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7
하유선
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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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신세계'는 올더스 헉슬리(A.L.Huxley)의 1932년작으로, 문명이 최고도로 발달해 과학이 사회의 모든 부문을 관리하게 된 디스토피아적 풍자소설로 세상에 나왔다.
소설속의 세계는 과학이 최고도로 발달해 사회의 모든 면을 관리·지배하고, 인간의 출생과 자유, 죽음까지 통제하는 미래 문명 세계를 그린 작품이다. 인간성을 상실한 미래 세계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한편, 신의 영역을 넘보는 인간의 오만함을 경고·비판한다.
또한 충격적인 미래 예언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도덕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가족이라는 유대가 사라진 세계, 죽음까지도 익숙해지도록 길들이기 훈련을 받는 세상에서 인간은 최소한의 존엄성과 인간적 가치, 그리고 스스로 생각할 자유마저 박탈당한다.
이곳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까지 다섯 계급으로 나뉘어, 인류를 ‘맞춤형’으로 대량 생산한다. 하나의 난자에서 수십 명의 일란성 쌍둥이들이 태어나고, 이들은 끝없이 반복되는 수면 학습과 세뇌를 통해 어떠한 의문도 갖지 않고 정해진 운명에 순응한다. 노화도 겪지 않고, 책임도 도덕도 없이 문란한 성관계를 맺고, 정신적인 외로움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쾌락과 만족감뿐이다. 정해진 노동 시간 이외에는 단순한 자극으로만 이루어진 오락들로 꽉 짜여 있으며, 혹 나쁜 기분이 들거나 고통스러운 일을 겪으면 항상 소마(soma)라는 가상의 약을 통해 즉각적인 쾌감을 경험한다. 마약과도 같은 소마는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사고할 능력을 빼앗는다. 때문에 이 완벽한 유토피아에서는 누구나 다 행복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세계와 격리된 원시 지역(Reservation)에서 살고 있던 ‘야만인’ 존이 우연히 이곳에 초대받는다. 그는 처음 보는 고도의 과학 문명과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설계된 세계에 감탄하지만, 소수의 지배자들에게 통제받으며 조작된 행복에 길들여진 ‘백치’와도 같은 사람들의 모습에 점차 환멸을 느낀다. 결국 그는 문명에 절망하고 좌절한 채 다시 원시 지역으로 떠나간다.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사실상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셈이군요.” 무스타파 몬드가 말했다.
야만인이 도전적으로 말했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늙고 추악해지고 성 불능이 되는 권리와 매독과 암에 시달리는 권리와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고생하는 권리와 이(?)투성이가 되는 권리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아갈 권리와 장티푸스를 앓을 권리와 온갖 종류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할 권리는 물론이겠고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런 것들을 모두 요구합니다.” 마침내 야만인이 말했다. _ 본문 362~363쪽
헉슬리는 야만인 청년 존을 통해 두 세계, 즉 유토피아 세계와 원시 세계를 비교함으로써, 우리의 현재와 미래상을 병립시켜 보여준다. 오로지 최대의 능률과 발전만을 목표로 삼는 현대 과학 문명에 대해 신랄한 비판과 함께, 곧 도래할 섬뜩한 미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에게는 무엇이 참된 이상향이며, 우리들은 그곳에 다다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해답을 알아내는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숙제로 남아 있다.
독자로서 30년쯤 전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조금 난해하고 말도 않된다고 생각했었다. 인공수정까지는 이해하더라도 자유를 착취당한다고? 죽음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우울할뗀 마약과 같은 진통제로 떼운다고? 그것만으로 사회를 성장시킬수 있고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건가? 우울한 기분이 들었었다..그야말로 "디스토피아군"하고.. 그런데 현대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독자로서 인구감소와 노령화, 청년계층의 몰락, 무질서하고 이기적인 자기주장 등을 두고 생각해 볼때 과연 "멋진신세계가" 그리고 있는 사회가 "디스토피아"가 아닐 수도, 진정 우리가 나아갈수 밖에 없는 세계가 아닐까 생각하게된다.
어차피 인구가 자연속에서 늘지 않는다면 인공수정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임신에 대한 고통과 자녀양육이라는 의무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모두에게 속하므로서 무리속에서 외롭지도 않고, 미리 교육을 통해 죽음에 대하여 배움으로서 죽음을 두려워 하지도 않는다. 사회는 계층화 되어 있지만 그 계층화에 일말의 의심도 없고 종교가 없으니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을 일도 없다. 누구나 적정하게 일하고 배분받고 사랑하며, 유희한다.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가 아닌가? 인구가 필요한 곳에 적정 인구를 만들어 가져다 메꾸고 주말이면 시골에 놀러 다니지만 언제나 도시로 복귀하는 대한민국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로서는 굳이 소설속 주인공 '존'처럼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며 원지지역으로 돌아가 야만인으로 살아갈 이유가 하나도 없을 것 같다. 예전에는 "디스토피아"였던 헉슬리의 신세계는 이제는 "유토피아"가 아닌가 생각이 들게 된다.
지금,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설정해 놓은 미래가 빠른 속도로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현대 과학 문명의 발달과 함께 점차 개성과 인격을 상실해가는 오늘날, 지금 세태의 종착지는 과연 어디인가. 자궁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설계하고 통제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어느 만큼이나 인간일까?하는 물음에 앞서 인간이 과연 존엄할 가치가 있는 존재들일까를 묻게 되는 저서로서 내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