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0
하지혜
물고기는존재하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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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책모임에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습니다. 제목이 던지는 도발적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정말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을까요? 룰루 밀러의 이 책은 단순히 과학적 사실을 전달하는 논픽션이 아닙니다. 삶의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인간의 집착,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한계와 허상,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붙잡아야 할 희망과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하는 에세이이자 지적 모험담입니다.
과학적 집착에서 시작된 여정
이야기는 19세기 미국의 어류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따라갑니다. 그는 평생을 바쳐 수천 종의 물고기에 이름을 붙이고, 인간의 편의상 만든 허상임을 밝혀냅니다. 즉, 우리가 물고기라 부르는 존재들은 실제로 서로 가까운 친척이 아니고, 오히려 소와 폐어가 더 가까운 관계라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이처럼 과학적 탐구의 결과는, 우리가 믿어온 질서와 분류의 허약함을 드러냅니다.
질서와 혼돈, 그리고 인간의 집착
저자 룰루 밀러는 자신의 삶의 혼란과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조던의 집념을 좇습니다. 조던은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평생의 표본을 잃고도, 다시 일어나 물고기 표본에 이름을 꿰매며 질서 회복에 집착합니다. 이 모습은 저자에게 큰 영감을 주지만, 동시에 집착이 확신과 신념으로 굳어질 때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도 보여줍니다. 조던은 우생학 운동에 깊이 관여했고, 그의 '사다리 법칙'은 생명체에 위계를 매기고 차별과 배제의 논리로 이어졌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과학적 분류의 한계와, 확신이 진리, 관용, 화합의 적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 철학, 인문학, 심리학이 한데 어우러진 경이로운 논픽션입니다. 저자의 유려한 문체와 솔직한 고백, 그리고 깊이 있는 사유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줍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편의와 확신, 관습에 따라 분류하고, 그 안에서 진실을 놓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혼돈 속에서도 의미와 희망을 찾으려는 저자의 여정은, 우리 각자에게도 삶의 의미를 다시 묻는 계기가 됩니다.
이 책은 세상의 질서와 혼돈, 인간 존재의 의미, 그리고 우리가 믿어온 모든 범주와 이름 붙이기의 허상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을 내리는 것은 결국, 우리 각자의 몫임을 조용히 일깨워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