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장편소설 ‘완전한 행복’을 읽고
처음에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완전히 책의 제목 때문이었지만,
첫 장을 넘기며 한순간도 책을 놓지 못하고 끝까지 읽어 버릴 수밖에 없는 내용에 얼마전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고유정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유정 작가는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보험공단 심사담당으로 근무를 했었다고 한다. 집안에 친척이 작가로 있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그 길을 걷지 않았으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부터 적극적으로 본업을 그만두고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행복은 더하는게 아니라 뺌으로써 비로소 그 행복이 완전해 진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사이코패스로 주위 사람들중 본인의 행복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면 하나 둘씩 죽여 버려서라도 본인의 행동을 합리화 해 버리는 내용으로 소설의 처음장을 열고 마지막장을 덮을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강한 흡입력으로 끝까지 읽게 해 버리는 빈틈없는 소설이다.
완전한 행복에 이르고자 불행의 요소를 제거하려 ‘노력’한 어는 나르시시스트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흔히 자아도취형 인간을 나르시시스트라 부르지만, 병리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의미가 좀 다르며, 통념적인 자기애나 자존감과도 거리가 있으며, 덧붙이자면 모든 나르시시스트가 사이코패스는 아니지만 모든 사이코패스는 기본적으로 나르시시스트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다만 늘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겐 행복할 권리와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함께 있다는 것도 말이다.
자신의 딸과 친언니로부터 모든 사실이 밝혀지는, 본인에게 필요치 않는 사람들은 모두 죽여서라도 본인의 행복을 위함이라 느끼는 자신을 합리화 시키며 살아가지만, 결국은 가장 가까운 딸과 친언니로부터 하나 둘씩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사실이 밝혀져 버리는 결말로 이어진다.
나로서는 완전한 행복에 대한 가치를 찾기 위하여 책의 제목만 보고 이 책을 선택했던 것이 황당하기까지 한 사실이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이런 큰 사건을 소설화 하고, 때로는 영화화 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건들을 잊지 않고 생각할 수 있고, 이런 사이코패스들을 경계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