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31
박지현
빅 사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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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달리오의 "빅 사이클" 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세계 경제와 국제질서가 단순히 눈앞의 경기 흐름이나 개별 사건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구조적 힘에 의해 변화한다는 점이다. 달리오는 강대국이 성장하고 쇠퇴하는 과정을 생산성, 기술 혁신, 교육, 군사력, 금융시장, 기축통화, 부채, 내부 갈등, 외부 충돌이라는 요소로 설명한다. 한 국가는 기술과 생산성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무역과 금융의 중심이 되며, 이후 부채 증가와 사회적 갈등, 통화가치 하락을 겪으면서 기존 질서가 흔들린다. 이 관점은 내가 관심 있게 보고 있는 AI와 우주 산업 투자를 바라보는 데도 매우 유용했다.
특히 AI 산업은 달리오가 강조한 “생산성 향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AI는 단순한 유행 기술이 아니라 기업과 국가의 생산방식을 바꿀 수 있는 범용 기술에 가깝다. 예를 들어 엔비디아는 AI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GPU 생태계를 장악하며 데이터센터 투자의 핵심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엔비디아의 2025 회계연도 데이터센터 매출은 1,152억 달러로 전년 대비 142% 증가했는데, 이는 AI가 이미 거대한 투자 사이클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AI 투자를 더 넓게 보면 반도체만이 아니라 네트워크와 데이터센터 인프라도 중요하다. 아리스타 네트웍스는 대형 클라우드와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고성능 이더넷 스위치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회사는 2025년 매출 90억 달러를 기록했고, AI 네트워킹과 캠퍼스 확장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고 밝혔다. 이는 AI 시대의 병목이 단순히 GPU 부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빠르게 이동시키는 네트워크 인프라에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달리오식으로 표현하면, 다음 질서를 이끄는 국가는 단순히 AI 모델을 잘 만드는 국가가 아니라, 반도체·전력·네트워크·데이터센터라는 기반 인프라를 장악하는 국가일 가능성이 높다.
우주 산업 역시 『빅 사이클』의 관점에서 보면 단순한 미래 산업이 아니라 새로운 패권 경쟁의 무대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해상 무역로와 해군력이 강대국의 핵심 자산이었다면, 앞으로는 위성통신, 지구관측, 우주 인터넷, 군사 정찰, 발사체 기술이 국가 안보와 경제 질서를 좌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는 저궤도 위성통신망을 통해 전 세계 인터넷 연결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최근 보도에 따르면 스타링크는 2025년 114억 달러의 매출과 1,000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기록했다. 또한 미국 우주군과 22억 9,000만 달러 규모의 군사 위성 네트워크 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에서, 우주 산업이 민간 통신을 넘어 군사·안보 인프라로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장기업 중에서는 로켓랩도 좋은 사례다. 로켓랩은 소형 발사체 Electron과 우주 시스템 사업을 통해 상업·정부 고객을 대상으로 위성 발사와 우주 인프라를 제공한다. 회사는 2025년 연간 매출 6억 200만 달러를 기록해 전년 대비 38%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아직 스페이스X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우주 산업이 단순한 연구개발 단계가 아니라 실제 매출과 계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기업이다. 달리오가 말한 강대국의 조건인 기술력, 군사력, 정보 장악력은 우주 산업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AI와 우주 섹터를 단순한 성장주 테마로만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엔비디아, 아리스타, 스페이스X, 로켓랩 같은 기업들은 각각 AI 연산, 데이터 이동, 우주 통신, 발사체와 위성 인프라라는 미래 질서의 핵심 기반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유망한 기업”이라기보다, 다음 시대의 생산성과 안보, 정보 패권을 구성하는 인프라 기업에 가깝다.
다만 달리오의 관점은 동시에 경계심도 준다. 큰 사이클이 맞더라도 모든 기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AI와 우주는 기대가 큰 만큼 주가가 먼저 과열될 수 있고, 기술 상용화 지연, 정부 예산 변화, 경쟁 심화, 수익성 악화 같은 위험도 존재한다. 따라서 “AI니까 산다”, “우주니까 산다”가 아니라 실제 매출이 증가하는지, 고객이 확실한지, 기술적 진입장벽이 있는지, 국가 전략과 민간 수요가 동시에 붙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결국 "빅 사이클" 은 나에게 투자에서 시간축을 넓혀 보라는 메시지를 주었다. 단기 실적과 주가 흐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10년, 20년 동안 어떤 산업이 세계 질서의 기반이 될 것인가를 판단하는 일이다. AI는 생산성 혁명의 중심에 있고, 우주는 안보와 통신, 데이터 패권의 새로운 무대가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AI와 우주 산업은 단순한 미래 테마가 아니라, 빅 사이클의 변화 속에서 장기적으로 관찰해야 할 핵심 투자 영역이라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