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7
이승석
시를 읽는다
0
0
시그림책 『시를 읽는다』는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을 때」의 명문장을 그림책으로 새롭게 꾸민 작품으로 특히 “심심하고 심심해서”로 시작하는 시그림책 『시를 읽는다』의 네 문장은 문학을 향유하는 방식에 관한 담담한 소회이지만, 여기에는 삶과 죽음, 박완서 작가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여과 없이 담겨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다가간다. 좋은 시만큼이나 좋은 문장 한 줄은 그림책이 될 수 있으며, 시가 되기도, 또 다른 작품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며 준다. 박완서 작가의 치밀한 글쓰기 너머로 시, 정확히 말하자면 ‘좋은 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여실히 묻어난다.
문장에서 시를, 시에서 인생을, 그림책에서 삶의 이면을 만나다
지금 이 시대, 도대체 누가 시를 읽을까? 삶 자체가 시라고, 일상에는 시가 스며들어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쉽사리 맞장구를 칠 수가 있을까. 이런 이유로, 저런 까닭에, 그런 탓에 우리는 조금씩 시를 멀리하고 시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지 모른다. 왜, 어떻게, 언제 시를 읽는가. 박완서 작가는 이 추상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에 작가는 미사여구 없이 담백하고 꾸밈없이 대답해 주는 듯하다.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는 진솔한 고백과도 같은 문장은 시에 대한 애정과 믿음, 의지와 안식을 넘어 작가의 삶을 포함한 인간 보편의 생(生)과 그에 따르는 고독이 녹아 있다. 시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따습게 보듬는 시선이 한편으로는 마음 훈훈하게, 다른 한편으로는 강한 채찍질로 다가온다. 하여, 가만가만 낮은 목소리로 삶을 다독이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며 해이해진 정신을 다잡고 허리를 올곧게 펴게 만든다.
텍스트에 구애받지 않는 듯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행간을 헤아리고 치밀하게 파고든 산물이다. 새겨볼수록 메시지가 마음속에 스미는 그의 그림은 짧고도 강렬한 박완서의 문장만큼이나 깊어 삶의 통찰이 담긴 문장, 문장을 꿰뚫어보는 그림으로 잠시나마 삶을 촉촉하게 적시는 여운, 때로는 정거장처럼, 때로는 간이역처럼 느긋하게 딴 짓 하듯 시 한 편을 차분히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