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9
이창재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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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오랜 시간 동안 천착해온 주제들을 집대성한 듯한 소설이다. 이 작품은 1980년대 중반 발표했던 동명의 중편소설을 바탕으로 새롭게 확장된 장편으로, 하루키의 문학 세계에 익숙한 독자라면 그의 오랜 팬들에게 일종의 귀환이자 회고처럼 느껴질 것이다. 작품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며 ‘나’라는 인물의 내면 여정을 따라간다. 그 여정은 한 편의 몽환적인 꿈 같기도 하고, 끝없는 미로 같기도 하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불확실한 벽’이라는 상징이 있다. 이는 단순히 도시를 구획 짓는 물리적 장벽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과 감정, 현실과 비현실을 가르는 인식의 경계선을 의미한다. 주인공은 이 벽 너머에 있는 ‘도시’로 들어가 과거의 사랑과 마주하고, 자아의 파편들을 되짚는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놓아버린 것들, 회피했던 진실, 상실의 고통과 마주하며 점차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하루키의 문체는 여전히 부드럽고 절제되어 있으며, 고독과 음악, 책, 꿈, 그리고 도시의 정서들이 촘촘하게 배어 있다. 그는 인물들의 말 없는 침묵 속에서도 감정을 드러내는 데 능하고, 작은 일상의 움직임조차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특히 현실 세계에서 흔히 느끼는 단절감이나 외로움을 섬세하게 포착하면서, 이를 철학적 사유로 연결시켜 독자에게 깊은 사색을 유도한다.
이 소설은 단순한 서사적 재미보다는 상징과 은유, 그리고 서정적 분위기를 통해 독자와의 내면적 교감을 중시한다. 때문에 하루키 작품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다소 난해하거나 느리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하루키가 평생에 걸쳐 던져온 질문—‘나는 누구인가’, ‘진짜 현실은 어디에 있는가’, ‘사랑과 상실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다시금 곱씹고 싶은 독자라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깊은 울림을 전해줄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가로서 걸어온 길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자, 그가 여전히 건너고자 하는 문학적 경계선에 대한 고백처럼 읽힌다. 혼란과 상실, 사랑과 회복 사이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이 소설은 독자 각자에게 또 하나의 ‘불확실한 벽’을 마주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