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9
이승은
리추얼의 종말(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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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당하는 인간에 대한, 정처없는 근대(또는 현대)에 대한 철학자의 논거와 진단은 어렵다.
근래 이렇게 어렵고 힘들고 그래서 초반에 다소 짜증난 책이 있었던가 생각해본다.
철학자인 저자의 앞선 책들과 비교해 보아도 참 어렵다. 마치 그가 본문중에서 자주 말하던 시를 읽을 때처럼 책은 여러번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게 한다.
하지만 중반으로 가면서 저자의 강한 설득력과 또 그로인한 신뢰가 휘몰아친다.
다양한 주제를 펼쳐 본인의 논리를 이끌어가고 있지만 일관된 구조는 점점더 탄탄해지고 마치 저자가 이끄는 궤적에 맞춰 움직여가듯이 몰입할 수 있다.
저자는 현재의 위치를 보여주기 위해 "리추얼(의례)"을 기준으로 삼는다.
책의 초반부에는 이 기이한 제목(리추얼의 종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 계속 같은 문장을 되읽었다.
그가 보기에 현재의 핵심 특징은 '리추얼의 종말'이다. 한편에는 리추얼이 완전히 소멸한 현재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리추얼이 생생하게 작동하는 장소나 시대, 사회, 문화가 있다. 더 나아가 양편은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 대조적으로 규정됨으로써 선명하게 맞선 양 진영으로 갈라진다.
현재진영을 이루는 주요 요소는 정처없음, 노동, 생산, 성과, 진정성, 내면, 고립된 개인, 투명한 데이터, 무미건조한 계산 등이다. 이 진영의 다른 이름은 '신자유주의 진영' 혹은 '근대 진영'이다.
이에 맞선 리추얼 진영은 거주, 지속, 놀이, 연출, 형식, 몸, 공동체, 신화, 유혹 등이 주요요소다.
저자는 대립구도의 설정을 통해 양자택일을 요구하자는 취지가 아니다. 그는 우리의 현재에 어떤 가치들이 결핍되어 있는지 보여주고 싶어한다. 현재의 병적인 상태를 치유할 새로운 삶꼴(Lebinsform)을 추구하지만 근대 진영에 맞선 반근대진영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생산 강제, 진정성 강제, 투명성 명령 등의 키워드를 통해 결핌의 바탕에 리추얼의 소멸과 공동체의 침식이 있다는 것을 진단해주고 싶을 뿐이다.
저자는 아주 기발한 표현, 의미심장한 어휘, 간결한 주장과 선언을 통해 독자를 이끌고 있고 글의 주제와 메시지는 글의 스타일과도 어울린다. 집중해서 읽었지만 책을 다시한번 음미하고 이해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건 이미 저자에 대한 신뢰를 쌓았다는 것이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철학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