아리니는 사방에서 빛이 들어오도록 다양한 각도로 창을 냈고, 이 화려한 돔 아래에 예수 그리스도의 수의가 안치되어 있다. 토리노 대성당에 예배당의 돔 설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로크가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이라는 혼란스러운 시대에 탄생한 역동적인 미술 양식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