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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더클래식세계문학컬렉션미니북22)
5.0
  • 조회 395
  • 작성일 2023-11-29
  • 작성자 박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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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펙을 쌓기 위해 피로한 사회에 살고 있다. 스펙은 보이기 위해 필요한 이런저런 자격을 말한다. 일을 하기 위해서 적절한 스펙이 요구되는 것은 마땅하지만, 불필요한 스펙을 쌓느라 어쩔 수 없이 불필요한 경쟁을 해야만 하는 게 문제이다. 더구나 불필요한 스펙은 자신의 잠재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실제 우리는 대부분 이렇게 말 그대로 자격이라는 간판을 내걸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누구보다도 스펙이 하나 더 있으면 그만큼 우월하다고 여기는데 사실상 이것은 삶의 낭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정작 인간이 되기 위한 스펙을 탐색하고 배워볼 기회마저 놓치고 만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인간이 되기 위한 스펙을 쌓을 수 있을까?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에게 인간이 되기 위한 스펙이 따로 있을까?
의문스럽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서 한 가지 방법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요조가 발명한 것인데 바로 희극 명사, 비극 명사 알아맞히기 놀이이다. 즉, 증기선과 기차는 둘 다 비극 명사고 전철과 버스는 둘 다 희극 명사다. 왜 그런지를 이해 못하는 자는 예술을 논할 자격이 없다.
가령, 폐인(廢人)이라는 단어는 희극 명사일까? 비극 명사일까? 폐인에게서 느껴지는 삶은 어둡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비극 명사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요조에게는 그렇지 않다. 요조에게 폐인이라는 단어는 희극 명사였다. 요조 스스로 폐인처럼 살았기 때문에 폐인이라는 것이 자신의 그림자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폐인에 대한 명사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다.
요조는 희극 명사, 비극 명사 알아맞히기 놀이를 하면서 세상을 조롱했다. 이와 비슷한 유희가 또 있었는데 반의어 맞히기였다. 가령, 검정의 반의어는 하양이다. 그러나 하양의 반의어는 검정이 아니라 빨강이다. 그리고 빨강의 반의어는 검정이다. 그렇다면 죄의 반의어는 뭘까? 법 혹은 악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안이한 생각에 불과하다. 인간이 멋대로 만들어낸 도덕이라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 말대로 ‘죄와 벌’일 수 있다. 하지만 요조는 그것마저 부정했다. 죄와 벌은 유의어이지 반의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조가 생각한 죄의 반의어는 다름 아닌 무한한 신뢰였다.
이러한 놀이는 실용적인 괴로움을 모르는 요조에게는 익살이라고 할 수 있다. 실용적인 괴로움이란 밥만 먹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해결되는 괴로움이다. 이것이 누구에게는 행복이겠지만 요조에게는 오히려 지옥이었다. 세상 사람들과 행복의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요조는 보통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면서도 사람들의 눈에 거슬리지 않기 위해 익살을 부렸다. 요조는 익살을 통해 사람들을 속이면서 뭔가를 깨달았다. 즉 서로를 속이면서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를 입지 않는다는 것, 무엇보다도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공포를 가슴 속 깊은 곳에 숨기면서 천진난만한 낙천적인 척 가장했던 요조는 익살을 통해 무(無), 바람이 되었다. 요조는 정말이지 명랑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 충만한 것에 의아했다. 이것이 익살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었다.
요조의 비합법적인 익살을 들여다보면 세상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세상이 얼마나 합법적인지를 생각해볼수록 가장 무섭고 두려운 것이 세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세상은 온통 과학적 미신 혹은 과학적 유령에 사로잡혔다. 그러니 과학적이지 않은 즉 비합법적인 존재는 완전히 묵살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세상은 개인의 잘잘못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세상은 인간의 복수(複數)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복수는 요조 같은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다. 요조는 스스로 말했듯 태어날 때부터 ‘음지의 존재’였다. 음지의 존재는 사람으로 보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얼굴이며 동물로 보면 개나 고양이보다 열등한 느릿느릿 꾸물거리기만 하는 두꺼비 같다는 것이다.
만약에 누군가가 합법적인 세상에서 패배하거나 탈선한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세상이 용납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합법적인 세상에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자격은 아주 단순하게도 합법적으로 살면된다. 그러나 요조는 그럴 수 없었다. 오히려 도깨비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는지 고민했다. 그는 이름 있는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도 이런 도깨비 그림을 그리고 싶어."
화가들의 위대한 그림을 보고 도깨비 그림이라고 말한다는 게 정상은 아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즉 인간 실격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요조의 과대망상은 인간에 대한 공포를 솔직하게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공포 앞에서 그가 일부러 익살을 부렸다면 화가들은 도깨비 그림을 그린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도깨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한 번쯤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고 싶다는 절규가 아로새겨져 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
세상이 인간의 복수라는 말은 요조에게는 맞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일시적인 투쟁이며 그때만 이기면 되는 것이다. 만약에 실패가 두려워 움추러든다면 정말이지 인간 실격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스물일곱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흔 살 이상으로 보일 지도 모른다.
요조는 누구보다도 다르게 살고 싶었다. 인간들의 숨막히는 고통에서 벗어나 좀 더 아름답고 솔직한 세상을 바란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인간 실격으로 만들고 말았다.. 정작 그는 한 순간도 미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그럼, 누가 인간 실격일까? 인간에 대해 희극 명사라고 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비극 명사라고 하는 사람일까? 그는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이다.”라고 말했다. 비극적인 삶을 보내고 있다면 눈을 들어 별들을 보자.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다. 인간과 별은 희극명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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