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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5.0
  • 조회 402
  • 작성일 2023-10-18
  • 작성자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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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으로 자신의 초기 중편 “송두리째” 를 개작한 것이다. 이야기의 주제가 어려웠지만 읽는데는 무리가 없어보인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아직 그 무언가를 충분히 써낼 만큼의 필력을 갖추지 못”해 “발표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는 작가의 말마따나 당시 문예지 발표 뒤 같은 제목의 단행본이 되지 못한 유일한 작품이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직전 해인 2019년 2월 프랑스 팬들과 만나 “원래 소설은 사랑에 관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40년을 써왔는데도 질리지 않으니 대단한 주제 아닌가” 되물었다. 그리고 맞닥뜨린 2020년 초 코로나 팬데믹, 이 중편을 전면 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소설엔 두 세계인 현실세계와 8m 높이의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존재한다. 인간은 제 ‘그림자’를 떼어내야 벽 안의 도시로 들어갈 수 있고, 가면 바깥 현실로 나오기 어렵다. 현실세계의 기억을 망각하게 되고, 꿈을 꿀 수도 없다. 그렇다고 누구든 그 도시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작가는 그림자와 꿈을 기표로 두 세계를 맞세우고 횡단하며 독자가 추구할 삶의 가치와 형질을 묻는다. 의지로써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운명처럼 선택되어지는 것들 사이, 소설 속 수도 없이 반복되는 낱말로서 그림자와 꿈은 한 발음에 읽힐 테지만, 뜻은 저마다 서서히 또 수없이 달라질 법하다.

현실세계에서 고등학교 2학년이던 ‘나’(남)는 한살 어린 ‘너’(여)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하루키의 전형처럼, ‘너’는 ‘나’에게 “네 것이 되고 싶어”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진짜’는 이 도시가 아닌 “높은 벽에 둘러싸인 도시”에 있다고 한다. ‘너’는 진짜 ‘너’의 대역이라는 것이다. ‘너’에게 꿈이 더 각별한 이유일까. “꿈이란 현실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과 거의 동급이었고, 간단히 잊히거나 지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꿈은 너에게 많은 것을 전달해주는, 귀중한 마음의 수원 같은 것이었다.” ‘너’는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한 것”까지 가르쳐주는 꿈들에 대해, 자신의 본체가 살고 있다는 도시에 관해 ‘나’에게 말해준다. 1년 뒤 “본체와 떨어진 그림자”라서 생명력을 잃고 있다는 마지막 편지와 함께 종적을 감추기 전까지.

첫사랑을 열망하며 벽 안의 세계로 들어간 ‘나’는 진짜 ‘너’를 만난다. 진심으로 원하면 벽 안 도시로 들어갈 수 있고, 가면 ‘나’의 자리가 있다는 ‘너’의 말 그대로다. 도서관이었다. 책 대신 서고 가득한 ‘오래된 꿈’을 ‘너’가 추려주면 ‘나’는 두세 편의 꿈을 읽는다. 하루 일과다. 다만, 늙지 않는 ‘너’는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왜 이 역할인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둘은 알지 못한다.

‘나’의 그림자 또한 자아가 있다. 그림자는 벽 안 도시와 현실세계의 경계에 머물러야 한다. 본체를 그리워하며 죽어간다. “그림자 같은 건 실로 아무짝도 쓸모가 없”질 않았던가. 하지만 그림자는 ‘나’에게 자신의 쓸모를 강조하며 탈출을 제안한다, 묻는다. “벽 바깥으로 쫓겨난 것이 본체고, 여기 남은 이들이야말로 그림자가 아”니냐고. “오래된 꿈이란 …벽 바깥으로 추방당한 본체가 남겨놓은 마음의 잔향 같은 것 아”니냐고.

이 말대로라면 벽 안 도시는 추억이 없되 고독이 없는 곳, 상실하되 상처가 없는 곳, 갈망이 없어 갈증이 없는 곳이다. 때문에 잔향처럼 남은 욕망, 한 가닥 생동하는 감정은 평정한 벽 안 도시에 “역병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오래된 꿈’을 처분해야 하는 일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림자와 탈출하여 현실세계를 감당하는 ‘나’가 43년 전 초기 중편의 결말이라면, 장편에선 탈출을 시도하다 막판 남기로 결정한다. ‘너’가 부재한 세계는 ‘너’의 마음이 부재한 도시보다 더 고독하고 어둡기 때문이다.

하지만 2부에서 벽 안 도시에 남은 줄 알았던 ‘나’는 현실세계에서 깨어난다. 중년의 ‘나’는 가족을 잃은 자(죽은 고야스 도서관장), 질서에서 배제된 채 자립하지 못한 자(서번트 증후군으로 도서관에서 광적으로 책만 읽는 옐로 서브마린 소년) 등 말하자면 그림자도 꿈도 없는 이들을 만난다. 나는 고야스 관장의 비밀을 나누고 그를 추모하며, 소년과 공감하여 벽 안 도시라는 현실 바깥을 소년의 마음속에 “세워주”고 뿌리내리게 돕는다.

그리고 소년은 현실에서 사라질지언정, 벽 안 도시로 들어가 “오래된 꿈”을 읽는 자가 되겠다고 말한다.
두 세계는 분리되었으나 외견과 달리 길항만 하지 않는다. 상실뿐인 세계와 평정뿐인 세계가 이상일 수 없다는 듯 작가는 ‘나’의 말을 빌려 쓴다. “‘꿈 읽는 이’로서 나의 직무는 그들의 마음을 열어 자유롭게 자기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것이지, 그 내용을 정확히 독해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과 평정 대신 꿈을 망실한 채 파멸과 무감각으로 급락하는 당대에 들려주는 말이자, 이 세계를 함께 살아가는 소설가 하루키의 작가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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