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잊어서는 안되지만 간혹 쉽게 잊혀지는 이야기들이 있다. 나 역시도 제주4.3사건에 대하여 간략한 내용만 알고 있었을 뿐, 자세한 내막과 그 역사를 직접 겪은 이들이 가지고 살았을 아픔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에서는 그렇게 누군가는 쉽게 잊고 살았을, 그러나 앞으로도 결코 잊어서는 안될 역사에 대해 잘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의 등장인물인 인선의 가족들이 겪은 4.3사건의 이야기는 매우 처참하고 참혹하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나아가 같은 나라 국민이 국민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 모든 일들이 사실이라는 생각에 울컥하는 장면들도 있었다. 책에서는 과거(제주4.3사건 당시)와 현재를 잇는 매개체로 하얗고 차가운 눈이 자주 사용되는데, 저자는 그를 통해 당시 사건 피해자들이 겪었을 냉혹한 현실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이 처했던 상황이 얼마나 차갑고 험난했었는지를 말이다. 또한 다친 인선의 부탁을 받고 제주도 깊은 시골집에 새를 구하러 갔다가 갑작스레 들이닥친 폭설로 인해 그 곳에 고립된 경하의 상황은 제주4.3사건 당시 다른 누군가(육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고립되었던 제주도민들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제주4.3사건이 단지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며, 현재에도 그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작별인사만 하지 않는 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는 거야? 완성되지 않는 거야, 작별이? 기약 없이 미루는 거야, 작별을?" 이라는 대사가 가장 인상깊게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작별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함부로 작별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주4.3사건은 이미 몇십년이 지난 역사이고, 앞에서 말했듯 누군가는 쉽게 잊을 수도 있는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그들과 작별해서는 안된다. 작별을 완성해서는 안된다. 그 아픈 역사가 잊혀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작별을 미뤄야 한다.
수백년을 이어온 학살의 역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는 그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다만 그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그 역사 속 실재했을 사람들을 기리고 그런 참혹한 역사가 되풀이되는 일이 없도록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단지 피해자들을 위해서만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살아가야할 모든 시간과 세계를 위해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