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현무암 담을 배경으로 진초록 잎과 탐스러운 주황색 열매를 달고 서 있는 귤나무, 한라산을 지키는 늘 푸른 구상나무, 겨울에도 새빨간 열매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먼나무, 5월에 제주도 곳곳을 비릿한 밤꽃 향기로 채우는 구실잣밤나무, 오랜 시간 마을 입구에서 제주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 준 팽나무. 제주도에서 만나는 낯선 식물은 제주도를 ‘특별한 곳’으로 기억하게 해 준다. (본문중에서)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며, 가운데 해발 1950미터 한라산이 솟아 있고, 중산간이라 부르는 곳에는 독특한 기후를 보이는 곶자왈이 있다. 그래서 제주도에는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는 남방계 식물은 물론 추운 지역에서 자라는 북방계 식물이 함께 자라며, 중국과 일본을 잇는 식물군이 띠 모양을 이룬다. 제주도에는 중부지방에서 보기 힘들거나 볼 수 없는 나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차나 도보로 조금만 이동하면 바다고 오름이고 곶자왈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제주도 동서 방향 이동도 두 시간이면 가능하고, 한라산도 하루 일정으로 가능하다. 나무 공부, 특히 남부 식생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공부하기에 제주도의 최고의 장소 중 하나이다.
나무를 관찰하는 일은 나무의 ‘온 삶’을 이해하는 일이다. 나무가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죽고, 어떻게 혹독한 환경을 견디며 대를 이어 가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년 열두 달 나무의 시간을 애정 어린 눈으로 세심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나무를 관찰하는 일은 나무의 삶을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무 관찰은 나무가 뿌리 내린 땅과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길가, 마을, 한라산, 오름, 곶자왈, 하천 변, 바닷가, 제주도 곳곳에 뿌리 내리고 생명을 이어 가는 제주 나무들의 모습에는 그 나무에 기대어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삶이 새겨져 있다. 육지의 느티나무나 은행나무처럼 제주도 마을의 수호신이자 쉼터 역할을 해 온 팽나무, 농기구가 되어 주기도 하고 먹을거리도 내어 준 종가시나무나 구실잣밤나무, 해안 마을에서 당목(堂木) 역할을 해 온 우묵사스레피나무나 보리밥나무, 그리고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 준 수많은 제주도의 나무. 나무가 어떻게 뿌리 내린 곳의 사람들과 관계 맺었는지를 알면 그 장소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나무는 그렇게 인간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은 제주도에서 주로 자라는 나무를 소개하고 있다. 일반적인 식물도감처럼 나무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줄기·잎·꽃·열매 등 나무의 주요 생태적 특징을 정리한 정보도 있지만, 이름의 유래는 물론이고 나무와 관련된 갖가지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