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으로 일본에서 살아간다는건 많은 차별과 무시를 감내해내야하고, 어떨땐 나의 출신을 숨겨야 하기도 했다.
노아는 그런 현실에서 완전한 일본인이 되고자했고
가족과 인연을 끊으며 철저하게 일본인으로 살았다.
재일교포 2세, 3세들은 온전히 그 나라에서 태어나 일본인 학교를 다니며 일본어에 더 능숙하고 일본사회에 철저하게 동화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이방인으로 취급받으며 차별 받았다.
이런 차별을 받지않기 위해 가능한 한 일본인처럼 살아왔고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고 심지어 본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다.
일본에서의 한국인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과 핍박으로 인해 한국인들은 정상적인 일자리를 갖기 어려웠기에
야쿠자나 파친코사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와세다를 다녔던 수재 노아도 동생 모자수와 마찬가지로 결국엔 파친코 업장에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 역시 재일교포의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결국은 파친고에 뛰어들게 된다.
이러한 차별은 지금이라고해서 없는 것이 아니다.
최근까지도 혐한 시위가 일본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도쿄의 이케부쿠로라는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에서 혐한 시위가 종종 일어나곤 했다.
아직도 일본에서는 간토 대지진 때처럼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혐한을 부추기고 있다.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끊임없이 한국인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 이상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 문제는 쉽사리 없어지지 않을것이다.
완벽한 일본인이 되지 못한 노아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왜그런 가슴아픈 선택을 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그 상황을 겪어보지 못한 내가 감히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까?
살아오는 내내 자신의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사회의 편견와 차별을 이겨내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쳤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일본에서 거주했던 나의 1년은 외국인으로서의 삶이라 그리 큰 차별과 편견을 경험하진 않았다.
하지만 삶의 터전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