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사피엔스가 다른 모든 동물들보다 경쟁에서 우위를 보이고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 개인의 합리성이 아니라 대규모로 함께 사고할 수 있는 전례 없는 능력 덕분이었다.
대부분의 우리 견해는 합리성 보다 공동체의 집단사고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가 이런 견해를 고수 하는 것도 집단을 향한 충성심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너무 많은 사실을 싫어한다. 게다가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지는 것은 더더욱 싫어한다.
진심으로 진실을 바란다면 권력의 블랙홀을 피하고 중심에서 떨어진 주변부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며 오랜 시간을 허비 할 수 있어야 한다.
천 명의 사람이 조작된 이야기를 한 달 동안 믿으면 그것은 가짜 뉴스다. 반면에 10억 명의 사람들이 천 년 동안 믿으면 그것은 종교다.
인간은 진실보다는 힘을 선호한다. 세계를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 통제하려는데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
인간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 협력을 잘할 수 있기 때문이고, 협력을 잘할 수 있는 비결은 허구를 믿기 때문이다.
클릭 한 번으로 최신 뉴스를 접할 수 있지만, 상충되는 설명이 너무나 많아 무엇을 믿어야 할 지 알기가 어렵다. 정치나 과학만해도 너무 복잡하다. 그러니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재미있는 고양이 동영상, 유명인 가십이 되기 일쑤다.
늘 낯선 것이 새로운 기본이 되면서, 개인의 과거 경험은 물론 인류 전체가 겪은 지난 경험까지 미래의 안내자로 삼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앞으로는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처해야 한다.
앞으로 생명기술과 기계 학습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심층 감정과 욕망까지 조작하기가 쉬워질 것이고, 그만큼 우리의 마음을 따르는 일도 점점 위험해질 것이다.
거의 모든 경우, 사람들이 인생의 의미를 물을 때는 어떤 이야기를 들으리라 기대한다. 호모사피엔스는 이야기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의 결정적인 법칙은 이야기가 청중의 지평을 넘어 확장되기만 하면 최종 범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10억년 된 신을 위해서나 천 년 된 민족을 위해서나 똑같이 살인적인 광신주의를 내보일 수 있다.
일단 이야기 위에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의 전 체계가 구축되고 나면, 이야기를 의심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무너지면 개인적, 사회적 대격변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