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에 따라서 정부는 정책을 수립하고 공공기관을 포함, 민간기업은 사업을 계획한다. 가계의 소비와 투자, 저축도 금리의 영향을 받는다. 금리에 부합하지 않는 정책과 사업, 투자는 수많은 기업과 가계를 위기에 빠뜨린다. 우리는 경제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금리를 배워야 하지만 기회가 부족했다. 금리는 정책 결정권자와 경제학자, 금융인들이 수많은 역사적 성공과 실패를 쌓으며 연구해온 결과물이기 때문에 맥락을 제대로 다루면서 공부해야 한다. 호황에는 금리를 높이고 불황에는 금리를 낮춘다는 단순한 상식만으로는 진짜 금리를 알 수 없다.
다만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너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어서 요약된 느낌은 없는 듯하지만,
금리의 역사적 맥락, 기록 등 자세한 금리에 대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책 내용 중 중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요약합니다. 그 중에서,
"볼커의 긴축 정책이 미국 경제의 목을 죄며 실업률을 두 자릿수까지 몰고 가자 대중의 분노가 들끓었다. 연준의 에클스 빌딩 사무실에 무장 괴한이 침입해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위원들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한 뒤 볼커는 개인 경호를 받기 시작했다. 분노한 건설업자들은 볼커에게 나무 판자를 잘라 보냈다(그중 하나에는 ‘금리 인하, 통화 공급 축소’라는 건전한 조언도 담겨 있었다). 성난 자동차 딜러들은 팔리지 않은 차량 열쇠들을 관에 가득 채워 보냈다. 연준은 ‘수백만 개의 소기업을 냉혹하게 살해하고’ ‘주택 소유라는 아메리칸드림’을 죽였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의장은 나중에 고백한 것처럼 “돛대에 묶여 있었다”. 모두가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볼커의 말대로 그 목표에 너무 빨리 도달하면 저금리와 그에 수반하는 폐해를 억제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린스펀의 연준은 공식적 목표로 인플레이션을 타기팅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접근법을 추구했다. 이렇게 인플레이션 타기팅은 전 세계적인 목표로 채택되었지만, 금융위기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2008년 이후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2012년 초 연준이 공식적으로 인플레이션 타기팅을 목표로 채택하며 버냉키는 자신의 오랜 야망을 이루었다. 일본 은행도 곧 그 뒤를 따랐다. 주요 선진국의 중앙은행들은 같은 목표를 설정한 뒤 곧 같은 숫자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무슨 부적 같은 2%가 그 수치였다. 구로다 총재는 이를 ‘글로벌 표준’이라고까지 불렀다. 그 수치는 유럽중앙은행 정관에도 기록되었다. 중앙은행 총재들은 마치 이 수치를 반복하기만 해도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양 끊임없이 되뇌었다.
영국에서는 ‘주택 위기’를 주택 건설 부족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300년 역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를 유지하기로 한 잉글랜드 은행의 결정은 주택 구매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영국 주택 가격은 가계 소득에 비해서는 매우 높았지만, 주택담보대출 비용의 관점에서는 이보다 더 쌀 수 없을 정도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주택 자산 증가는 대체로 ‘토지 위에 놓인 자산’보다는 토지 자체의 가치 상승에서 비롯되었다. 마이너스 금리로 인해 유럽 주택 시장에는 빨리 사서 빨리 되팔기가 성행했다. 취리히에서는 2016년 임대료 대비 주택 가격 배율이 3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당시 스웨덴 부동산은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었다. 가계 부채가 기록적으로 상승했음에도 스웨덴의 모기지 상환은 사상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2010년, 최초로 기록된 비트코인 거래는 플로리다에 살던 한 배고픈 컴퓨터광이 피자 몇 판을 1만 비트코인에 산 것이었다. 2017년 말 비트코인 시장가격으로 환산하면 무려 2억 달러에 가까운 돈이었다. 당시 그랜트 스펜서 뉴질랜드 중앙은행 총재 권한대행은 비트코인이 ‘고전적인 거품’을 닮았다고 했는데, 이는 오히려 절제된 표현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금리에 따라 역사적으로 어떻게 흘러왔는지 쉽게 알 수 있는 단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