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인물편)
세계사에 대한 개인 나름대로의 부족한 점을 항상 느꼈다. 무엇인가 알듯하지만 큰 그림이 잘 안 그려진다. 세계사를 잘 알아야만 인생을 보다 넓고 풍부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큰 주제를 너무 쉽게 접근한 것일까? 계속 공부하고 관심을 갖고 친하게 지내야 한다. 조금 가까이 간 것 같으면 또 다시 이래저래 다른 일에 빠져 있다. 또 다시 그 자리다. 한마디로 부분적이고 역사적 의미가 큰 개별 사건에서는 윤곽을 잡고 있지만 범위가 조금만 넓어지면 퍼즐이 안 맞춰진다. 특히 이슬람, 인도, 중앙 아시아 쪽으로는 공부가 매우 약하다. 잘 알려진 부분의 역사를 계속 겉핧기만 하는 것 같다. 잘 알려진 역사에서 디테일하고 비교적 소소하지만 흥미로운 부분의 정밀도를 좀 더 올리고 나머지 역사에서는 관심도를 높여 큰 그림의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아마도 그렇게 하면 세계사의 전체적 완성도가 올라가리라 예상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세계사의 부족한 점을 다시 업그레이드 시켜봐야겠다. 벌거벗은 세계사(인물편) 책을 통해서 잘 알려진 사건보다는 소소하지만 흥미로운 부분을 밀도감 있게 파헤치고 또 다른 의미의 역사 사건인지 알아봐야겠다. 그런데 책 제목이 약간 도발적인 느낌이다. 이번 책 읽기는 약간 도발적인 자세로 접근해봐야겠다.
1. 알레산도르스
부하들은 알렉산드로스에게 "후계자를 누구로 하면 좋을까요". "크라티스토". '가장 강한 자에게" 라는 뜻입니다. '후계자의 전쟁을 '디아도 코이'라고 부릅니다. 그의 죽음 이후 가장 오랫동안 제국을 유지했던 게 이집트를 거점으로 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였던 클레오파트라가 로마의 실력자 안토니우스와 연합군을 구성하여 옥타비아누스(아우구투스 황제)와 싸운 악티움 해전에서 패배할 때까지를 헬레니즘 시대라고 합니다. 헬레니즘 시대를 열었던 인물이 바로 알렉산드로스이다.
2. 진시황제
어떤 일이든 자신의 손을 거치도록 했고 스스로 약속한 업무량을 처리하지 못하면 잠을 자지 않았다. 죽간을 저울에 달아 하루에 약 30kg의 서류를 처리했다. 백성을 위하는 마음보다는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요즘 말로 지독한 워커홀릭인 셈이다. 진시황은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뤘지만 이를 지켜내지는 못하였다. 창업은 이뤘으나 수성은 이루지 못하였다. 수성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3. 네로 황제
네로는 자신의 모든 일에 개입하는 어머니를 증오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권력이 자신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사건건 부딪치는 두 사람이 크게 다투는 원인은 여자 문제였습니다. 네로는 어머니를 죽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평생 권력을 향한 야심을 불태웠던 아그리피나는 아들 네로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 했다. 아들을 괴물로 만든 건 어머니의 욕심과 치맛바람이었습니다.
4. 창기스 칸
칭기스 칸은 군사들이 유대감을 가지고 목숨을 바쳐 싸울 수밖에 없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전투 중 한 명이 도망가면 부대원 열 명을, 열 명이 도망가면 부대원 백명을 처형한다.", "전투할 때 999명이 모두 쓰러지고 한 사람만 살아왔을 경우, 설사 그가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을 경우, 그가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다고 할지라도 그는 전우들과 같이 남아있지 못했기 때문에 처형한다. 이는 병사들의 결속력을 다지고 타국의 전장에서 죽더라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습니다. 몽골군은 체계적이고 강력한 조직이었습니다.
5. 콜럼버스
1502년에 떠난 콜럼부스 4차 항해는 그에게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어렵게 투자를 받아 4척의 배를 마련했고 지난 항해보다 적은 135명의 선원이 모였습니다. 또 핵심 지역인 이스파뇰라섬에 정박하지 못한다는 조건까지 붙었습니다. 콜럼부스는 선박파손 등 등 고생 끝에 별 성과 없이 1504년에 귀환했습니다. 더 이상의 항해를 하지 못하게 되었고 2년 뒤,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세계사의 전개를 유럽 중심의 관점이나 팽창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약자에 대한 정복을 당연시해 온 관행을 반성해야 합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가치는 서로의 문명을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6.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1세의 또 다른 별명은 '해적 여왕' 이다. 스페인 함대의 기습 공격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 한 남자가 있었다. 스페인을 향한 복수로 삶의 목표를 바꾼 전설의 해적왕 드레이크는 엘리자베스의 최고의 파트너이다. 스페인의 식민지 파나마의 창고를 약탈하고 페루 은광을 기습한다. 드레이크 해적단이 스페인에 막대한 피해를 피해를 입힌다. 스페인의 항의를 받은 여왕은 오히려 드레이크에게 약탈을 허가하는 '사략 허가증' 을 발급해 주었다. 약탈한 보물의 양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여왕과 드레이크 둘뿐이라고 합니다.
7. 루이 14세
베르사유 궁전은 자신의 절대 권력을 과시하는 장소인 동시에 통치하기 힘든 귀족을 길들이는 공간이다.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덫과 같은 장소이다. 사치와 향략의 미끼를 던졌다. 베르사유는 놀거리, 볼거리 즉, 축제와 오락의 중심지이였던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원래 뜻은 평민과 차별되는 귀족의 특정한 생활방식에 대한 의무를 의미한다. 상업이나 농업에 종사하면 안되고 소비와 사치의 삶을 의무적으로 살아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에겐 독이었을지 몰라도 루이 14세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수많은 궁정 귀족을 체계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에티켓이라는 도구를 고안하였다. 에티켓 서열에 따라 귀족을 차별 대우하고 경쟁심과 허영심을 자극하였다. 이 시기의 에티켓은 차별을 의미하였다. 에티켓으로 귀족들을 통제하면서 베르사유라는 소우주를 지배하는 태양처럼 군림하고자 하였다.
8. 마리 앙투아네트
국민 밉상, 눈엣 가시, 결혼식 가짜 뉴스, 불임 가짜 뉴스 등등 마리 앙투아네트를 대변하는 단어이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요! 이 말은 장 자크 루소의책 고백록 6권에 나오는 말로 이미 세상에 돌아다니던 말 입니다. 이 책이 나왔을 때 왕비는 겨우 9살이었다. 프랑스 혁명군이 퍼뜨린 거짓 소문인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에 도착한 순간부터 죽기 직전까지 혹평과 가짜 뉴스에 시달리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마지막 순간에도 가짜 뉴스로 인해 자신이 하지 않은 온갖 죄목을 끌어안아야 했다. 여성의 시각에서 프랑스 혁명은 민주주의를 이룬 혁명인가? 프랑스 혁명의 인권은 자매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남성들만의 인권을 의미하였다.
9. 나폴레옹
유럽 내에서 프랑스 혁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던 사람들은 황제가 된 나폴레옹을 보며 실망하기도 했고,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그중 대표적 인물 베토벤이었다. 구세주처럼 등장한 전쟁 영웅이 부패한 권력을 끝내고 자유, 평등, 형제애라는 이상을 실현시켜 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폴레옹에게 헌사하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라는 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황제 즉위 소식을 들은 베토벤은 환멸을 느끼며 악보를 찢어버렸다. "나폴레옹도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야심가였던가." 베토벤은 결국 이 교향곡의 이름을 영웅이라 바꾼 뒤 '한 위대한 인간의 추억' 이라고 부제를 붙여 발표했다. 이 곡은 '운명 교향곡' 과 더불어 베토벤의 대표적인 곡으로 손 꼽히고 있다.
10. 링컨
남북 전쟁이 북부의 승리로 종결되며 흑인 노예를 해방했지만 미국 남부 지역 일부 백인들은 노예 해방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차별이 뿌리 깊게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KKK라 불리는 백인 우월인 단체는 전쟁 후 1865년 은퇴한 남부군 장교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목적은 흑인들에게 테러를 가해서 흑인을 굴복시키고 전쟁 이전의 노예 상태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KKK가 아니더라도 그 지역의 백인, 정치인, 공권력이 노골적인 차별을 지지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흑인에게 린치를 가하는 것을 큰 구경거리로 여겼다. 21세기인 지금도 흑인들은 믿음을 갖고 싸워 나가고 있다. 어쩌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링컨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준다. 혐오 문제는 미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 존재하고 있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갖고 차별하는 이들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인 문제이다.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언젠가는 승리할 거야."
흥미로운 역사의 디테일 사건들을 정밀하게 연구하고 공부하여 세계사의 퍼즐을 지속해서 맞추어 나갈 수 밖에는 없다. 아마도 평생 걸리는 공부가 될 수 있다. 어쩌면 노후를 보내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공부하는 주 목적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철학적 가치와 의미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인류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모두 존귀하다. 세계사 공부도 마찬가지로 이 절대적 기준을 벗어나면 누군가에게는 잔혹사, 또는 짐승의 역사가 된다. 때로는 어떻게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고 또 되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도 살기 힘든 세상에 전쟁을 벌여 수많은 생명이 죽어 나가고 있다. 답답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인류는 살아야하고 생존해야 한다. 지나간 역사에서 힌트를 얻어내어 세계사 공부의 의의를 찾아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