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조던 스타'는 자연계에 집착적으로 질서를 부여하려 하는 과학자이다. 그 집요함을 에세이 형식으로 서술하면서 저자 또한 집착적으로 데이비드 조던 스타에 대해 탐구하며 경외를 표한다.
데이비드는 어릴 적부터 별을 탐구하고, 마을의 지도를 그리고, 풀꽃에 대해 분류하는 등 편집광 기질을 타고 났지만 그를 반기는 곳은 없었다. 나이가 들어 작은 기독교 대학에서 과학을 가르치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데이비드는 당시 유명한 박물학자였던 '루이 아가시'의 자연사 수업을 듣기 위하며 페니키스 섬에 들어가게 되고, 그의 삶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그간 자신이 하던 집착적인 수집과 분류 활동이 더이상 무의미한 행위가 아니며,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기여라 여기게 된다.
그 후 그는 물고기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며 모든 생물에 '등급'을 메기는 행위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 그의 연구가 인정 받기 시작하며, 그는 대학 교수가 되고 결혼하여 자녀도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된다.
하지만, 재해로 인하여 그의 모든 연구결과가 소실되고, 사랑하는 아내 또한 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그는 2년 만에 다시 결혼을 하고,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학장이 되어 자신이 진정 원하던 연구를 그제서야 시작한다. 하지만 곧 그는 자신의 연구와 관련된 부정행위에 연루되고, 스탠퍼드 대학의 주인인 제인 스탠퍼드가 그 사실을 알게 되어 곤란한 상황에 처해진다. 그리고 하필 그 때, 제인 스탠퍼드는 독살을 당한다. 결국 데이비드가 그녀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며 데이비드는 모든 권력을 잃고 여행을 다니며 물고기를 연구하게 된다.
아오스타 마을. 장애를 가진,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존엄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이 마을에서 데이비드는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데이비드는 이 곳을 "거위보다 지능이 낮고 돼지보다 품위가 떨어지는", "피조물들"이 들끓는 "진정한 공포의 공간"으로 묘사한다. 그는 이가 '루이 아가시'가 동물의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했던, 바로 그 퇴화를 보여주는 증거라 염려하며, 심지어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된다. 전 세계에서 인류의 쇠퇴를 예방할 유일한 방법은 이 "백치들"을 몰살하는 것이라 권고하는 책, 한단어로 우생학을 옹호하는 책을 쓴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저자인 룰루밀러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존재를 알게되고, 그를 연구하며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저자는 연구에 몰두하며, 위기에 순간에도 망해버린 사명을 밀고나아가는 그의 열정을 경외하지만, 결국 불행하게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도덕적 결함으로 가득했던 끔찍한 인간임을 알게 된다.
이 책을 읽기 전 엄청난 반전으로 가득한 책이라는 후기가 많아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궁금해하며 읽었지만, 글의 초중반에 걸쳐 반전에 대한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었다. 경외로 가득찬 데이비드에 대한 묘사. 하지만 후반부에서 나 또한 저자처럼 데이비드에 대한 혼란을 느끼게 되며, 저자가 데이비드를 연구하며 느꼈던 감정의 변화를 똑같이 느끼게 되었다. '장애인 지하철 시위'로 찬반에 대한 논란과, 과도한 비난 등이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는 오늘날, 내가 과연 '우생학' 이라는 이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나의 도덕적 잣대라는 것이 겨우 나 혼자만의 삶을 관점으로 판단한 가벼운 잣대가 아닐지 고민하게 되는 책이었다.
저자가 말한, '우리 모두가 중요하다' 라는 아주 실존적인 문장들을 남기며 글을 마무리 한다.
「그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자연을 더욱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것이 민들레 법칙이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해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