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한국사 권력편은
1장 연개소문은 어떻게 고구려를 멸망으로 이끌었나
사실 고구려는 최고 실권자였던 연개소문의 집안때문에 멸망하게 된다
부패한 정권은 위기에 그 실체가 드러난다. 2차 여당전쟁때 경험이 없는 아들 연남생에게 중책을 맡겼으나 전쟁에서 대패하고
아버지 연개소문의 수습나서 평양성에서 장기전을 펼치며 당나라 군대를 물리쳐 승리를 했다
이후 연개소문이 죽으면서 세아들에게 권력이 돌아갔으나 주변에서 형제사이를 이간질하여 세 형제의 권력다툼 상황에서
당나라가 666년 다시 고구려를 침공하여 고구려의 주요성을 함락하며 수도 평양성까지 진격하고 신라군까지 평양성을 포위하며
파죽지세의 공격에 668년 고구려는 항복했다. 고구려 멸망에는 연남생이 일조하여 당나라로부터 높은 관직과 토지를 받고 호의호식하며
살았다.. 고구려 멸망에는 연씨 집안의 권력사유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장 신라의명가
김유신의 어떻게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었나에서
가야계 김유신은 화랑으로 선출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집안의 기대와는 달리 술과 여자에 빠져있을때 어머니가 눈물을 보이며 호되게 꾸짖자 다시는 천관년의 집에 발길을 끊겠다고 다짐했다. 어느날 술에 취해 집으로 가는길에 김유신을 태운 말이 익숙한 길로 향해
천관년의 집에 이르렀을 때 화들짝 놀라 지체없이 말의 목을 베고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일화가 있다
이후 수련에 몰두하여 화랑의 총지도자격인 국선에 오른다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며 총지휘관이었던 김유신은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무너뜨리는데 공을 세워 신라 왕실과 백성의 존경을 받게된다
제3장 벌거벗은 쿠데타
잇따른 무신들의 집권으로 민란의 고려사회는 정중부가 죽은후 새로운 다른 무신이 집권하게 되어 무신의 시대는 계속되었다 연이은 집권자의 교체로 고려의 혼란은 가속되고 백성들의 삶도 피폐해졌다
이후 수많은 난과 봉기가 일어나고 민란의 시대가 되었다. 무신정변 3인방은 9년만에 모두 비참한 죽음을 맞이 했다
제4장 조선의 적장자
태종 이방원은 왜 양녕대군을 버렸나
조선의 미래를 위해 어진인물인 충령대군을 세자로 책봉했으며, 그로인해 세종대왕이 태어날수 있었다
적장자의 왕위계승이라는 대의명분이 있었으나 조선의 미래를 위한 결단은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통치자의 큰 뜻을 볼수 있었다
제5장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은 백성의 마음을 헤아리는 정치를 꿈꾼 재상이었으며 시대를 앞서간 탓에 일찍 생을 마감했다
제6장 벗거벗은 이단아 어사
어사 박문수는 자신의 이익만을 움켜쥐는데 급급하지 않고 미움을 받을 지언정 백성을 위한 일이라면 타협하지 않아 100년간 이어진
조선의 폐단을 개혁한 인물이었다. 그과정은 온갖 모함과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했지만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도 화자되고
있다 박문수의 개혁이 옳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제7장 벌거벗은 개화기 엘리트
김옥균은 엘리트 명문가문에서 태어나 권력을 누리고 살수 있는데 갑신정변의 주역이 되어 신분제 폐지 등 주장했다
결국은 고종이 보낸 자각에 의해 상하이에서 살해 당했다. 고종과 함께 자주독립과 근화대화를 꿈꿨던 김욕균의 삶도 비참하게 끝나고 말았다. 갑신정변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조선의 자주독립을 외치며 일본에 의존했다가 걸국 조선을 위기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최초의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는 크다고 볼 수 있다.
제8장 녹두장군
전봉준은 어쩌다 죽창을 들게 되었나
나라의 개혁과 변화를 꿈꾸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19세기 조선 말 농민들은 나라 안밖의 침탈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는 시기에 만민평등을 왜치는 동학의 목소리는 농민들사이에서 등불처럼 번졌다
승승장구하던 동학농민군의 기세에 눌린 조선은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는데 이는 당시에 조선을 삼키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일본이 청나라와 일본사이에 맺은 텐진조약을 빌미로 군사를 보내 조선의 운명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외세의 개입에 전봉준을 동학농민군을 자진 해산을 전제로 국왕 고종에게 자신들이 정리한 개혁안을 제시하고 전주성에서 철수한다
"폐정개혁안" 이후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파병된 일본군은 고종을 인질삼아 내정간섭을 하게되어 전봉준을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
2차 봉기를 시도한다 하지만 일본군의 화력에 무참히 패배하여 1894년에 동학농민군을 해산한다
동학농민혁명은 실패한 혁명이었으나 갑오개혁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라의 개혁과 변화를 만드는 주역은 수많은 민초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아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