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제가 사라지고 민주주의 사회를 구춘한 대한민국은 평등한 사회인가? 개인이 가진 능력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인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는 공정하고 평등하다는 믿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끝난다.
미국 명문대 부정 입시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마이클 샌델의 논평은 한국의 현실과 다름이 없다. 능력만 있으면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는 아메리칸드림이라는달콤한 말로 시작된 '능력주의'는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만연한 시대가 되면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교의 졸업장이 필요하게 되었다.
능력주의 사회는 개인의 능력으로 평가하는 공정한 이상 세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좋은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정녕 본인 능력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 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명문대 간판이 내포하는 능력의 지표는 정당한 것인지 모호해지는 지점이다.
소위 SKY로 일컬어지는 명문대 입학생에 대한 최근 통계를 살펴보면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학생들이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환경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려서 부터 다양하고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자라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고, 대접 받는 직업을 얻기에 적합한 인재가 된 그들이 가정을 꾸리고 낳은 아이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자라날 것이다. 가진 것이 대물림 되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마치 환상 속의 표현처럼 들리게 되어버린 시대다. 요즘 쉽게 쓰이는 말처럼 좋은 수저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에게서 능력이 더 잘 발휘되는 현상은 능력이 온전히 개인의 노력이기는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그 뿐인가. 능력과 재능은 시대적 환경적 행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때마침 시대가 원하는 것에 천부적 재능이 있는 것은 시대가 외면하는 재능을 가진 것과는 출발점이 다르다. 이쯤 되면 능력은 단순히 개인의 성취라고 보기 어려워진다.
대학 진학률이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미국은 대학을 나온 사람과 안 나온 사람 간의 뿌리 깊은 균열이 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를 이끈 원동력이 바로 이 균열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누구나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고 많은 사람이 대학교 졸업을 하지만 미국에서 보이는 집단 간 갈등과 비슷한 맥락을 보인다. 학연은 마치 전통과도 같이 사회에 스며들어 있고 어떤 대학교와 어떤 학과를 졸업 하는지에 따라 삶이 완전하게 달라지는 능력주의 숨 쉬듯 자연스럽게 체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수성가가 미덕으로 여겨지고 각 종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운동 경기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목표를 이뤄내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우리나라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능력주의에 대해 매력을 느끼고, 경쟁에서 쟁취해 낸 능력이 기회의 사다리가 되는 것에 찬사를 보내는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이토록 매력적인 능력주의는 과연 공정하게 작동하는가, 단어 그 자체만 보면 자칫 공정해 보이는 능력주의의 공정함과는 다른 행보를 보인다. 능력주의를 지나치게 신성하는 현상은 사회적 인정을 특정 방향으로 이끈다.
균열한 사회만큼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의 고통이다. 능력주의의 본래 바람은 잘 살고자 하는 것일 터인데 보유한 재산과 같이 눈에 드러나는 수치가 잘 사는 것을 대변할 수 있을까? 그보다도 내 마음은 안녕한 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나 역시도 책을 읽기 전까지는 노력에 대한 보상은 당연하며 노력에 따른 능력이 정당하게 인정받는 것이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했다. 대학 간판이나 각종 증빙 가능한 점수들은 성실함의 척도라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개인의 역량을 맘껏 펼칠 수 있는 현대 사회는 축복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과 누구나 할 수 있는데 해낼 수 없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단순한 체념과 열듬감이라는 차이 말이다. 열린 환경에서 성취해 내지 못한 것은 자책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스스로 열등하다는 패배감에 사로 잡히게 만든다.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능력주의는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는 굴욕을 안기는 구조가 되고 말기 때문에 패배했다고 느끼는 개인의 책임이 너무나 가혹하다.
공정하다는 것이 과연 무엇이며 공정하다는 것은 정의와 맞닿아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마이클 샌델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내가 잘해서 잘 되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주변을 살피고 자신도 살피자는자는 것이라 생각한다.
기회의 평등을 넘어 조건의 평등이 갖취진 사회를 꿈꿔본다. 조건의 평등응 누구나 시도할 있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시작된다. 책에서 언근한 도서관처럼 누구든지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고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변화를 만들수 있다. 다양한 공공서비스가 만들어지고 자리를 잡아가는 지금,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좋은 움직임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디. 무엇이 공정한 사회를 만든는지에 대한 물음에 저자가 원하는 답을 내려보자면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내 능력은 오직 나로부터 기인했다는 생각은 연대가 어려운 사회를 만든다. 능력과 재능에 대한 보상은 결국 나를 감싸고 있는 사회로부터 받았다. 지금은 '사람 옆에 사람'이 있는 세상,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