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는 이순신의 일기이다.
이순신 장군은 1545년 3월 8일 자정에 한성 건천동 에서 이정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태어날 때 어머니 변씨의 꿈에 시아버지가 와서 ´ 이 아이는 반드시 귀하게 될 것이니 이름을 순신 이라 지으라; 하였으므로 남편에게 말하여 이름을 그대로 지었다 한다. 자는 여해,시호는 충무, 본관은 덕수다
이순신은 어려서 아이들과 놀 때에도 항상 전쟁놀이를 했고,그럴 때마다 꼭 대장노릇을 했다. .또한 늘 활을 가지고 다니며, 동네의 어른이라도 옳지 못한 일을 하는 것을 보면 곧 활을 당겼다고 한다.
그는 커 가면서 무예에 뜻을 두어, 말타기와 활쏘기 연습을 하는 등 온갖 재능을 연마하였다.그리하여1572년 8월,28세때훈령원의 별과 시험에 응시했다. 그 시험에서 말을 달리다가 말이 넘어지는 바람에 떨어져 왼쪽 다리가 부러졌다. 모든 사람들이 죽은 줄 알았으나 그는 곧 일어나 버드나무 껍질은 벗겨 상처를 싸매고 다시 말을 달려, 보는 사람들을 감탄케 하였다.
1576년 봄, 32세때 무과에 급제하여 12월에 함경도 동구비보의 권관이 되었다. 이것이 그의 벼슬길의 첫출발이었따.
1579년2월,35세때 훈련원 봉사가 되었고,그 해 10월에 충청 병마절도사의 군관이 되어 갔다가 1580년 7월,36세 때 전라도 발포 만호가 되었다.
1592년 4월14일,임진왜란이 터지자 왜군 20여만 명이 물밀 듯이 쳐들어와 5월2일에 한선이 함락되었다.선조는 의주로 피신하고, 6월13일에는 평양이 함락되었다.이순신은 이운룡 에게 원군 요청을 받아서 원군을 보내 일본놈들에게 결정타를 입히게 되었다. 왜놈들은 분하게도 우리 나라사정에 밝은 요시라를 통해 갖가지 거짓 정보를 흘림으로써 이순신을 역적으로 몰려고 하였다.이순신은 결국 옥에 갖히게 되었다.
얼마나 이순신이 대단한 사람인지 일본사람들도 이렇게 평한다.
일본의 한 학자 토쿠도미 조이치로는 충무공의전사를 영국 넬슨 제독의 죽음에 비교하면서 ´그는 이기고 죽었으며 죽고 이겼다. 임진왜란7년 동안 공을 세운 자가 많지만 전쟁에 있어서는 이순신만을 자랑삼을 수 있다´ 고 치하하였다.
앞으로 나도 이순신 장군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남의 잇속을 챙기지 않고,남의 간섭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한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