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비밀을 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해, 우리는 둘만의 비밀 도시를 만들었다. 분리되는 그림자, 바늘 없는 시계탑, 그리고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네가 나에게 그 도시를 알려주었다. 도시는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도시에는 시간이 없다. 시계에도 바늘이 없다. 도시에 들어가려면 내 그림자도 버려야 한다. 네가 일한다고 했던 도서관으로 간다. 그런데 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도서관에는 책 대신 사람들의 꿈이 놓여 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그 꿈들을 읽는 것이다. 꿈을 읽으려면 내 눈에 상처를 내야 한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나,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너, 이 비밀의 도시에서 이제 우리는 무엇이 되어가는 걸까... 이 소설의 중심이 된 것은 1980년 문예지 「문학계」에 발표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라는 중편소설이다. 이 작품에는 작가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 다만 당시 작가는 유감스럽게도 그 무언가를 충분히 써낼 만큼이 필력을 갖추지 못했다. 소설가로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엇을 쓸 수 있고 무었을 쓸 수 없는지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발표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이미 일어나버린 일은 어쩔 수 없다. 언젠가 적절한 시기가 오면 천천히 손보아고쳐써볼 생각으로 그대로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이 작품을 쓸 당시 작가는 도쿄에서 재즈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두 가지 직업을 겸하느라 상당히 바빠서 집필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가게 운영도 즐거웠지만 소설을 몇 편 쓰는 사이 역시 붓 하나로 먹고 살고 싶나든 생각이 점점 강해져 가게를 접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세월이 흐르고, 작가로서 경험을 쌓아게며 나이가 들면서, 2020년 초에 이르러 마침내 이 소설을 다시 한번, 송두리째 고쳐 쓸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 발표한 때로 부터 꼭 사십년이 지난 시점이다. 그 사이 작가는 서른한 살에서 일흔한 살이 되었다. 두 가지 일을 겸하는 신출내기 작가와, 나름대로 숙련된 전업작가 사이에는 여러 의미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소설을 쓴다는 행위에 대한 내추럴한 애정에는 그리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2020년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해였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3월초에 마침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해 삼면 가까운 기간에 완성했다. 그 사이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긴 여행을 떠나지도 않고 상당히 이례적이며 나름의 긴장이 요구되는 환경 속에서 날마다 꾸준히 소설을 집필했다. 처음 1부를 완성하고 일차적인 목표는 달성했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몰라 반년 정도 원고를 묵혀두는 사이 역시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느끼고 이어지는 2, 3부에 돌입했다. 그런 연유로 전부 완성하기 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호르혜 루이스 보르헤스가 말한것 처럼 한 작가가 일생 동안 진지하게 쓸 수 있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그 수가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그 제한된 수의 모티프를 갖은 수단을 사용해 여러 가지 형태로 바꿔나갈 뿐이다. 요컨데 진실이란 것은 일정한 어떤 정지 속이 아니라 부단히 이행하고 이동하는 형체 안에 있다. 오래지나지 않아 나는 조금씩 깨닫는다. 네가 어느 특정한 장소를 향해 걷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너는 그저 한 장소에 머무르고 싶지 않아 걸음을 옮길 뿐이다. 이동 그 자체가 목적인 이동이다. 네 보폭에 맞춰 나는 나란히 걷는다. 역시 침묵을 지키면서 하지만 나의 침묵은 올바른 어휘를 찾아내지 못한 사람의 침묵이다. 이런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까? 너는 내가 난생 처음 가져본 걸프렌드다. 연인이라 해도 될 만큼 친밀한 관계를 맺은 첫 상대다. 그렇기에 너와 있는 동안 평소와 다른 상황에 직면하자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적절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이 세상은 내가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일들로 가득하다. 더욱이 여자의 심리에 관해서라면 내 지식은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새하얀 공책이다. 다름없다. 그래서 나는 평소와 다른 네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게 이야기라는 것의 진수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