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의 저자 미셸 자우너는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를 둔 혼혈이다. 사실 난 잘 몰랐다. 이 책이 그리 감동을 주었는지, 얼마전 TV에서 어떤 교수가 나와서 말한 것을 내 아내와 같이 보고 있는 와중에 이 책에 대해 호기심이 내 마을을 일으켰다.
좋은 기회가 되어 당연히 이 책이 우선순위가 되었다. 이 책은 혼혈이라는 정체성 혼란, 부모 세대와의 문화 차이, 국적 불문 사춘기의 모녀 갈등 등을 아주 솔직하게 그려냈다. 지나치게 솔직해 픽션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과거의 찰나를 사진으로 찍어놓은 것처럼 디테일한 묘사와 아버지의 성매매 과거까지 낱낱이 밝혀버리는 솔직함이 이 책의 매력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미셸은 여느 혼혈과 달리 한국 음식, 문화에 온전히 흡수돼 있었다. 미셸의 엄마는 H마트에서 공수해 온 식자재로 매번 뚝배기 찌개부터 온갖 조림류 반찬 등 한국 식탁을 세팅했다. 이 책을 통해 미셀은 한국의 식문화, 사실 나는 사적 공간을 침해하는 찌개 문화를 지양한다.
특히 인상깊었던 부분은 무의식적으로 무분별하게 사용했던 "예쁘다"는 말의 함축적 의미가 외모 지상과 도덕적 족쇄였다니,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대목이다.
작자 미셸은 엄마가 은미 이모와 마찬가지로 암 진단을 받게 되자, 피터와의 결혼을 서둘렀다. 은미 이모의 죽음에서 엄마가 가장 크게 배운 점은 항암치료를 스물네 차례나 받아도 죽는다는 사실이었다. 딸은 엄마의 팔자를 닮는다는 말이 있어서 미셸의 성급한 결혼 전개에 읽는 내내 가슴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피터는 미셸의 부친처럼 아시아여성 성애나 마약 같은 고약한 취향을 갖고 있진 않은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미셸은 피터가 좋아하는 걸 먹을 때 눈을 꼭 감는 모습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미셸의 결혼식 날, 엄마의 인생 단계마다 새롭게 만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미셀의 결론을 축하해주었다. 엄마의 병세가 악화돼 결혼식을 치르지 못할까봐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이후 불행은 어김없이 다가왔고 엄마의 죽음 이후 미셸은 또 다시 정체성 혼란에 빠진다.
한국인이라는 한 줄기 끈마저 끊어진 셈이니 말이다. 그 때 그녀의 손을 잡아 준 망치 여사의 존재감으로 엄마의 그리움을 한국 음식을 통해 위로받고 치유받는다. 미셸은 망치 여사의 잣죽, 김치 레시피를 재현해가며 엄마를 깊숙이 담는다. 망치 여사는 온갖 비법을 한 단계 한 단계 전수해 준다. 마치 어느 때고 의지할 수 있는 디지털 후견인처럼 내가 몰랐던 지식, 의당 내 것이어야 할 지식을 알려주는 것처럼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행복 지수가 높다고 한다. 하루에 3번 이상은 행복감을 맛으로 보니까 그런게 아닐까 싶다.
한편 고개를 돌려버리는 편이 더 쉬웠을 때조차 두 팔 벌려 맞아준 한국의 유일한 핏줄, 나미 이모에게 돌리는 감사의 인사로 『H마트에서 울다』 작가 미셀의 스토리도 마무리를 한다. 미셸은 이렇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았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한국어 번역본에서라도 저자명이 엄마의 미들 네임 '정미'를 딴 미셸 정미 자우너였다면 한국 독자들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현재의 미셀은 엄마가 그토록 반대하던 뮤지션의 길을 가고 있다. 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별다른 성과가 없었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뒤 모든 일이 마법처럼 풀리고 있다고 한다. 미셸의 앞날에 축복과 성공이 있기를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