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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5.0
  • 조회 396
  • 작성일 2023-10-30
  • 작성자 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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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저자:레너미터)

중국에서 가장 껄끄러운 국가는 여전히 일본이다. 중일전쟁은 양국 갈등의 중심에 있다.심지어 1945년 이후에 태어난 중국의 젋은 세대도 중국을 침량했든 일본을 증오하도록 민족주의를 부추긴다. 중일전쟁에서 중국인은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우리 조국이 부유하지도 부강하지도 않았을 때, 우리는 만주를 상실했고 상하이에서 후되했으며, 그 피는 난징으로 흘러 들어갔다. 일본의 전쟁 기록은 중국에서 여전히 강렬한 민족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1937년부터 1945년까지 벌어진 중일전쟁은 일본군을 중국에 묶어두면서 미국과 영국, 소련 연합군이 독일과 전쟁에 승리하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서구는 중국의 기여를 과소평가했다. 2차 세계대전 종식 후 마오쩌둥이 중국 권력을 잡으면서 중일전쟁의 중요성은 중국 내에서도 의도적으로 평가절하됐다. 마오 정권의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중일 전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장제스의 성과를 깎아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 역시 중일 전쟁에 참여하긴 했지만 중국 서북부의 농촌지대를 전전하는 소규모 무리를 이끌었을 뿐이다. 장제스가 치열한 전투를 거듭하는 동안 마오쩌둥은 통제 지역을 점점 넓혀 갔고, 장제스는 작은 섬 대만으로 내몰리면서 부피하고 무능력한 지도자라는 이미지에 갇혀 버렸다.

전쟁 과정에서 치른 중국인들의 엄청난 희생 역시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중일전쟁으로 인한 중국 측 피해의 공식 집계는 없지만, 저자는 8년 동안 약 1,500만 명이 죽었다고 추산한다. 베이징과 상하이, 난징, 우한, 충칭 등 주요 도시의 근대적 성과물이 대부분 파괴됐다.

중일 전쟁은 1937년 7월 7일 일본의 중국 대륙 침략으로 시작되어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 사이의 대규모 전쟁이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중국 항일 전쟁, 일본에서는 일중 전쟁혹은 지나 사변, 서구권에서는 제2차 중일 전쟁 이라고 부른다. 중일 전쟁은 20세기 아시아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다.
1931년 이후로 두 나라 사이에 간헐적으로 교전이 있었으나, 전면전은 1937년 이후로 시작되었으며, 일본의 연합국에 대한 항복과 함께 1945년 9월 2일 종료되었다. 전쟁은 수십 년간 계속되어 온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의 결과였으며, 원료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을 정치·군사적으로 지배하려는 속셈에서 비롯되었다. 중국의 민족주의와 민족자결주의는 전쟁을 중국의 승리로 이끌었다. 1937년 이전에는 양쪽이 다양한 이유로 소규모, 국지적 전투를 벌였다. 1931년 9월 18일 일본은 만주 사변을 일으켰고, 그 연장에서 일어난 1937년의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두 나라 간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일제는 중일 전쟁이 쉽게 끝날 줄 알았다. 청일 전쟁에서 쉽게 이겼고 이제 아시아의 최강국으로 올라섰다는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중국도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중국 국민당 정부는 군벌 세력과의 싸움에서 실전 경험을 쌓았고 미국과 독일로부터 많은 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전쟁은 장기화로 이어졌다.
중국은 일본이 점령하기에는 매우 큰 나라였다. 일본은 주요 도시를 점령할 수 있었지만 그 밖에 군소도시들까지 점령할 수는 없었다. 일본은 국민당 정부의 수도인 난징을 점령하고 역사상 있을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다. ‘난징 대학살’이라고 불리는 이 만행으로 인해 일제는 전세계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일본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중국과의 전쟁이 이어졌다.


1937년부터 1941년까지의 기간에는 중국이 단독으로 일본에 맞섰으며 진주만 공격 후 중일 전쟁은 더 큰 규모의 제2차 세계 대전에 포함되었다. 이후 일본군의 전력은 급속히 쇠퇴했고 1944년 즈음에 일본은 이른바 '대륙타통작전'을 개시하면서 반격을 꾀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고, 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가 연합군에게 발표한 차라리 무조건 투항 및 전면 항복 선언과 아울러 같은 해 9월 2일 연합국에 대한 일본의 항복 문서 조인식을 끝으로 중일전쟁 역시 종결되었다. 사상자는 2000만명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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