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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숲(양장본)
5.0
  • 조회 396
  • 작성일 2023-11-29
  • 작성자 이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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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도입부에서 주인공 와타나베가 애인 나오코와 함께 숲길을 걸으며 나누었던 대화를 회상하는데, 나오코는 숲길을 벗어나는 순간 어디에 존재할지 모르는 '깊고 적막한 우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어디서든 잘 웃으며 생활하는 이 여자아이는 그간의 삶에서 예고없이 다가오는 상실을 경험하며, 삶의 여러 모순들을 끝내 감내하지 못하게 된다. 반면 주인공 와타나베는 나오코와 달리 삶의 쓰라린 아이러니를 체득해가고, 그러기로 결심한다.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말로 해버리면 평범하지만 그때 나는 그것을 말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공기 덩어리로 몸속에서 느꼈다.

(pg. 48)


어이, 기즈키, 나는 생각했다. 너하고는 달리 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고, 그것도 제대로 살기로 했거든.

(...) 나는 지금보다 더 강해질 거야. 그리고 성숙할 거야. 어른이 되는 거지. 그래야만 하니까.

(...) 난 책임이란 것을 느껴. 그리고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 대가를 제대로 치러야만 해.

(pg. 415)


폭격과 전쟁의 시대를 지나 태어나 기존의 질서와 정서가 끊임없이 부정되고 시험받으며,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는 세대가 20대를 맞이했다. 그것이 이 소설의 배경이 된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불완전함과 모순, 상실의 정서가 주를 이룬다. 동경할 만한 시대는 기억 저편에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력해보인다. 대학가에서는 혁명과 타도를 부르짖지만 구호뿐인 혁명으로 그마저도 위안삼을 수 없는 80년대의 일본 청년은 그렇게 스스로 고독해지는 길을 택한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개인의 경험과 기억에 초점을 맞춘다. 역사 교과서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거시적인 사건과 그 시대를 살아간 개인의 기억 간에는 오직 미약한 연결만 존재할 뿐, 미약한 개인들이 기대하고 기대받는 수준은 결코 정치적인 수준을 상회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미도리가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관동 대지진이 일어나던 날 아버지로부터 건네들은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은' 이야기를 전한다.

"아버지의 추억은 다 그런 식이야. 조금도 드라마틱하지 않아. 어디 한군데가 비틀렸어. 삐거덕. 이야기를 듣노라면 오륙십 년 동안 일본에서는 별다른 사건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2.26 사건이나 태평양 전쟁도, 듣고 보니 일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식이야. 좀 이상하지?"

(pg. 330)


물론 모두가 미도리의 아버지처럼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는 건 아닐 테다. 그 대척점에서, 최고의 지위를 누리며 보장된 앞날을 내다보는 기숙사 선배 나가사와같은 인물도 존재했다. 두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랐다. 그리고 관찰자인 주인공만이 서로가 보지 못하는 양면을 인지했기에, 주인공과 내가 느낀 인상은 '파편과 연민, 묘한 뒤틀림'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중 드러내놓고 행복한 엔딩을 맞이한 인물은 없다. 그저 다른 국면으로 전환되어 주인공 곁을 떠나가거나, 다시 주인공 곁으로 돌아왔다 다시 돌아갈 뿐. 그렇기에 이 소설의 결말은 더없이 사실적이면서도 쓸쓸하다.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연대는 어떤 위안도 줄 수 없다. 그저 삶의 모순과 공백을 스스로 메워가며 다음으로 넘어갈 뿐인 것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이 이러한 긴 수기를 적어갔던 것처럼, 우리가 지난 상실에 대해 그저 오랜 시간에 걸쳐 기억하고 추모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생의 고통과 의지를 함께 부여받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위로라고, 장편소설을 마무리하며 작가 하루키가 전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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