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이것이 기원전 6세기 파르메니데스가 제기했던 문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세상은 빛-어둠, 두꺼운 것-얇은 것, 뜨거운 것-찬 것, 존재-비존재와 같은 반대되는 것의 쌍으로 양분되어 있다. 그는 이 모순의 한쪽 극단은 긍정적이고 다른 극단은 부정적이라 생각했다. 극단적 이분법이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안이하게 보일 수도 있다. 단 이 경우는 예외다. 무엇이 긍정적인가? 묵직한 것인가? 혹은 가벼운 것인가?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답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오직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빛과 어둠, 뜨거움과 차가움, 가벼움과 무거움. 이것들의 긍정과 부정은 확실하게 단언할 수가 없다. 작가는 그 수많은 반대되는 것 중에서 무거움과 가벼움이 미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다.
미적 체험의 경우, 취향을 반영하고 주관적인 요소를 띄기에 그의 말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댈 수가 없다. 다만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에 나는 크게 공감했다.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이 쌍의 단어가 인간의 의미를 표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표현이라 느껴져서 그렇다.
인간은 언제 가벼워져야 하고 어느 때가 되면 무거워져야 하는가. 존재의 가벼움, 존재의 무거움. 그 이야기에 대한 내용을 네 명의 인물을 통해 이 작품에 담아냈다.
무거운 것이 긍정이고, 가벼운 것이 부정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말할 수 없다. 다만, 가벼움은 무거움으로 향해야 하며 무거움은 가벼움으로 나아가야 한다. 서로 다른 둘의 만남은 그렇게 영점이 맞춰져야 한다. 촛불은 흔들리는 바람에도 수직으로 서있으려 하고, 파도는 수평으로 수렴한다.
가벼움과 무거움. 이 둘도 그렇다. 그 어딘가에 수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