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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5.0
  • 조회 399
  • 작성일 2023-10-05
  • 작성자 황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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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16살, 15살 남녀 주인공인 '나'와 '너'가 등장하고, 그들이 만든 상상 속의 도시에 주인공 나가 표류한다. 2부는 그 도시에서 깨어나 현실 세계로 돌아온 나가 후쿠시마현 어느 작은 도서관에서 나의 그림자를 만나게 되며, 3부에서는 나의 그림자인 옐로 서브마린 소년과 내가 그 도시에서 꿈 읽은 이로 합일되어 살다, 결국 나는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1부의 내용은 두 개의 스토리 라인으로 나뉜다. 하나는 현실 세계의 이야기다. 16 세 소년 '나'와 15세 소녀 '너'는 운명처럼 만나 사랑을 한다. 너는 자신은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라고 이야기하며, 어느 도시에 도서관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풋풋하지만 강렬한 첫사랑도 잠시 '너'는 갑자기 떠나고 '나는 다 네 것이야'라는 말을 남기는 동시에 종적을 감춘다. '나'는 '너'를 잊지 못한다. 대학 진학과 함께 고향을 떠나 도쿄에서 지내고, 졸업하고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너'와의 이별이 방해물이 되어 다른 여자와의 연애도 줄곧 실패로 끝났다. 마음속에 간직한 너라는 존재 때문에 '나'는 마흔이 넘도록 독신에 머문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너'가 말한 상상의 도시 혹은 꿈속의 이야기다. '나'는 그림자를 버리며 15살 '너'를 만나기 위해 도서관에서 '꿈 읽는 이'가 된다. '너'는 16살 그대로이지만 중년이 된 '나'를 기억 못 한다. 보관된 꿈을 읽는 일을 하며, '너'에게 저 너머 세상에서 만났었다 말하지만, '너'는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마침내, '나'는 떨어져 죽어가는 그림자와 함께 저 건너 세상으로 진입할 수 있는 웅덩이를 통해 이 도시를 떠나려 한다. 도시는 죽지 않고 살아있는 유기체다. 도시를 둘러싼 높고 강건한 벽은 내가 품고 있는 이성 만큼이나 단단하다. 동시에 내가 아니라 부정하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말랑해진다. 벽은 가변적인 존재다. 탈출의 마지막 순간, 오랜 동반자이자 분신인 그림자만 원래의 세계로 보내고, '나'는 이 도시에 남기로 한다.
2부는 현실 세계의 중년의 남성으로 돌아온 내가 옐로 서브마린 소년으로 현현한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이야기다. 꿈에서 깨어난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쉬기로 한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생생한 꿈을 꾸고 나서, 현실에 세계에서도 도서관에 일하기로 한다. 전 직장 동료 오키의 도움으로 후쿠시마 작은 마을의 도서관에 취직한다. 전 관장인 노인 고야스는 베레모를 쓰고 랩스커트를 입은 다소 파격적인 모습이지만, 친절하게 도서관의 일을 나에게 설명한다. 직원 4명의 작은 도서관에서 실질적인 단 1명의 정직원 소에다 씨의 도움을 받아 도서관 운영인 순조로운데. 어느 날 고야스는 겨울 추위를 피할 수 있다며 도서관 내 숨겨진 반지하에 구식 난로가 있는 작은방으로 인도하고, 마침내 그 자신이 그림자가 없는 유령임을 밝힌다. 나와 같이 유일하게 고야스의 유령을 볼 수 있는 소에다를 통해 고야스의 지난 생애를 듣는다. 부유한 양조장의 4대 후손이지만 가업과 전혀 상관없는 문학도로 도쿄에서 살아가지만, 부친의 쓰러지면서 후쿠시마 고향으로 돌아와 양조 사업을 했다는 것. 그러다 10 살 연하의 여인은 만나 사랑하게 되고, 드디어 고향에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아이도 낳지만, 트럭 사고로 아들을 잃고, 이를 상심한 부인도 한순간에 읽게 되었다는 것. 고야스는 이후 상심을 타인을 위해 도서관을 짓는 것으로 승화 시켰다.
어느 날, 내가 운영하는 도서관에 나타난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소년이 등장한다. 무엇이든지 한번 만 들으면 기억하는 이 소년은 어느 날 내가 고야스 씨의 무덤을 방문했을 때 발견된다. 도서관을 줄곧 방문하던 이 소년이 어느 날 '나'에게 건네준 것은 다름 아닌 '너'와의 추억이 깃든 오래 전 그 도시의 지도다. 한편 '나'는 마을의 이혼녀 커피숍 주인에게 호감을 갖게 되면서, 그녀와 식사를 하게 된다. 서로의 관심을 확인한 날, 커피숍 주인은 다른 것은 다 해줄 수 있는데 관계 만은 할 수 없다 말하게 된다. 그녀의 이말은 오래 전 기억을 떠올리는 매개가 된다. 모든 걸 다 줄 수 있지만 한동안 기다려 줘야 한다는 말. '나'는 그말을 듣고 세월이 흘러 16 살 그때는 이해를 못했지만 이제는 이해하게 되었다고 독백한다. 한편, 옐로 서브마린 소년은 나에게 그 도시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소년은 마을에서 홀연히 사라진다. 나는 꿈속에서 인형으로 분한 그 소년을 만난다.
마지막 3부는 다시 그 도시에서 만난 옐로 서브마린 소년과 내가 조우한다. 내가 꿈 읽는 이로 살아왔던 것처럼, 소년은 스스로 꿈 읽는 이가 되길 원하며 '나'와 합체하길 희망한다. 결국 '나'와 같은 존재가 이 서브마린 소년이었던 셈이다. 시간이 멈춰진 그 도시에서 꿈 읽는 이로 살아가던 어느 날, '나'는 결국 현실 세계로 돌아가려 한다. 돌아가려 하는 것을 일깨워준 존재는 다름아닌 소년이다. 마치 그 옛날 나의 그림자를 현실 세계로 밀어낸 것과 같이 소년은 이제 나를 현실 세계로 보내려 한다. 그러나 슬퍼할 필요는 없다. 소년은 나이고, 나는 소년이기에 그 도시와 현실 세계 모두에서 나는 모두 존재하는 셈이니까. 그리고, 나는 도서관에 그 소녀와 마지막 작별을 한다.
다소 난해하고 몽환적인 이야기의 실체는 결국 나를 찾는 이야기다. 작가는 이 소설을 썼을 때가 30대였는데 이제는 70대가 되었다고 말한다. 40년이 지났다. 하루키 소설의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이루지 못한 10대 첫사랑 상대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모티브가 되는 듯하다가 결론적으로 나를 찾는 여행으로 결말 지어지는 것은 어쩌면 세월이 흘려 나의 사랑의 과녁을 타인(소녀, 너)에서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보를 따르는 듯하다. 물리적인 시간이나 정신적인 시간으로도 40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면서 말이다.
1부에 등장하는 두 개의 스토리 라인은 비단 이 소설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키의 2002년 작 『해변의 카프카』에서도 두 개의 스토리 라인이 - 15세 가출 소년 다무라와 퇴역 군인 노인 다카다의 이야기 - 병렬 진행되는 방식을 차용했다. 두 개의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될지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흥미와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런 방식은, 2부의 중년의 주인공 '나'를 더욱더 잘 이해시켜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기본적인 허구인 소설에서 주인공에 대한 배경을 입체적으로 제시하는 방법을 통해, 독자는 스토리와 인물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청소년 기에 애틋한 사랑을 간직한 주인공 '나'는 외딴 도호쿠 지방 후쿠시마현의 한 작은 마을의 도서관장으로 취업하게 되기까지 무리 없음을 느끼지 않는 것은 두 개의 스토리 라인을 통해 이미 '나'의 선택을 인정하고 예상한 독자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간이 정지된 도시에서 미완성의 꿈을 읽는 이가 된 '나'는 오랜 과거의 그녀 '너'에 매몰되어 있다. 현실이 꿈이 되고, 꿈이 현실이 된 복잡한 감정을 읽어 내는 존재. 이미 그 자체로 현실과 꿈의 경계는 모호하고 '불확실'하다. 사실 1부의 스토리에서 상상 속에 도시와 현실 속의 '나'의 기억은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동일한 기억이며, 2부의 발전 단계를 거쳐 3부에서 둘이 하나임을 인정하고 믿으라는 메시지를 또 다른 나의 분신이며 그림자인 옐로 서브마린 소년의 입을 통해서 확인하는 것이다. 대미를 장식하고 모든 갈등의 종지부를 찍은 옐로 서브마린 소년이야말로 이 소설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인 셈이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 소설은 결국 나와의 갈등이며 해결이란 느낌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명저 『꿈의 해석』에서는 이성의 힘으로 누르는 초자아와 나의 본성인 이드, 그리고 그 속에서 부유하는 자아의 존재를 명확하게 설명했다. 정신분석학을 하나의 과학의 경지로 올린 이 대명저의 내용에서는 결국 나라는 존재는 초자아, 자아, 이드로 나눠져있다고 설명한다. 이 소설에서 차용한 초자아는 단단한 성벽이며, 동시에 그 성벽을 지키는 문지기다. 나의 존재인 이드가 본능적으로 느끼고 행하고 싶은 것들은 단단하고 매끈한 달걀 모양의 꿈으로 묶여있다. 미완성의 상징인 이 달걀 모양 나의 꿈들은 높다란 벽으로 쌓여있는 그 도시의 도서관에 깊이 보관되어 있다. 나의 마음의 바닥에 무의식중에 남겨있는 나도 모르는 존재로 말이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는 나의 꿈은 - 사랑 혹은 기억 -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나의 뇌 속 어딘가에 존재한다. 뇌의 희미하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나의 꿈은 쇠락하고 무채색인 도시로 상징된다. 윤리라는 단단한 벽은 어렵게 통과해 빠져나가도 또 벽이 존재한다. 사회관계 속의 이성과 윤리의 단단한 갑옷을 이중 삼중 잠귀어 있는 꼴이다. 이때 나의 분신인 그림자가 등장한다. 그림자는 말한다. 나갈 수 있다고 믿으면 나가게 된다고. 주인공 '나'는 자기 자신을 믿게 되고 완벽하진 않지만 첫 번째 벽을 통과한다. 존재의 믿음의 강력함을 스스로 깨닫는 과정을 형상화 한 것이다.
그러나, 탈출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나의 꿈이 있는 이 도시를 탈출하길 거부하고 나의 분신인 그림자만 현실의 세계로 보낸다. 도시는 가슴에 묻어둬야 하는 상상들의 세계이며, 주인공 나와 너(그녀)가 함께 만들었던 상상 속의 창조물이기에 '나'는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이성의 초자아의 벽에 숨겨진 소중한 나만의 세계에 멈춰 서려 하는 것이다.
또 다른 나를 도시에 남겨둔 채, 현실 세계로 돌아온 나(결국엔 그림자)는 도시의 강렬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곧 중년의 '나'가 직면하는 현실은 나를 위한 현실이 아닌 세계라 단정하고, 자기 자신을 사념으로 단단하게 뭉친 쇠공으로 느끼게 된다. 결국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꿈속에 그 도시에서처럼 최대한 유사하게 현실에서도 도서관에 일하고 싶다고 느끼게 되는 것인데, 나중에 이 대목을 보면 초자아와 이드 속에서 갈등하는 자아가 결국 이드를 따라가고자 하는 욕망이 끊기지 않음을 말해준다.
하루키의 소설에서 그가 제시한 상징을 파헤쳐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2부에서 후쿠시마 작은 마을의 도서관장 고야스가 그림자 없는 인간임을 밝히며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는 장면에서는 그림자는 죽은 자의 상징이 된다. 그러나, 앞서 1부에서 도시를 떠나라고 재촉하고 용기를 주는 상대는 살아 움직이고 숨을 쉬는 또 다른 나의 분신을 의미한다. 또한 한없이 가벼운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존재로서의 그림자는 유한하고 덧없이 짧은 인생을 설명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그림자가 중의적으로 쓰인 셈이다.
2부 속 중년인 '나'가 맞이하게 되는 세계의 현장감을 불러오는 장치는 등장인물의 실제적인 이름이다. 1부의 나의 기억 속의 세계에서는 나와 너만으로 표현되지 등장하는 모든 것에 이름이 없지만, 2부에 들어서자마자 도서관을 추천한 전 직장 동료 오키, 도서관 직원 소에다, 전 도서관장 고야스 씨 등 실명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름 없는 주인공들만 등장하다 실명이 등장하니 마치 꿈속을 헤매다 현실로 뚝 떨어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오는 대단한 장치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오래된 미완의 꿈이란 무엇일까? 첫사랑을 기억하는 욕망일 수도, 이루지 못한 희망을 상징할 수도 있다. 또는 오래전 겪었던 마음의 상처일 수도 있다. 누구를 한없이 사랑했지만 원치 않은 이별은 대단한 상처다. 리즈 브루보의 『모든 상처는 흔적을 남긴다』에서 말하듯 모든 기억(꿈)은 흔적을 남긴다. 상처의 모습은 커프숍 여주인의 단단한 속옷에서도, 고야스 씨의 베레모와 랩스커트에서도 느껴진다. 그러나, 결국 이런 상처들은 그 상처들을 그대로 인정하게 되면서 치유된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결국 나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으로 대단원을 내린다 할 수 있다. 나의 분신인 옐로 서브마린 소년의 입을 통해서, 자신의 분신의 존재를 그대로 믿을 때, 꿈(상처)를 읽으면서도 현실에서도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도록 갈등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끝맺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를 믿고, 나의 의식에 존재하는 초자아와 자아와 이드를 모두 인정하고 믿게 될 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시대를 뛰어넘는 성찰의 기록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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