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하루키즘을 만드는 것일까.
책장을 넘기는 순간, '아~ 하루키 냄새다'하고 옛추억이 되살아났다.
상실의 시대를 읽고 일본 소설에 빠져들었는데, 작가 임경선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가 하루키라는 점을 고려해보건데, 하루키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미치고 있다.
두꺼운 벽돌책을 읽기가 겁나는 까닭은,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10대 소년 소녀들의 사랑이야기를 쓴다는 것 자체가 소름돋았기 때문이다. 젊어서는 하루키가 좋았다면, 지금은 징그러운 건 내가 변했기 때문일까, 하루키가 변함이 없기 때문일까.
더이상 책장을 넘기기가 두려웠다. 유년시절의 독서는 하루키에 머물러 있는데, 내가 하루키를 변태스러운 작가로 변모시키면, 내 청소년기또한 변질되어 버릴 것임을 잘 알기에.
무엇이 하루키에 열광하게 하는 것일까. AI 시대가 코앞에 도래한 지금, 하루키의 소설은 시대를 앞서간 3차원의 이야기를 쓰고 있어서 시대를 초월한 소설임엔 틀림없다. 딴 세상 이야기 같고 추억을 회상하게 하는 아득한 과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하루키를 보며, 또 한 번, 베스트셀러 작가의 변함없는 자기 개성이 뚜렷한 작품세계에 대해 감탄하며 책장을 덮을 수 밖에 없었다.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써도 베스트 셀러 작가에 오르고 필력 또한 인정받는 그를 보면서, 복도 많은 영감이야, 하고 부러워 할 수밖에.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삶이 얼마나 부러운 삶인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살면서 매일 쓰고 매일 러닝하는, 자유로운 삶이 부럽기만 하다.
나 또한 하루키같은 삶을 꿈꿨지만, 하루종일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거북목을 지닌, 오른쪽 팔목 통증에 오른쪽 다리마저 저린, 불쌍한 삶을 사는 아이 셋인 아줌마일 뿐이란 사실이,
하루키 할아버지의 자유로운 영혼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하루키는 아스라한 추억 속에 고이 모셔두고 싶고 그의 소설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은 11월의 마지막 밤이다.
하루키처럼 남은 생은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원없이 즐기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