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에서 가장 넓은, 강력한 제국을 이루었던 영국이지만, 그 역사에 대해서는 성공회, 흠정역 성경(KJV), 권리장전, 명예혁명 등 몇몇 역사적 유물과 문화, 사건들로 기억하고 있다.
이에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는 얄팍한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영국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책을 읽으며 메모했던 책속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데인인 크누트, 1016년 잉글랜드 왕이 되다
980년에 다시 바이킹이 대규모로 잉글랜드를 침략하기 시작했 고, 덴마크와 노르웨이에 걸쳐 왕국을 형성했다. 당시 잉글랜드왕 은 무능왕 애설레드Aethelred, 재위 979~1016다. 데인인들은 잉글랜드 곳곳을 약탈한 후 애설레드에게 조공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1만 6천 파운드의 금은을 받았으나 침략이 있을 때마다 이 액수는 더 치솟았다. 유약한 애설레드 왕은 조공을 바치는 것 이외에 노르망 디 공작의 딸과 결혼해 공작의 군사적 지원을 얻고자 했다. 1003년 다시 대규모의 약탈이 있었고, 애설레드는 급기야 노르망디로 도 망쳤다. 무능한 왕에 염증을 느끼고 전쟁에 지쳤던 잉글랜드인들 은 덴마크 왕 스벤이 1013년 잉글랜드를 찾았을 때 그를 환영했다. 결국 1016년 그의 둘째 아들 크누트cnut, 재위 1016~1035가 합법적으 로 잉글랜드 왕이 됐다. 그는 앵글로색슨의 관습에 따라 왕국을 통 치했고 데인인과 앵글로색슨족 모두 관리로 등용했다. 무능한 왕보다, 침략자이지만 유능한 통치자인 크누트 앵글로 색슨인들은 오히려 좋아했다.
명분보다 실리를 중요하게 생각한, 당시는 약소국이었던 영국의 현명한 선택이 눈에 띄는 대목이었다. 어쩌면 이런 합리성이 대제국을 이룰 힘의 근간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2. 프랑스와의 자유무역에서도 콤비를 이룬 콥든과 브라이트
1859년 존 브라이트 자유당 의원은 하원에서 프랑스의 침략에 대비해 군비를 증강하는 대신 자유무역조약을 체결하라고 파머스 턴 총리에게 요청했다. 두 나라의 무역이 증가해 서로 관계가 긴밀 해지면 전쟁에 따른 손실이 너무 크기에 전쟁을 저지할 수 있다는 게 자유무역 주창자들의 오랜 신념이다.
3. 유럽통합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무대에서 변방으로 전락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평화를 위해 힘을 합치며 이루어졌다. 통합 의 수단은 바로 경제였다. 이 과정에서 양차대전을 일으킨 민족주 의를 호리병에 밀봉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010년 경제위기 때 부터 호리병이 열려 민족주의가 쏟아져 나왔다. 브렉시트는 이런 맥락에서 발생했다. 세력을 키운 과도한 민족주의를 다시 호리병 에 넣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영국의 초기 역사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쉽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역사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