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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24 김대정
    호르몬은 어떻게 나를 움직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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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부터 우리 일상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우리몸에 흐르는 호르몬의 종류와 역할 그리고 그 호르몬의 분비에 이상이 생겼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질병들을 실제 환자들의 증상과 치료과정을 소개하며 엮은 책이다. 주요 전개는 사람의 성장, 노화 주기에 따라 이루어지지만 중간에 소화, 면역,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호르몬의 영역에서 다룬다. 사춘기, 갱년기, 임신, 비만, 불면증, 식욕, 젠더 등등 인간으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모든 것들에 이 '호르몬'이 관여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명령하는 것을 '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뇌'가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호르몬은 성장하는데 있어서,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있어서 몸과 마음에 변덕을 부리게 하는 요소라고만 생각했었다. 바보였다. 호르몬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뇌'를 움직이게 하는 윤활유 같은 거였다. 뇌가 우리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호르몬이 뇌를 움직여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거였다. 호르몬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동안 무심했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진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게 아니라 그렐린이 체중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매일 요가를 하면 혈당이 낮아진다는 사실 때문에 갑자기 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햇빛을 쐬면서 걷는 것이 멜라토닌 생성을 도와주고 그것은 결국 불면의 밤을 날려버리는 길이기도 하다. 이미 지나온 시간에 대한 호르몬보다는 앞으로 관련 있는 호르몬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갱년기와 불면증, 빠지지 않는 살, 운동이 호르몬에 미치는 영향, 호르몬제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등. 인간도 진화해왔다. 오래전 인간을 보호했던 행동 방식이 현재도 DNA로 전승되고 있다. 예전처럼 몸을 쓰지 않아도 우리의 호르몬은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지방을 축적하려는 의지를 가졌다. 도파민에 중독된 사람들은 단것을 찾게 되고, 식품 회사는 그것을 이용하고, 이용 당하는 지도 모른 체 사람들은 단것을 찾게 된다. 알면 알수록 내 생활방식이 보이는 책이었다. 내가 내 몸을 내 몸에 흐르는 호르몬에 대해 몰라서 대체를 못하고 병들어 가는 몸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르몬에 관련된 책을 처음 읽는 사람이라면, 놀라운 사실들을 끊임없이 만날 것이고 원래 이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가장 최근에 발견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는 만족감이 있을 책이다.
  • 2025-06-24 문자영
    선악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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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은 배워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본능에 가까운 감각일까. 이 오래된 물음을 폴 블룸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다. 『선악의 기원』은 생후 몇 개월밖에 안 된 아기들을 통해 인간 도덕성의 뿌리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도덕이 오롯이 사회적 학습의 산물이라는 가설에 도전하면서도, 그는 단순한 생물학적 결정론에는 머물지 않는다. 책 초반부에 소개되는 인형 실험은 가장 인상 깊었다. 언덕을 오르려는 인형을 도와주는 존재와 방해하는 존재를 보여준 뒤, 아기들에게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를 물었다. 결과는 명확했다. 아기들은 도와주는 인형을 일관되게 선택했다. 그들은 타인의 의도를 구분하고, 선한 행동에 더 끌린다. 이는 인간이 최소한의 도덕 틀을 갖추고 태어난다는 강력한 증거다. 이런 실험을 접하며, 처음 본 사람의 따뜻한 말투나 작은 배려에 끌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유를 설명하긴 어려웠지만, 그런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인식했던 경험은 꽤 자연스러웠다. 반면, 도덕 감각이 언제나 보편적이고 이타적인 것은 아니다. 책은 아기들이 같은 언어를 쓰는 인형을 더 신뢰하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인형이 괴롭힘을 당할 때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는 실험 결과를 제시한다.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 나와 닮은 존재에 대한 호감을 우리는 매우 이른 시기부터 드러낸다. 예컨대, 친한 친구의 실수에는 관대하지만 모르는 사람의 같은 행동엔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도덕이 감정과 연결되어 작동한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드물 것이다. 벌과 복수에 대한 인간의 감정 역시 흥미로운 분석 대상이었다. 유아들은 규칙을 어긴 존재가 처벌받는 장면을 본 뒤 만족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기쁨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타인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일 수도 있다. 가령, 누군가 나를 부당하게 대했다고 느꼈을 때 그가 다른 사람에게 비난받는 걸 보며 묘한 위안을 느끼는 감정이 떠오른다. 도덕은 정의를 바탕으로 하지만, 그 과정에 깃든 감정은 때로 어둡고 복잡하다. 블룸은 도덕을 감정만으로 설명하는 시각에 비판적이다. 그는 공감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때때로 도덕적 판단을 왜곡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아이에게 연민을 느끼며 돕지만, 수천 명의 고통엔 무감각해진다”는 구절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감정은 특정한 얼굴, 구체적인 이야기에 반응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성은 더 넓은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친구가 겪는 고통에 즉각 반응하면서도, 뉴스 속 타인의 비극에는 무뎌지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감정은 행동을 유도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공정하거나 일관된 판단을 담보할 수 없다. 마지막 장에서 블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선을 알 수 있도록 태어났지만, 선하게 살기 위해선 배워야 한다.” 이 문장은 책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인간은 도덕의 기본 요소를 지닌 채 세상에 나오지만, 그것이 성숙한 윤리로 발전하려면 학습과 반성이 필요하다. 친절, 공감, 정의감은 자라면서 방향을 잃기도 하고, 필요할 때 발현되지 않기도 한다. 『선악의 기원』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면서도, 그 믿음이 무조건적이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도덕성은 타고난 감각과 스스로 다듬은 선택 사이에서 매일 새롭게 형성된다. 그것이야말로 인간답다는 것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 2025-06-24 박선호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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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의학자의 시선으로 기록된 이 책은 수많은 죽음의 현장을 거쳐 온 저자가 마주한 사람들의 마지막 순간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사건 현장에서 수습되는 시신,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들의 흔적, 아무도 찾지 않는 고독사까지, 그가 마주한 죽음은 단순한 데이터나 통계가 아니라 분명한 ‘삶의 이야기’였다. 저자는 의학적 소견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죽음이라는 결과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의 고통과 흔적을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고독사한 노인의 방에서 발견된 낡은 일기장과 반쯤 비워진 약병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타인의 죽음이지만, 법의학자의 눈에는 외로움과 체념,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결심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또 다른 장에서는 어린아이를 잃은 부모가 시신 앞에서 오열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의학적으로는 ‘사인 규명’이 중요하지만, 그 이면에는 삶의 가장 뼈아픈 순간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놓치지 않는다. 저자는 죽음 앞에서조차 무관심하거나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사회의 현실을 지적하기도 한다. 특히 고독사나 자살처럼 ‘예고된 죽음’에 대한 예방의식 부족, 사후 처리의 공공성 부족 등은 단지 개인의 비극을 넘어서 사회적 과제로 인식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각 장마다 소개되는 사례들은 때로는 충격적이고, 때로는 안타까우며, 무엇보다도 현실적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죽음을 슬프게만 그리지 않는다. 죽음이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관점에서, 저자는 삶의 태도와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유족들의 태도, 생전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 마지막을 준비하지 못한 이들의 후회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죽음은 결국 모두에게 찾아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순간을 준비하고, 남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작별을 남기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책을 읽는 내내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도 한 인간의 삶을 향한 존중과 연민이 느껴졌다. 죽음을 통해 오히려 삶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저자의 시선은 직업적 전문성을 넘어선 인간적인 공감에서 비롯된 것처럼 느껴졌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마주하며 이해하려는 그 태도가 오히려 삶을 더 따뜻하고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듯했다. 이 책은 차분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인간의 마지막을 이야기한다.
  • 2025-06-24 김아정
    돈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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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돈에 대한 합리적인 지식보다 그것을 어떻게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고 행동하느냐가 재정적 성공을 좌우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부를 이루는 데 있어 운과 리스크, 시간의 복리 효과, 소비욕구 조절, 겸손과 인내심, 그리고 자신만의 기준 세우기 같은 요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양한 사례로 설명한다. 특히, 사람들은 돈을 숫자나 공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감정, 비교, 불안감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합리적 결정보다 심리적 대응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또한, 부자는 조용히 축적되고 과시적 소비는 오히려 부를 깎아먹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돈에 대한 진정한 통제는 수입보다 지출을 조절하는 능력에서 오며, '충분함'을 아는 것이 심리적 안정과 장기적 부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결국, 자기만의 기준과 장기적 시각, 그리고 심리적 절제가 진정한 경제적 자유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다. 책에서 인상깊은 문구들을 정리하면 "부자가 되는 것과 부자로 남는 것은 전혀 다른 기술이다." 축적보다 유지가 어렵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돈은 지식보다 행동이 좌우한다." 아무리 재테크를 배워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메시지를 준다. "진짜 부는 남이 모르게 조용히 쌓인다." 과시보다 절제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당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돈을 사용하는 것이 돈의 진짜 목적이다." 단순히 모으기보단 목적 있는 소비와 사용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가장 큰 돈의 기술은 충분함을 아는 것(finding contentment)이다." 끝없는 욕망 대신 만족을 배울 때 진정한 자유가 온다는 것을 강조한다. 나는 지금 수입이 늘더라도 소비도 함께 늘어나는 시기를 겪고 있다. 이 책은 ‘얼마를 버느냐’보다 ‘얼마나 지혜롭게 다루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준다. 지금까지의 돈 습관이 미래의 재정 자유를 결정짓는 만큼,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고, 충동적인 소비를 줄이며, 남과 비교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충분함을 아는 태도’는 중년의 불안을 줄이고, 퇴직 이후 삶의 질도 결정짓는다. 지금 가진 자산이 많고 적음보다, 그것을 유지하고 불리는 심리적 습관과 태도가 핵심이라는 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 2025-06-24 임명환
    엔비디아 레볼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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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제는 대 AI 시대의 고성능 프로세서를 우선 공급하는 주요 기업으로 성장했다. 엔비디아의 프로세서 아키텍처는 거대 언어 모델을 학습시키고 실행하는 데 필수적인 동시 대량 연산 수행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AI 작업에 최적화되어 있다. 엔비디아는 AI의 중요성을 일찍 깨닫고, 지난 10년 이상 하드웨어 향상, AI 소프트웨어 도구 개발, 네트워크 성능 최적화 등을 포함한 선행투자를 해왔다. 이런 혜안 덕분에 엔비디아의 기술 플랫폼은 오늘의 AI 시대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완벽한 위치에 자리해 있다. -p.15 (2024년 6월 14일, 젠슨을 만나다) 나는 1990년대부터 직접 컴퓨터를 조립했던 PC 게임 마니아였다고 나를 소개했다. 처음 엔비디아를 알게 된 게 PC의 그래픽카드를 찾아보면서부터였고, 항상 엔비디아 제품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 커리어 초기에 월스트리트에서 운영되던 펀드에서 엔비디아에 투자한 선택이 나의 첫 번째 성공이었다고 했다. “잘하셨네요.” 젠슨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농담을 던졌다. “엔비디아는 저에게도 첫 번째 성공이었거든요.” -pp.18-1 디어크스는 흥분에 휩싸였다. 그는 다음날 바로 사표를 제출하고, 펠루시드의 최고위 임원에게 자신은 엔비디아로 간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임원은 미친 듯이 화를 냈다. “네가 갈 수 있을 줄 알아! 너와 엔비디아에 소송을 걸 거야. 실리콘밸리에서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게 해주지.” 그는 디어크스에게 엔비디아가 이런 법적 위협 때문에 겁먹고 물러날 것이라고 했다. 엔비디아는 당시 겨우 1살짜리 회사였던데다 자금 사정도 제한적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디어크스가 이 위협에 대해 젠슨에게 전했을 때 엔비디아의 CEO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해보시든가.” 젠슨은 대답했다. 이 순간 디어크스는 자신이 함께 일하고 싶은 상사가 어떤 사람인지 깨달았다. 그는 엔비디아의 제안을 수락했고 이후 30년 넘게 엔비디아에서 일하고 있다. -pp.414-415 젠슨은 해당 직원이 회사에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지는지에 따라 스톡그랜트(주식보상)로 성과를 보상한다. 전 인사 책임자 존 맥솔리는 말했다. “젠슨은 엔비디아 주식을 자신의 피처럼 여겼어요. 그는 주식 할당 보고서를 현미경 보듯이 꼼꼼하게 검토합니다.” 주식보상은 양도제한조건부주식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직원이 회사에 입사하면 증권사 계좌가 제공된다. 첫 1년이 경과하면 이 직원은 초기 스톡그랜트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주식을 한 번에 받는다. 예를 들어, 전체 약속분이 1,000주였다면 직원은 이때 250주를 받는 것이다. 이후 직원은 자신이 배정받은 연간 스톡그랜트의 4분의 1씩을 매분기마다 정기적으로 받는다. -p.415
  • 2025-06-24 오진원
    사월에 부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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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책은 제주 4·3 사건을 중심으로 한 한국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문학적으로 깊이 있게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역사 재현이나 고발에 그치지 않고, 국가 폭력과 이념 갈등 속에서 개인이 겪는 고통과 상처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당시의 시대적 참혹함을 감정적으로도 체감하게 만든다. 작가는 4·3 사건을 거시적인 시선이 아닌, 철저히 개인의 삶과 시선에서 풀어낸다. 이념이 아닌 생존, 정치가 아닌 일상에 집중함으로써, 독자는 시대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평범한 사람들의 절망과 침묵, 그리고 꺼내지 못한 기억에 가닿게 된다. '빨갱이'라는 낙인이 한 개인의 인생을 어떻게 뒤흔들었는지, 가족과 이웃, 공동체가 어떻게 분열되고 파괴되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이 소설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인간 존재의 문제를 묻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문장 하나하나에는 절제된 슬픔이 배어 있고, 작가는 그 슬픔을 독자에게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며, 독자 스스로 그 고통의 무게를 느끼도록 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감정의 과잉 없이도 강력한 공감과 사유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탁월하며, 문학이 갖는 힘이 무엇인지 되묻게 만든다. 『사월에 부는 바람』은 한국 사회가 외면하거나 왜곡해왔던 역사에 대한 정직한 응시이자, 문학을 통해 가능한 기억과 치유의 시도다.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 작가의 시선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진실은 왜 잊혀졌으며,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이 작품은 바로 그 질문들 앞에 우리를 세워놓는다. 한편 이 소설은 단지 비극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민, 그리고 회복 가능성까지 담아낸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끝내 살아가려는 모습, 말 못 할 진실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침묵은 단지 어둡고 무거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견뎌낼 수 있는 힘과 존엄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그렇게 이 소설은 과거의 어둠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키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이 책은 사회적 역할과 역사적 책임을 문학적으로 가장 밀도 높게 구현한 작품 중 하나다. 그것은 동시에 독자에게 깊은 울림과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진실을 알고 있으며, 얼마나 그것을 기억하려 하는가. 이 작품은 그 기억의 무게를 감당하려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 2025-06-24 문정민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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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귀자의 '모순'은 내가 그동안 지나치게 단순하게 바라봤던 삶의 여러 측면들을 되돌아보게 만든 작품이었다. 이 책은 제목부터 흥미로움이 느껴졌다. ‘모순’이라는 단어는 흔히 논리적 오류를 말하지만, 이 소설에서 말하는 모순은 인간관계와 감정, 삶의 구조에 스며든 복잡하고 설명할 수 없는 이중적인 감정들을 가리킨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 안진진은 그런 모순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이 소설은 스물두 살 대학생 진진이 친구 정아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을 읽으며 이 점이 독특하고 흥미롭다고 느꼈다. 편지체는 진진의 감정을 더 가깝게, 더 솔직하게 느끼게 만든다. 그녀는 가족, 연인, 그리고 스스로를 둘러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이해와 오해’, ‘사랑과 미움’, ‘가깝지만 먼 거리’를 경험한다. 나는 진진이 자신의 감정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통해, 어쩌면 나도 비슷한 고민들을 품고 살아가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진진의 가족관계이다.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모순이 깊게 와 닿았다. 어머니는 헌신적인 존재로 그려지지만, 그 헌신이 오히려 진진에게는 억압처럼 느껴진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부담’이라는 구절이 떠오를 정도로, 관계는 단순한 흑백논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또, 외할머니나 이복오빠와의 관계를 통해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반드시 피 한 방울로만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느꼈다. 연애에 대한 진진의 경험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감정은 진심이지만, 거기에는 조건과 자존심, 사회적 시선이 개입돼 있다. 진진은 그 모든 요소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어떤 사랑을 원하는지 계속해서 되묻는다. 나는 이 점에서 『모순』이 단순히 ‘청춘 성장소설’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 내면의 복잡함을 정직하게 드러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어떤 명쾌한 결론이나 해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 대신, 우리가 겪는 혼란과 갈등,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노력 자체에 의미가 있음을 일깨워준다. 진진은 여전히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모순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곧 성장이고, 성숙이라는 메시지가 내게 크게 다가왔다. 책을 다 읽은 뒤 나는 나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나 자신과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의 모순을 품고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그 모순을 숨기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라는 걸 이 책은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나 역시 삶의 수많은 갈래 앞에서 갈등하고 있지만, 이 책을 통해 그 모순조차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 것 같다.
  • 2025-06-24 이을용
    소년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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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으로 비극은 항상 되풀이되고 우리는 그러한 실수를 계속한다. 지금도 지역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남녀 간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비극은 되풀이될 것이다. 언젠가 5.18 광주 민주화 공원을 찾은 적이 있다. 그 곳에 잠든 평범한 시민들을 보면서 우리 일상에서 이러한 갈등을 풀어내지 못한다면 일상이 비극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중학교 3학년이던 소년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매일같이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며 주검들의 말 없는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초를 밝히던 그는 시신들 사이에서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날, 돌아오라는 엄마와 돌아가라는 형, 누나들의 말을 듣지 않고 동호는 도청에 남는다.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일하던 형과 누나들은 5·18 이후 경찰에 연행되어 끔찍한 고문을 받으며 살아 있다는 것을 치욕스러운 고통으로 여기거나 일상을 회복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진다. 저자는 5·18 당시 숨죽이며 고통 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청 앞 은행나무들을 지켜본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불쑥 바람의 형상이 드러나기라도 할 것처럼. 공기 틈에 숨어 있던 빗방울들이 일제히 튕겨져나와, 투명한 보석들같이 허공에 떠서 반짝이기라도 할 것 처럼 너는 눈을 크게 떠본다. 좀 전에 가늘게 떴을 때보다 나무들의 윤곽이 흐릿해 보인다. 언젠가 안경을 맞춰야 하려나. 네모난 밤색 뿔테 안경을 쓴 작은형의 부루퉁한 얼굴이 떠올랐다가, 분수대 쪽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박수 소리에 묻혀 희미해진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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