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8
이명숙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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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의 성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만끽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표 여행 에세이집이다.
이 책은 사진이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어 부담없이 읽기 좋은 책이라는 것이 첫인상이었다. 책을 읽다보니 사진은 주로 무라카미하루키의 부인이 찍은 것이 대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이렇게 세부적인 위스키라는 테마를 가지고 부부가 사이좋게 여행하고 이를 여행에세이로 남긴 작가부부가 세삼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스키 향이 물씬 풍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로 마치 내가 여행한 것처럼 생생함을 느꼈고 당장이라도 위치키를 음미하는 여행을 시작하고 싶다는 충동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책은 하루키 부부가 위스키를 테마로 하여 ‘위스키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여행하며 그곳의 유명한 위스키인 싱글 몰트 위스키와 아이리시 위스키를 마음껏 맛보고, 그 위스키가 만들어지는 공정 등을 둘러보면서 쓴 에세이다. 그림이 더해져 시각적으로도 풍부한 간접체험을 만끽할 수 있었다.
왜 하루키는 스코틀랜드의 아일레이 섬과 아일랜드를 위스키의 성지로 생각한 것일까? 위스키를 가장 먼저 제조한 나라가 아일랜드라고 한다. 이후 15세기 무렵부터 위스키 생산기술이 스코틀랜드로 전해지기 시작했는데, 아일랜드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아일레이 섬이 앞서 그 기술을 도입하게 되었다. 결국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레이 섬이 위스키를 가장 먼저 제조한 두 고장이라 할 수 있다. 하루키는 어떤 술이든 그 술이 빚어지는 고장에서 마셔야만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 두 고장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언어는 그저 언어일 뿐이고, 우리는 언어 이상도 언어 이하도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온갖 일들을 술에 취하지 않은 맨 정신의 다른 무엇인가로 바꾸어놓고 이야기하고, 그 한정된 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아주 드물게 주어지는 행복한 순간에 우리의 언어는 진짜로 위스키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적어도 나는 늘 그러한 순간을 꿈꾸며 살아간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하고.....
“우리는 장례식에서도 위스키를 마시지” 하고 아일레이섬 사람은 말한다. “묘지에서 매장이 끝나면, 모인 사람들에게 술잔을 돌리고 이 고장에서 빚은 위스키를 술잔 그득 따라주지. 모두들 그걸 단숨에 비우는 거야. 묘지에서 집까지 돌아오는 춥고 허전한 길, 몸을 덥히기 위해서 말야. 다 마시고 나면, 모두들 술잔을 바위에 던져서 깨버려. 위스키 병도 함께 깨버리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 그것이 관습이거든.” 아이가 태어나면 사람들은 위스키로 축배를 든다. 그리고 누군가 죽으면,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위스키 잔을 비운다. 그것이 아일레이섬이다. 한 인간의 삶의 시작부터 끝인 죽음까지 위스키가 함계하는 것이다.
아일랜드라는 풍토에는 전체적으로 그런, 약간은 수줍은 구석이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말하자면,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그리스의 신전,
혹은 나이아가라 폭포처럼-엄청나게 큰 감동이나 경탄, 혹은 깊은 생각 같은 걸 직접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어디를 가도 풍경은 아름답지만, 이상하게도 그림엽서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듯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일랜드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내미는 것은 감동이나 경탄보다는 오히려 위안과 진정에 가까운 것이다. 세상에는 입을 열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말문이 트이면 온화한 어조로 몹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있는데 아일랜드는 그런 느낌이
드는 나라다.
코로나시국으로 해외여행이 힘들어진 요즘 간접여행의 체험을 통해 지친 일상으로 지친 몸과 맘이 리프레시되고 있음을 책을 읽는 내내 온전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